<인터뷰> ‘무대 위에서 무대 밖을 얘기하다’ 배우 김최용준

누구에게나 감명적인 첫 공연,을 상상해보라. 누군가를 응원하러, 영감을 받으러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설레는 마음으로, 또 어쩌면 무심한 마음으로 텅 빈 무대를 바라보는 당신. 기다림 속에 조명이 어두워지고 조용해진다. 고요 속에서 빛이 밝혀지며 당신의 눈은 그 순간 가장 사랑하는 연인을 만난 듯, 한 사람을 향한다. 그(녀)는 꺼져버린 당신의 심장에 불을 지펴줄 사람, 뜨겁게 열정과 눈물을 끌어낼 유일한 한 사랑이 된다.

무대 위를 꿈꿔본 적 있는가. 연극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모바일과 인터넷은 집에서도 쉽게 배우를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무대는 대중에게 가까워지고 영화관은 늘 관객으로 북적거린다. 하지만 무대 위로 뛰어드는 이는 많지 않다. 사실 무대에는 벽이 없지만 관중 속 우리들은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든다. 그 벽 너머 다른 세계를 만나고 새로운 인물과 관계를 맺으며….

하지만 가끔은 궁금하다. 무대 위에서 바라보는 무대 밖 세상은 어떤 곳일지. 그 가녀린 경계를 허물어 자신만의 목소리를 들려줄 배우 김최용준(31)을 만나보았다.

 

▲ 배우 김최용준

 

-열여덟 살에 연기를 시작했다던데, 무대 위로 뛰어들게 된 계기가 있는가?

▲당시는 ‘멋진 삶’에 대한 고민이 컸다. MBC 아카데미를 다니며 단역 활동을 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사람들 앞으로 나가고자 연기를 시작했는데, 작지 않은 교통사고가 있었다. 어린 마음에 ‘하지 말라는 계시’인가 싶어 방황하다가 권투를 시작했다.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샌드백에 풀며 2년 정도 선수생활을 했다. 운동선수로서 마음가짐이 현재와 고등학교 성적에 영향을 준 것도 많다. 전교에서 200등 하던 녀석이 0 하나 떼고 20등으로 졸업했다고 선생님들이 예뻐하셨다. 극적인 성적 향상으로 수시에 지원하라는 권유를 많이 해주셨는데, 굳이 수능을 고집해서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그런데 대학에 오니 다시 혼란스럽더라. 한동안은 사람들을 피해 다녔던 것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대로면 거지꼴을 면치 못할 것 같아 다시 깊은 자기 탐색을 시작했다. 흰 도면을 펼치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에 대해 단어로, 때론 문장이 되어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기억나는 단어들이, ‘연예인’, ‘파티플래너’, ‘마케팅’… 뭐 그런 것들이었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점들을 만들고 하나씩 선으로 연결해보았다. 그렇게 융합된 여러 가지 과제들이 생겨났고, 1년에 하나씩 해치워보자 다짐했다. 그 중 첫 번째가 ‘연기’였다.

첫 대본을 받던 날의 심장이 뛰는 울림을 기억한다. 첫 번째 과제인 ‘연기’를 위해 보러 간 오디션에서 ‘나쁘진 않은데…’라는 평을 받고, 2009년 여름 22살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1년을 하려던 것이 아직도 심장을 뛰게 해 8년이나 계속되었다. 10대와 20대를 다시 돌아보니 질풍노도라는 말이 찰떡같다. 하지만 지금도 꿈을 좇는 철부지인 건 똑같다.

 

-이제 막 전역한 지 보름 되었다고 들었다. 배우로서의 일상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늦은 나이에 입대를 한 터라 불안했고, ‘21개월 무조건 자기계발이다!’ 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금 같이 아껴 쓰고 싶었다. 군대에 있을 땐 운동을 주로 했고 2016년엔 사단 본부대 몸짱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했다. 군대에 있던 2016년 11월에 주연을 맡은 <비치온더비치>가 개봉되어 휴가를 짜내 무대인사를 다녔다. 사회에 나와서는 다시 연기에 매진하고 있고, 여유가 생길 때마다 직접 시나리오도 쓰고 있다.

 

▲ 영화 <비치온더비치> 포스터

-<비치온더비치>, <한공주>에 출연하면서 어떤 점이 인상 깊었나?

▲연기를 처음 배울 때 연출가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 수업> 영향을 많이 받았다. 메소드 연기의 창시자인 만큼 극사실주의 연기에 대한 ‘몰입’에 주력한다. 이 때문에 가끔은 후유증이 남아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특히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한공주>에서는 가해학생에서 괴롭힘과 협박을 당해 피해자 학생에 대한 폭력에 간접적인 당사자, 징검다리가 되었다. 한동안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과 우리사회에 대한 ‘화’가 남아 힘든 점도 있었다.

한편 <비치온더비치>는 감독님이 직접 주인공으로 연기한 작품이었고, 제작과정과 결과물 그 자체로도 무척 흥미로웠다. 줄타기처럼 헤어진 연인의 아슬아슬한 긴장과 애정선이 줄거리의 주된 맥락이다. 주인공 ‘가영’은 거침없고 욕구에 솔직한 성격으로 “함 하자!”와 같은 말을 진지하면서도 쉽게 말한다. 이태까지 참여했던 작품 중 ‘롱테이크(영화의 쇼트 구성 방법 중 하나. 1~2분 이상의 쇼트가 편집 없이 길게 진행되는 것)’가 가장 많고 길었으며, 리허설이 많았다는 점이 힘들기도 했지만 배우로서 도전해 볼만 한 작품이었다. 촬영 과정에서의 ‘재미’역시 빠뜨릴 수 없는데, 감독(이자 주연배우), 조연출, 촬영감독, 음향기사, 본인과 배우 한 명을 더 포함해 6명이라는 최소 스탭으로 꾸려진 팀이었기에 친구처럼 매 컷마다 즐겁게 촬영했다.

 

-영화 밖에서 김최용준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없나?

▲영화라는 영상예술이 단순히 스크린 밖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에 대한 고민을 출발로 하여 ‘낫띵벗필름(nothing but film)’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다. 낫띵벗필름은 배우와 감독, 관객의 보다 나은, 밀접하고 건전한 만남을 도모하고, 문화의 소통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다, 어떻게 하면 영화인들(우리는 관계자와 관객 모두를 이렇게 부른다)에게 좀 더 즐거운 소통의 장을 기획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예술이지만, 대중에게 보다 밀접하게 다가감으로써, 영화와 그 관계자 그리고 대중이 영화라는 ‘공동’예술을 깊게 이해하고, 애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 회 최선을 다해 기획하고 준비한다. 현재까지는 저와 김창환 배우, 이태경 배우의 상영전을 열었고, 최근에는 황미영 배우의 상영전을 준비하고 있다. 각 호스트의 성향과 컨셉트에 맞춰 상영장소도 달라지기 때문에 공간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재미도 더한다. 예컨대 대형 멀티플렉스 공간이 아닌 신촌의 한 PUB에서 상영회를 진행하거나, 광화문의 에무 아트하우스, 문래동 예술공간 이포, 을지로 3가의 감각의 제국 등 다양한 곳에서 상상력을 키우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최용준에게 연기란?

▲10대 때 나는 ‘연기’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시작했다. 지금 나에게 연기란 각본 속에만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연기라는 건 인간의 삶에 가장 밀착할 수 있는 예술이라 생각한다. 연기에는 ‘그냥’이라는 단어가 없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극 중 한 사람에 대하여 완벽하게 이해해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전 인류를 바라보고 통찰하게 된다. 인간의 삶에 대한 시선은 다시 내 자신에게로 돌아와 ‘왜?’ ‘어떻게?’ ‘하지만’ 등 끊임없는 성찰의 시간을 준다는 것이 연기를 지속하게 하는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그래서 “좋은 배우가 되자” 라는 건 “좋은 사람이 되자”와 같다.

아직도 물론 불안하고 흔들린다. 그럼에도 무대를 떠나지는 못할 것 같다. 어느 날 친구에게 “나는 아무 것도 아닌가봐” 라고 푸념을 했는데 “너 많이 컸다”라는 답을 듣고 힘이 나더라. 무대를 꿈꾸는 수많은 친구들, 같은 길을 걸어가는 예술공동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 인생은 다른 거지 틀린 것이 아니다. 내가 만들어 가는 의미들은 언젠가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반드시 돌아올 테니, 우리를 향한 비난과 질책은 과감히 무시해도 좋다. 재력, 명예…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 성공의 기준은 몽상가로서 꿈꾸는 이상을 극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삶의 보람이다. 우리 삶은 이토록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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