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1회

북한은 미국이 주장하는 리비아식 핵 폐기에 난색을 표해왔다. ‘선(先) 폐기-후(後) 보상’의 리비아식 폐기에는 약 2년이 소요되지만, 상황에 따라 단계별로 보상이 달라진다. 일각에서는 북핵 일괄폐기,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만을 강조하는 식의 접근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리비아와 북한은 ‘케이스’부터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한다. 리비아는 개발 초기단계에서 핵을 포기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핵을 완성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완성단계라는 점 때문이다. 6월 12일 ‘핵빅딜’이 이뤄진다. 북한과 미국의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것이다. 세계인의 관심은 북‧미 정상회담이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으로 진전될지에 쏠리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경제보다 군대를 중시했던 김정일 총비서와 달리 인민생활 향상에 집중했다. 장마당을 확대시켰고 적극적인 해외노동자 파견을 통해 달러를 벌어들였다.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그는 애민주의와 실용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김정일 총비서 집권 시엔 성장률이 1%에 불과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3∼5%대의 고성장을 이뤄냈다. 적극적인 경제개혁과 개방정책을 추진했고, 여기엔 스위스 유학경험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면서도 핵과 ICBM 개발에 집착했다. 하지만 그로인해 국제적으론 고립을 감수해야 했다. 집권 이후 5년이 넘도록 국제 외교무대에도 등장하지 못했다.

전환점은 평창동계올림픽이었다. 친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전격 내려보냈고,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그 바로 전에는 중국을 방문, 시진핑 주석과 만났다.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판문점선언’이 발표됐다. 남북은 물론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독재자’는 ‘평화의 지도자’로 거듭났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선 역사상 최초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북한은 이미 핵폐기를 공언했고, 미국도 자국 민간기업들의 북한 투자를 약속했다.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이미 어느 정도 결실은 맺어놓은 셈이다.

“과거 많은 언론들이 김정은에 대해 편파적이고 부정적인 보도를 했다. 경험부족에 미숙하고 포악한 독재자로 묘사했다. 좋은 면들은 의도적으로 무시되고 외면됐다. 오히려 아버지 김정일보다 더 똑똑하게 통치한 부분도 많다.”

 

▲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의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평가다. 정 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은 본인이 최종적 결정을 하는 스타일”이라며 “하지만 여러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나서 하기 때문에 실수의 여지가 줄어든다”고 했다.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바야흐로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안보정세에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 북‧미 정상회담이 잘 끝나면,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하지 못했던 최초의 평화적 업적을 남기게 된다. 여기서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국제사회의 초강도 제재가 전면적으로 해제된다. 제재가 풀리면 북한경제는 큰 도약을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지정한 산업특구에도 그동안 제재로 끊겼던 해외자본이 투입될 것이다. 향후 중단됐던 개성공단도 재개될 것이고 금강산관광 길도 다시 열리게 될 것이다.”

북한전문가이자 통일전략연구학자인 정성장 실장을 판교에 있는 세종연구소 연구실에서 만나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최초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 전망과 남북경협, 북‧미 수교, 북⋅일 수교, 개성공단 재개, 한⋅중⋅북 경제공동체와 한반도 신경제구상 등 현안들을 짚어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인터뷰는 3회에 걸쳐 게재된다.

 

- 북한 전문학자로서 통일전략연구 언제부터 했나.

▲ 2001년부터 17년 간 세종연구소에 줄곧 몸담고 있다. 공공연구소를 빼고 민간연구소로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됐고 규모도 크다. 대학에서 정치외교를 전공했을 당시는 군부세력이 집권하던 때다. 남북한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던 시기였다. 반공(反共) 프레임이 이 사회를 지배했고 그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북한정치를 공부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쳐다보는 눈빛이 달랐다. 졸업 후, 프랑스 파리 10대학으로 유학 갔을 때도 지인들을 집에 초대하기가 껄끄러웠다. 방에 김일성 전집이나 사회주의 관련 서적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혹시, 좌파?'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유럽이 사회주의 색채가 짙었던 것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럴만한 품성의 사람은 아니다.(웃음) 지인들도 그런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가난한 유학생이었기 때문에 숙소에서 학교만 열심히 오가며 공부만 했다.

 

▲ 사진=공동취재기자단

 

-본론으로 들어가자.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히 경천동지라 할 정도인데.

▲ 평창올림픽에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일행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화해를 진심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돌아갔다. 이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와 외교적 자신감을 갖게 됐다. 과거 많은 언론들이 김정은에 대해 편파적이고 부정적인 보도를 했다. 경험부족에 미숙하고 포악한 독재자로 묘사했다. 물론 그런 면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다. 좋은 면들은 의도적으로 무시되고 외면됐다. 부정적인 것만 너무 확대했다. 오히려 아버지 김정일 총비서보다 더 똑똑하게 통치한 부분도 많다. 과거 김정일 총비서는 어떤 정책을 결정할 때, 관계자들을 모두 불러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결정하지 않았다. 관련부서의 한 책임자와 1:1로 만나거나 전화로 듣고 나서 서류에 사인하는 스타일이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했던 방식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본인이 최종적 결정을 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나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 여지가 줄어든다.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다른 아이디어를 도출하거나 더 깊은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특출한 부분도 있지만, 지금까지 모든 과정들이 그의 머리에서 모두 기민하게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변 참모들의 의견을 경청했고, 그에 따라 움직였다고 본다.

 

- 미국이 주장하는 대로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 가능할까.

▲ 어떤 방식으로 가느냐에 따라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적게 걸릴 수도 있다. 이전에도 핵동결 방식은 쉬운 것부터 먼저하고, 어려운 것은 가장 나중으로 미루는 방식이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단점이다. 이런 방식을 비난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반대할 것도 아니다. 북한이 핵 개발할 당시에는 핵 프로그램이 크게 진전된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이 북한 핵의 위험성에 대해 인식은 했지만,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그래서 북핵문제 해결에 미온적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북한은 미국의 일부 대도시를 타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핵을 완성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완성단계에 이르면서 미국도 과거와 달리 적극적으로 비핵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 미국은 완전폐기(CVID)에서 영구폐기(PVID)로 수위를 높였다.

▲ 일부 언론들은 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완전(Complete) 폐기’(CVID)보다 ‘영구적인(Permanent) 폐기’(PVID)로 압박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PVID식 폐기방식은 다소 어패가 있다. 얼마 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한 방송에서 영구적인 ‘퍼머넌트(Permanent)’나 되돌릴 수 없는 ‘이러버서블(Irreversible)’이나 ‘같은 의미’로 해석했다. PVID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CVID가 더 적절한 표현이다. 강경파로 알려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튼이 주장한 북한의 대량살상 생화학무기 완전폐기가 PVID다. PVID가 핵심쟁점은 아니다. ‘완전비핵화’(CVID)에 이미 모든 게 포함됐다고 보면 맞다. ‘완전’이라는 말에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폐기’를 덧붙인 것뿐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 수교, 북⋅일 수교를 위해 핵 폐기 카드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린 상황에서 CVID나 PVID는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이 없다.

 

- 협상 도중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두 번씩이나 방문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보나.

▲ 미국이 핵 이외에 다른 무기까지 포기를 압박한 것은 한마디로 북한을 완전 무장해제 시키겠다는 의도다. 날이 갈수록 미국의 압박이 커지자 북한의 반발심도 커지기 시작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 시진핑 주석을 급거 방문한 것도 미국의 대북압박 수준을 낮추려는 고도의 전략이었다. 대북제재 문제는 아무래도 중국에게도 예민한 사안이고, 북한으로서는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미국도 중국의 역할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도 미국의 폐기요구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군사적 나약함으로 미국이 잘못 인식한 것 같은데 그것은 오산이다. 만약 그런 식으로 잘못 오판하고 계속해서 일방적으로 압박을 밀어붙인다면 상황이 과거로 회귀할 수도 있다.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국 민간기업의 진출과 농업, 에너지 분야 지원을 말하는 반면, 볼튼 안보보좌관은 여전히 영구폐기(PVID)를 밀어 붙이고 있다. <2회로 이어집니다.>

 

정성장은…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프랑스 파리10대학 정치학 석⋅박사
2015년 9월 통일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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