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더 많은 것 얻어내려면 북한의 체면 살려주어야”
“한국과 미국, 더 많은 것 얻어내려면 북한의 체면 살려주어야”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8.05.2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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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2회

<1회에서 이어집니다.> 

▲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미국의 북한에 대한 압박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미국이 북한을 패전국가로 다루지 않고 일방적인 요구만 하지 않으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종전선언도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 북한이 약속에 대한 이행을 신속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회나 보수언론의 압력이 문제다. 그 때문에 미 행정부는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미국의 압력수위가 높아질수록 비핵화는 그만큼 늦어질 가능성이 더 많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비핵화 문제가 최대 난제이자 신속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핵 사찰’도 말이 그렇지 북한 땅을 샅샅이 다 파헤칠 수는 없다. 완벽한 사찰은 없다. 사찰에 너무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북한을 빠른 시일 내에 국제사회로 나오도록 돕고 교류하게 만들어주는 일이 급선무다. 특히 한국과 서방국가들이 북한에 투자를 하고 경제협력의 틀을 만들어 주면, 북한이 외부세계에 대해 핵 위협을 하라고 해도 안하게 된다. 그게 진정한 비핵화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려는 생각 자체를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확실한 비핵화다. 그러려면 미국과 유엔,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부친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이제야 다시 빛을 보게 됐다.

▲ 앞으로 남북관계가 더 발전돼서 북쪽에서 필요한 것을 남쪽이 도와주고, 남쪽에서 필요한 부분을 북쪽이 도와주는 식으로 간다면 금상첨화다. 장차 남북한의 외교역량을 볼 때 국제적 위상이 엄청나게 높아질 수 있다. 어떤 강대국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김대중 대통령이 추구하던 햇볕정책의 최종적 완성판이다. 예전에는 햇볕정책을 북한에다 물자들을 퍼주면 북한이 말을 잘들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에서 내놓은 정책으로 알고 있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스스로가 외교력을 잘 발휘해서 한반도 상황을 우리 민족끼리 주도적으로 이끌자는 것이 햇볕정책의 근본정신이다.

 

- 자주(自主)로 가야한다는 얘긴가.

▲ 너무 지나치게 ‘자주’에 몰입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되면, 도리어 외국과 각을 세우며 대립할 수 있다. 또는 어떤 특정한 국가들을 따돌림 하게 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는 만큼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적대국만 양산하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자주’라는 개념은 좀 다르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국가들을 잘 설득하고 지지와 동의를 얻어내 우리 스스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외교력과 강한 나라를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자주’다.

 

-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다자(多者) 동맹’을 주장했는데.

▲ 주한미군은 단순히 미군으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유지를 위한 유엔군으로서 역할을 했다. 이제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북한을 주적으로 가정했던 한․미동맹은 더 이상 존재 의미가 없게 된다. 물론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면서 동북아 안정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미군은 장래에 군사적 균형추 역할은 할 수 있다. 문 특보가 얘기한 것은 당장 한․미동맹을 깨고 미군을 철수시키라는 뜻이 아니다. 앞으로 달라질 안보정세에 맞춰 주변국들이 모두 받아들이고 동의할 수 있는 그런 안보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햇볕정책과 같은 맥락이다. 지금 당장은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고, 앞으로 북한의 입장이 어떻게 전개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길로 가야한다고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안보옵션’을 연구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문 특보 말씀에 동의한다.

 

- 북핵 폐기 문제와 관련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핵 영구폐기(PVID)와 대량살상무기(WMD), 인권문제 등을 놓고 미국이 강하게 압박을 했는데,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제스처였다고 한다.

▲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정책을 연구해서 추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압박이 강했던 것도 아니라고 본다. 트럼프가 외교안보전문가는 아니지만, 워낙 ‘흥정’에 능한 사람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압박조건을 들이대면 시간만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트럼프로서는 지금 빨리 성과를 내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반면에 볼튼 안보보좌관 같은 강경파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말든 어떠한 정치적, 외교적, 전략적인 고려를 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얼마나 강경한지를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볼튼이 북한을 무리하게 압박하게 한 원인 제공자다.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볼튼이 주장한 ‘리비아 식’은 없고, ‘트럼프 식’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끌고 가겠다는 뜻이다. 다른 방식으로 눈치를 보며 가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 이제 그런(볼튼 식의) 무리한 주장은 회담 전까지는 최소한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트럼프 식 모델’의 실체는.

▲ 구체적으로 ‘트럼프 식 모델’이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기가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만의 정치이론이라든가 정치철학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그 틀에 맞춰 사안을 처리하는 방식도 아니다. 본래 그는 ‘비즈니스맨’이고, 협상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정책 수정이 가능한 인물이다. 일단 성공만 하면 된다는 게 그의 사고방식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트럼프는 정치적으로 체면만 살릴 수 있다면 굉장히 융통성 있게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어떤 원칙이나 철학의 부재로도 볼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방식이 또 맞아 들어간다.

 

- 미국은 북핵 완전폐기와 함께 미국으로의 이송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리비아식’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 핵을 폐기해서 어디로 가져가는 것보다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는 게 중요하다. 북한 내부에서도 갑작스레 핵을 포기한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계층이 있고, 군부에도 반발세력이 있을 것이다. 그런 내부적 상황을 감내하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의 체면을 살려주지 않으면 비핵화로 가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이 물밑에서 조용하게 협상을 이끌어가야 한다. 절차상 핵 폐기에 대한 말들을 할 수 있지만, 볼튼처럼 공개적으로 온 세상을 향해 떠들어대면, 북한이 그렇게 하고 싶어도 체면이 구겨지면 못할 수도 있다. 이번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에서도 보여줬듯이, 북한은 모든 것을 자신들이 주도하고, 자신들이 결정한 것으로 국제사회에 확실히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런 확고한 생각이 있기 때문에,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 좋다. 체면은 세워주고 물밑에서 실속을 챙기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면 체면을 살려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상호간에 신뢰가 구축되면 생각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풀릴 수도 있다.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THAAD)는 향후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 원래 사드는 북한의 대륙간탄도탄(ICBM) 개발이 고도화되면서 그것이 두려워 한반도에 배치한 무기다. 하지만 사실은 사드로 ICBM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제조사인 록히드사의 매뉴얼에도 나와 있다. 중장거리용 미사일만 막을 수 있다. 장거리 미사일인 ICBM은 상관이 없다. 비좁은 한반도에서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사용할 이유도 없다. 처음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주장이었다. 만약 북측으로부터 군사적 위협이 사라졌는데, 사드를 계속해서 놔둔다면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협조하는 모양새가 된다. 중국과 외교적으로 심각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 물론 사드 철수는 미국과 협의를 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한국이나 중국이나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사드는 필요 없어진다. 그래서 중국이 북핵문제에 끼어든 것이다. 북핵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사드를 존속시킨다면 과거에 한 말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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