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4.3 사건을 돌아보며 / 김혜영

▲ 영화 '지슬' 포스터

“4.3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최근 길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4.3’에 대해 묻는 영상을 보았다. 그저 숫자의 조합으로 보인다는 사람, 무슨 기념일 같기는 한데 잘 모르겠다는 사람 등등 다양하면서도 일관된 반응이 담겨 있었다. 문득 내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저 알고 있다는 말로는 너무나 불충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교과서에서 짤막한 몇 줄로 4.3 사건에 대해 배웠다. 다른 유명한 사건들에 비해 너무나 낯설었는데, 선생님마저 별다른 설명을 해주시지 않았다.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이 정도로 다뤄졌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릿속에서 금방 4.3 사건을 잊었다. 암기해야 하는 사건이 너무 많아서 ‘중요하지 않은’ 사건까지 깊게 공부할 여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 되고, 수학여행으로 제주도의 알뜨르 비행장을 방문했다. 괜히 유럽식 관광지가 펼쳐질 것 같은 이름에 잔뜩 기대를 했는데, 버스에서 내려 보니 아름다운 들판 한가운데에 격납고가 흉물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더위에 지친 친구들은 격납고가 만든 그늘을 차지하기 바빴고, 실망한 나는 대체 이런 곳에 왜 온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때, 역사 선생님이 단 한마디로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곳은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로 동원하여 건설한 곳이며, 인근 지역은 4.3 사건 때 학살이 벌어졌던 곳이니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살’이라는 단어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그런 단어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사건에서나 들어본, 내가 밟고 있는 이 땅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언어이기 때문일 테다. 그 뒤로 선생님은 4.3 사건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주셨고, 아이들은 제법 진지한 태도로 설명을 들었다. 벌써 몇 년 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서야 4.3 사건이 무엇인지 정도를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제주도에서 배우고 느꼈던 것은 또다시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수학여행이 끝났으니 수험생이 될 준비를 해야 했고, 서울 토박이로서 물리적인 거리감도 크게 작용했다. 게다가 관련 자료는 노력해야 찾아볼 수 있었고,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4.3 사건은 그저 ‘기억하자’, ‘관심을 갖자’ 정도의 느낌에 지나지 않았다. 어설픈 책임감과 죄책감이 빚은 감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는 수험생활이 끝나고, 대학생이 되어 4.3사건을 다시 마주했다. ‘지슬’이라는 영화가 계기였다.

영화 ‘지슬’의 큰 줄거리는 ‘빨갱이’를 잡지 못해 반인권적인 형벌을 받던 진압군이 토벌대의 폭력을 보게 되는 것, 그리고 이들을 피해 산 속 동굴로 도망간 도민들이 지슬(감자)을 나눠먹는 것이다. 무장대와 진압군의 폭력적인 갈등, 그리고 동굴로 도망간 사람들이라는 소재만 보면 블록버스터급 영화처럼 느껴지지만,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차분하고 침착하며 고통을 비극적 장치 없이 처연하게 보여준다. 다큐멘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당시 사건을 그대로 목격하는 느낌이었다. 철저히 제 3자로서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을 바라보기만 하는 느낌. 그때 내가 성찰 없이 뱉었던 ‘기억하자’, ‘관심을 갖자’라는 말의 무게를 느꼈다. 피해자가 실존하는 역사에서 나는 철저한 타자였으며, 당사자가 아니기에 기억과 관심을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나에겐 노력해야 하는 기억이었다.

그때서야 4.3 사건을 제대로 알아보았다. 보통 4.3 사건 자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무장대와 진압군의 갈등에서 비롯된 비극 정도로만 안다. 5.10 남한 단독 선거가 알려지자, 이를 계기로 제주도 안에 있던 남로당(남조선노동당) 조직이 무장하게 되었다는 것을 사건의 시작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건의 시작은 3.1절 발포 사건이었다. 한 아이가 경찰의 발에 치여 부상을 입었는데, 경찰은 이를 보고도 무시했다. 화난 민중들이 경찰에게 돌을 던지자, 경찰은 이를 습격으로 보고 도민들에게 발포했다. 도민들이 죽거나 다쳤고, 이후 경찰 측이 통행금지령을 내려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그리고 4월 3일에 남로당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이는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 및 이를 발췌한 자료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시 제주도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도망가거나 이웃을 죽이는 것, 혹은 총에 맞는 것 세 가지의 선택지밖에 없었다. 도망가는 것의 위험성은 두말할 것 없고, 결국 ‘남로당의 강압을 받아들여 이웃을 죽인다’, ‘남로당의 강압을 거절해 죽는다’, ‘남로당을 진압하는 이들(진압군)에게 죽는다’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제주도민들은 외부 세력에 의해 학살되고, 서로를 죽여야 했다. 평론가 허지웅은 ‘지슬’을 추천하며, “죽일 이유가 없었던 이들과 죽을 이유가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 영화 '지슬' 스틸컷

 

그래서 4.3 사건은 더 무겁다. 반인권적인 일이 처참하게 진행됐으며, 후의 해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외부에서는 이를 ‘빨갱이 사건’으로 몰았고, 내부에서는 사건을 겪은 주민들이 모든 맥락을 알고 있기에 어려웠다. 내 아버지를 내 친구가 죽였는데, 협박을 받아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아는 셈이다. 모두 없던 일로 여기고 싶은 사람도, 잊고 싶은 사람도, 묻어야 하는 사람도, 진상을 규명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제주도민들의 회복이다. 그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진상 규명과 공론화, 그리고 재발방지의 약속과 실천이 그들을 회복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두 명 이상이 갈등한 사안을 제 3자로서 바라볼 때, 누가 강자이고 약자인지를 먼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자와 약자는 동등한 상태로 갈등을 풀어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동등한 상태에서 해결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3자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당시의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받은 이들은 약자이다. 권력의 차이는 이미 너무나도 명백하며, 제 3자는 약자의 목소리를 더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으면 약자의 목소리는 절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계몽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의 삶이 너무 버거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약자가 고통 받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이고, 방관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문제에서는 가해자이고, 어떤 문제에서는 피해자이며, 또 어떤 문제에서는 방관자이다. 그러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나의 문제와 우리의 문제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는 없더라도, 이 세상에는 바위와 부딪히면 깨지기 쉬운 계란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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