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록 여행스케치> 고향 같은 충북 옥천의 향수

▲ 정지용 생가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이 땅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치고 정지용의 시 ‘향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널리 알려진 시인데, 충북 옥천땅은 이 시(詩)만큼이나 정겹고 구수한 고장이다. 정지용 시인은 시에서 보듯 고향마을의 푸근한 정경을 고스란히 살려냈다.

 

▲ 지용문학관 앞에 서 있는 정지용 동상

☛시인 정지용의 자취

봄기운 자욱한 4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정지용 생가로 향한다. 옥천은 구읍과 신읍으로 나눠져 있는데 정지용 생가는 구읍 한복판에 있다. 구읍은 신읍과 달리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세월 탓인지 구읍도 신식 건물이 들어서고 골목마다 콘크리트가 깔리는 등 점점 변화하고 있다. 옛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 이 시대에 아쉽다면 아쉬운 일이다.

지용 생가는 개천이 끝나는 큰길 직전, 오른편에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향수’ 전문이 새겨진 시비와 초가집 한 채, 헛간 한 채가 복원돼 있다. 옛 집을 보기 좋게 꾸며 놓았지만, 초가집 주위로 삐죽삐죽 솟은 건물과 현대식 민가들은 왠지 생가의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생가 주위를 찬찬히 둘러본다. 잘 단장된 생가는 고향집처럼 아늑하고 포근하다. 초가 주위로 햇살이 내려앉은 돌담과 사립문, 물레방아, 우물, 장독대, 돌다리 등이 가지런하다. 복원(재현)된 것들이지만 하나같이 자연스럽다. 생가 앞으로는 실개천이 흐른다. ‘옛 이야기 지줄대는…’, 바로 그 실개천이다.

 

▲ 정지용 생가 앞의 실개천
▲ 정지용 시인의 모교인 죽향초등학교

 

생가에서 마을길을 따라 500미터쯤 가면 시인이 다녔던 죽향초등학교가 있다. 지용은 이 학교(당시 옥천공립보통학교) 4회 졸업생(1914년, 13세)이다. 아이들이 뛰어 노는 운동장 한켠에는 부속유치원으로 쓰이는 목조건물이 있다. 지용이 공부했던 곳이다. 당시 지용의 흔적은 이 학교에 보관된 학적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나의 유년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름다운 추억은 그렇게 세월 속에 묻히고 말았다.

정지용 시인의 자취는 생가 한쪽에 마련된 문학관에서 더 자세하게 둘러볼 수 있다.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시인의 문학 혼과 문학세계를 살펴 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가 남긴 140여 편의 시와 수필은 천재적인 언어 감각과 뛰어난 시적 형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 둔주봉에서 본 한반도 지형

☛금강을 따라가면서 보라

안남면 소재지에 우뚝 솟은 둔주봉(해발 384m)에 오르면 금강의 물줄기가 빚어낸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다. 또한 군북면 추소리 부소무니 마을 앞에는 물 위에 암봉들이 700미터 가량 겹겹이 펼쳐져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산이라 하여 ‘부소담악’이라 일컫는 이 절경은 국토해양부가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아름다운 하천 100곳 중의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 금강에 정박한 나룻배
▲ 금강을 조망하기 좋은 독락정

 

아름다운 금강 줄기가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독락정(안남면 연주리)도 지척에 있다. 독락정은 조선 선조 40년(1607) 벼슬을 지낸 주몽득이 세운 정자이다. 주변 풍광이 빼어나 예부터 많은 선비들이 찾아와 머물던 곳으로 후대에 와서는 유생들의 학문 연구 장소로 쓰였다. 영조 48년(1772)에 고쳐 지은 이후 여러 차례 보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2칸, 옆면 2칸에 지붕은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건물 정면에 걸려 있는 ‘독락정’이란 현판은 당시의 군수였던 심후의 글씨라고 한다.

 

▲ 독락정 앞에서 본 금강 줄기
▲ 부소담악의 그림같은 절경

 

호수와 산책로, 놀이시설, 시비가 있는 장계관광지(멋진 신세계)도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시인 정지용의 문학세계를 해석, 공공 예술로 빚은 아트밸리다. 대청호의 자연을 배경으로 주옥같은 시를 감상할 수 있는 ‘일곱걸음산책로’는 가족끼리 연인끼리 호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명소다. 산책로를 따라 호숫가를 거니노라면 길가의 시비가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시인의 원고지를 형상화한 모단광장과 대청호를 바라보며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있다.

 

▲ 옥천땅을 적시며 흘러가는 금강 줄기

☛금강이 만든 아름다운 마을

금강 지류인 보청천을 따라 영동 방면으로 내려가면 가장 옥천다운 땅이라는 청성면과 청산면이 기다린다. 보청천은 보은군 내북면 상궁리에서 발원, 옥천군 청산면과 청성면의 너른 들을 적시고 청성면 고당리에서 금강과 합류한다. 보청천 주변으로 펼쳐진 넓은 들은 땅이 비옥하고 수량이 풍부해 흉년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로 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 경치가 아름다운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

 

청성면 고당리는 옻샘마을로 불린다. 마을 사람들은 예부터 옻나무가 많이 나서 그 나무의 진을 내어 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옻은 예로부터 소화불량과 각종 염증에 특효가 있는 신비의 한약재로 알려져 왔다. 알레르기를 일으켜 꺼려하는 이들도 있지만 최근에 항암과 숙취해소에 좋다는 소문이 돌면서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옻샘 마을에서 금강을 따라가는 길은 절경이다. 옥천의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높은벌’도 이곳에 있다. 오지라면 오지랄 수 있는 아름다운 산골마을로 주변 풍광이 뛰어나다. 영양 진씨의 집성촌으로 옛날에는 고현(高縣)으로 불리다가 ’높은벌‘이란 순 우리말로 바뀌었다.

 

▲ 옥천의 오지인 높은벌 마을

 

이밖에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는 상, 하행을 지나는 모든 차량이 한 장소에서 쉬어 갈 수 있고 옆으로 금강이 펼쳐져 있어 주변 풍광이 빼어나다. 이 휴게소의 매력은 굳이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국도와 바로 연결돼 데이트 삼아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휴게소 주변의 금강유원지는 도란도란 흘러가는 강줄기와 모터보트장, 낚시터, 식당 등의 위락시설까지 갖춰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들이 즐겨 찾는다.

 

▲ 장령산휴양림의 산림문화휴양관
▲ 금강나루터식당의 별미인 마주조림

여행수첩(지역번호 043)

☞가는 길=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으로 나와 좌회전하면 바로 옥천 구읍이다. 정지용 생가를 알리는 이정표가 곳곳에 붙어 있어 찾아가기 쉽다. 지용생가에서 교동저수지를 지나 보은 방면 국도(37번)로 약 25분 정도 가면 장계관광지다. 여기서 37번국도와 575번 지방도를 번갈아 타고 안남 방면으로 가면 둔주봉(독락정)이 나온다. 부소담악은 옥천읍내에서 군북면 소재지를 경유, 15번 도로를 타면 갈 수 있다. 대전, 영동, 금산, 보은에서 옥천행 시외버스 이용. 서울역에서 옥천역(733-7788)을 경유하는 기차편이 있다.

☞맛집=금강을 끼고 있는 옥천은 예부터 도리뱅뱅이, 올갱이국, 어탕국수 같은 민물고기 요리가 발달해 있다. 피라미를 바삭하게 튀겨낸 뒤 고추장으로 양념을 한 도리뱅뱅이는 부산식당(732-3478), 삼일식당(732-3476)에서 맛볼 수 있고 금강집(732-8083)과 옥천민물매운탕(733-2725)은 어탕국수로 유명하다. 금강올갱이(731-4880)는 올갱이 요리를 잘한다. 금강나루터식당(732-3642)은 금강에서 잡아올린 모래무지에 콩, 무, 시래기 등을 넣은 후 갖은 양념을 넣고 졸인 마주조림이 별미다.

☞숙박=옥천읍에 대호모텔(732-0001), 전원모텔(731-0180), 명가모텔(733-7744), 옥천관광호텔(731-2435) 등 숙소가 여럿 있다. 통나무집, 산림문화휴양관 등을 갖춘 장령산자연휴양림(730-3491, http://jaf.cbhuyang.go.kr)도 좋다. 

<여행작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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