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한국영화사 훑어보기-4회:<오발탄>

▲ 영화 <오발탄> 포스터

영화소개 : <오발탄>, 1961년작, 감독 유현목, 출연 김진규 최무룡 서애자 문정숙 등

 

"South Korea's failure to imagine or cinematically image itself coherently as a nation and a unified homeland for its people aligns the country with the stray bullet of the title as well. While a nation is defined as a cultural system that provides meanings for its people and their reality and thus, as Benedict Anderson maintains, functions to "[transform] fatality to continuity, contingency to meaning," the nation shown in this film is not sufficiently coherent, not sufficiently free of foregin bodies and influences, to articulate a continuity, "to turn chance to destiny." The Stray Bullet thus dramatizes the fragmented and divisive national imaginings of the colonized and/or postcolonial nation." - 『The Stray Bullet and the Crisis of Korean Masculinity』 중에서, EUNSUN CHO

우리는 모두가 오발탄이다. 오발탄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면, 그것은 어떤 자만과 오만함일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란 그만큼 역하고 고통이 흘러넘쳐서, 누구나 오발탄을 여러 발씩 마음에 묻고 산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오발탄이 아니라고 부정할 때가 있다. 나는 사회에 잘 적응하고, 나는 오발탄이 아니라는 자존감, 그 자존감을 어떤 남성성, 그것도 포스트식민주의 국가에 비정상적으로 자라난 남성성에서 찾는다면 어떨까. 우리는 그 전보다도 더 강렬하게 부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 ‘오발탄’은 식민지 이후 한국이 보여주는 사회가 얼마나 분열적이고 조각나 있는지 위의 논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잘 보여주고 있다. 남성, 철호라는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가정이 위태롭다가, 결국 무너지는 모습을 보라. 얼마나 철호의 모습이 경제적으로 무기력하게 등장하는가. 또한 동생 영호는 은행 강도가 되어 ‘한 탕’ 벌기 위해 뛰어들다 경찰에 붙잡힌다. 철호와 영호는 이 시대 남성들의 양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양 극의 남성성이 서로의 방향에서 가정을 잡아당겨, 가정 자체를 무너뜨린다. 남편의 돌봄 없이 혼자서 애를 낳다가 죽어버린 아내, 어디론가 계속 가자고 외치는 노망난 어머니, 일명 ‘양공주’ 신세로 몸을 파는 동생 명숙, 모두 남성성에 의해 무너지는 가정 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남성성만을 강조하면 불편하게 느끼는 남성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남성성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무너지는’ 남성성에 있다.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듯이, 남성성 역시 무너져서 그 권위를 잃는다는 것이다. 철호는 남성성을 포기하는 순간에 충치를 뽑아 피를 흘리며 택시 뒷좌석에 쓰러지듯 몸을 내던진다. 꼭 항복하며 깃발을 펄럭이듯이 그의 온몸은 무기력해진다. 가정과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었던 남성성이 무너지면서 그는 스스로를 오발탄이라고 자책하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원동력이라고 생각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그는 그가 모든 짐을 지겠다는 일념으로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쉽게 말하자면 미련을 떤 것이었다. 미련을 떨면서 가정을 자신의 손아귀에 붙들고 놓아주질 않는다. 사실 철호가 경제적 무능력함에서 적극적으로 벗어나려 했다면 명숙이 원치 않는 미군부대의 삶을 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동생 영호가 잘못된 야망으로 철호의 남성성을 승계하려고 할 때 철호는 막아서지 못한다. 그저 무기력한 얼굴로 모든 것을 바라다볼 뿐이었다. 애초에 영호가 승계하려는 게 철호 자신의 남성성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철호는 자신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자 아예 가정을 포기하는 수순에 접어든 것이었다. 다음 인용을 읽어보자.

“지붕을 얹고 있는 기둥은 그 무게를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힘들게 버티고 서 있으며, 어두운 그림자는 표정처럼 집안 구석구석을 침식해 들어간다. 철호 집의 미장센은 서울 시내의 번잡한 도시 풍경과 거친 대조를 이루며, 영호가 경찰들에게 쫓기는 청계천 지하 터널은 이들 가족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절망의 극한을 상징한다. 철호의 경제적인 무능력함, 영호의 강도 행각, 명숙의 양공주 행위, 노모의 치매 등은 이 영화가 포착해 낸 철호의 집안 공간과 정확하게 대비된다. 철호 가족이 꾸려나가는 가족 생활은, 곧 철거될 무허가촌의 운명과 거울관계를 이룬다.” - 『한국영화와 가족 담론 : 1960년대와 2000년대를 중심으로』 중에서, 박명진

 

▲ 영화 <오발탄> 스틸컷

 

남성성의 붕괴는 곧 가정의 붕괴로 이어지는 것은 우리나라 가족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이 무너지고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은 송두리째 가정이 날아가는 것과 같다고 당시의 사람들은 여겼기 때문이다. 모든 가정의 희망은 가부장에 달려 있었다. 결국 영화 ‘오발탄’에서도 이런 측면을 살펴볼 수 있다. 철호와 영호가 보여주는 남성성이 무너지자 가족은 당연히 쓰러져야 할 것으로 여겨지며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의 죽음이 밀려 닥쳐온다. 실은 가정을 지키고 있던 것은 남성성이 아니라 아내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한 어떤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호의 모습만이 카메라에 담기며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무너지는 철호만을 영화는 주목한다. 영화 자체가 남성성에 길들여져 있으며 철호를 중심으로 영화가 돌아가야 한다는 어떤 고정관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결국 ‘철호’ 가족이라는 남성성의 하위 개념으로 이해되는 영화 ‘오발탄’의 주인공 가족은 소위 구닥다리 이념과 사고방식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이다. 곧 철거될 무허가촌처럼 계속 지속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철거해버리기엔 아직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그런 사고방식이 바로 남성성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 문화이다. 철호가 오발탄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그는 아주 고전적인 사고를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고리타분하다고도 느껴지는 그의 남성성은 결국 가족이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도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오히려 그 삶을 유지하려 든다. 이에 대비되는 동생 영호 역시 남성성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었는데, 영화 속에서 철호와의 삶의 방식을 비교하면서 이 두 남성에게는 해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는 고집불통이고 하나는 극도로 사회를 증오한다. 사회를 증오하는 방식은 좀 더 진보적인 모습 같아 보이면서도 실은 제자리걸음이다. 영호는 사회를 증오할 뿐, 사회를 건드리는 것은 그에게도 두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영호가 지닌 남성성이라는 것이 그렇다. 그처럼 뒤로는 두려운 것이 많으면서 앞으로는 자신이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인 것 마냥 떠들어댄다.

“양심을 버리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철호에게 돌아오는 것은 치명적인 궁핍과 참기 어려운 치통뿐이다. 동생 영호는 이러한 형이 미련하게 보인다. 따라서 영호의 다음과 같은 절규는 사회에 대한 깊은 증오와 경멸을 대변한다. ‘양심이란 손끝의 가십니다. 빼어버리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냥 두고 건드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거지요. 윤리요? 윤리, 그건 나일론 팬티 같은 것이죠. 입으나마나 속이 덜렁 비쳐 보이기는 매한가지죠.’” - 『한국영화와 가족 담론 : 1960년대와 2000년대를 중심으로』 중에서, 박명진

형 철호를 포함해서 사회와 윤리를 영호는 너무나 쉽게 단정지어버린다. 그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철호가 적게나마 속에 품고 있던 계층 의식, 자신은 인텔리겐치아이고 이에 걸 맞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그런 사고방식의 한 부분으로서의 양심을 영호는 맹렬히 비판한다. 이것은 남성성이 남성성과 격돌하는 장면이다. 서로 다른 남성성이 부딪치며 분열하고, 결국엔 위태롭게 떠받쳐져 있던 가족이 무너지는. 구시대적 모순이 영화 자체를 이루고 있고,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시각에서 이 오래된 비극은 비참하기보다 무기력해보이고 무능해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