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K-POP 열기, 그 뜨거움의 이면에는…
스웨덴의 K-POP 열기, 그 뜨거움의 이면에는…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8.06.11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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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찬란한 6월의 태양이 싱그럽던 토요일 오후 4시. 스톡홀름 시내 칼라플란(Karlaplan)에 있는 맥심 극장(Maximteatern)은 빈자리가 하나도 없이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주로 10대로 보이는 소녀들과 소년들. 손에는 소박한 야광봉이 두개 씩 들려있고, 극장에 입장할 때부터 한껏 들떠 있다. 마치 한국의 아이돌 그룹 공연에라도 와 있는 듯.

무대가 열리고, 화려한 조명과 함께 모두 15팀의 경연이 벌어진다. ‘2018 K-POP 월드 페스티벌 스웨덴 예선’이다. 거의 스웨덴 현지 청소년이나 청년으로 구성된 참가자들은 한국 아이돌의 히트곡에 맞춰 똑같은 안무를 구사하거나 한국 가수들의 노래를 부른다.

 

▲ 한국 문화 축제 - 지난 해 8월 스톡홀름에서 열린 한국 문화 축제 K-POP 부스. 열광하는 스웨덴의 청소년들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곳이다.

 

KBS 창원방송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매년 전 세계 K-POP 팬들의 열광적인 참여로 열린다. 각 국의 예선에서 1등한 팀 중 30∼40팀을 다시 선발해 경남 창원에서 K-POP 월드 페스티벌 본선을 치른다. 스웨덴에서도 K-POP의 열기는 그 어느 나라 못지않다.

스톡홀름은 물론, 예테보리와 말뫼, 웁살라 등 스웨덴 각지에서 온 참가자 중 2명은 노래를, 그리고 13팀은 아이돌 댄스를 선보였다. 특히 아이돌 댄스 싱크로율은 99%. 원곡 소유자인 미스 A나 CLC, 마마무 등 한국 아이돌의 살인적인 연습량을 감안하면, 참가자들의 실력은 대단하다. 거의 원곡자들에 뒤지지 않는 발군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연습량이 결코 적지 않음도 알 수 있다. 이건 스웨덴에서 K-POP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얼마 전 아내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앞자리에 40대 아버지와 10대 딸이 앉았다. (스톡홀름 지하철은 4개의 좌석이 마주보게 돼 있다.) 조금 후 아버지가 묻는다. “너희가 하는 말이 어느 나라 말이냐?” 나는 한국말이라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다시 “우리 딸이 K-POP을 무척 좋아한다”기에 딸에게 “누구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BTS란다. 역시. 부끄러움이 많음에도 소녀는 BTS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다. 그리고 ”BTS를 만난 적 있냐?“고 내게 물었다.

사실 소녀가 처음 BTS를 좋아한다고 할 때 곧바로 그들이 방탄소년단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들의 음악을 들을만한 나이도 아닌데다, K-POP이라는 이름으로 치장된 한국의 아이돌 문화에 꽤나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편이니, 그들을 알기 쉽지 않으니까. 물론 부끄럼 많음에도 BTS에 관해서만은 말이 끊어지지 않는 그 스웨덴 소녀에게 K-POP을 ‘폄훼’하는 ‘몹쓸 짓’은 절대 하지 않았다. 나도 BTS를 좋아하는 양 가식을 부려봤다.

지난 해 8월 스톡홀름 중심 ‘왕의 정원’이라는 뜻의 공원 쿵스트래드고덴(Kungsträdgården)에서 열린 ‘한국 문화 축제(Koreanska Kultur Festivalen)’. 한국의 전통 의상과 소품, 음식과 생활 문화, 그리고 한글 등을 선보이며 큰 관심을 불러 모았던 행사다. 올해도 8월 25일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데, 연인원 2만 명이 몰릴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 R-10 - 2018 K-POP 월드 페스티벌 스웨덴 예선에서 1등을 차지한 스웨덴 청소년으로 구성된 R-10. 이들은 모모랜드의 ‘뿜뿜’에 맞춰 아이돌 댄스를 선보였다.

 

그런데 이 축제에서도 가장 스웨덴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태권도나 한복, 한식이나 한지 공예 등이 아니라 K-POP이었다. K-POP 춤을 가르쳐 주고, 함께 춤을 추기도 하는 부스는 축제 기간 내내 스웨덴 청소년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행사에 참가했던 한 스웨덴 고등학생은 “스톡홀름 애들은 모두 여기 모인 것 같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복 체험이나 한지 공예 체험, 태권도 시범 공연 등이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당시 축제의 주인공은 K-POP 체험인 것은 사실이다.

스톡홀름 시내 한 고등학교에는 한국어 교실이 있다. 지난해부터 학생들이 몰렸다. 보통 한 반에 30명 이내인데, 한국어 교실은 그 숫자를 넘어서 과밀 현상까지 빚었다. 수강 신청이 끝났음에도 청강을 하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학생들이 몰린 것은 K-POP의 영향이다. 학생들은 한국어 교실을 통해 K-POP을 더 알고 싶어 한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의 K-POP은 일시적 현상이라기에는 지속성이 강하고, 또 열광적이다. 많은 사람들은 K-POP이 삼성전자나 LG전자, 현대기아자동차나 월드컵, 심지어는 남북정상회담보다 더 스웨덴 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고 얘기한다. 거의 사실에 부합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좋은 시선으로만 봐야 할까? ‘아는 것’과 ‘제대로 아는 것’의 엄청난 괴리감이 존재하지는 않을까?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5월 스톡홀름 대학교 한국어과에서 ‘한국의 대중음악’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K-POP으로 대표되는 현재 한국의 대중음악이 스웨덴은 물론 해외에서 큰 관심을 받는 것은 한국 대중음악을 왜곡해 인식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장이기도 한 김 교수가 1920년대 윤심덕의 ‘사의 찬미’에서부터 촛불혁명까지 관통하는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역설하는 것을 들은 스톡홀름대학교 한국어과 학생들 대부분은 김 교수의 이런 지적에 동의했다. 한국 K-POP에 관심이 많은 일부 학생은 K-POP의 원류인 한국의 아이돌 대중음악이 가지는 단편적이고 소비지향적이며 감각일변도의 표현이 자칫 한국 대중문화를 편향적으로 곡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 Starling - 이날 참가한 팀들은 원곡자인 한국의 아이돌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는 춤 실력을 보여줬다. 참가자 중 GOT7의 ‘Look’을 선보인 Starling.

 

심지어는 일부(아니 어쩌면 꽤 많은) 아이돌 연습생들에게 가해지는 청소년 학대와 성폭력조차 K-POP이라는 이름으로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를 오히려 한국 내부가 아닌 스웨덴의 대중 문화계에서 제기하기도 한다. 일부 성공한 K-POP이 한국 아이돌 대중문화의 병폐까지 불가피성, 또는 통과의례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이야기를 돌아간다. ‘2018 K-POP 월드 페스티벌 스웨덴 예선’에 참가한 15팀 중 춤이 아닌 노래를 부른 건 2명뿐이다. 한 명은 엑소의 노래를, 그리고 한 명은 아이유의 노래를 불렀다. 아이돌의 곡이 아닌 것은 15팀 중 단 한 곡뿐이다. ‘한국의 가요계는 아이돌 뿐’이라는 10년이 훨씬 넘은 ‘왜곡’은 스웨덴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즉, K-POP은 한국의 대중문화가 아니라 아이돌 문화일 뿐이라는.

K-POP으로 기억된 대한민국은 과연 어떨까? 한국 아이돌의 춤을 추고,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스웨덴의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대한민국은 언제까지 ‘한국 = K-POP’으로만 한국을 어필해야 할까? 그렇게 알린 ‘한국’은 진짜 ‘대한민국’의 어느 정도일까? 나도 모르는 ‘모모랜드’라는 아이돌의 노래 ‘뿜뿜’으로 ‘2018 K-POP 월드 페스티벌 스웨덴 예선’에서 1등을 하고 경남 창원으로 갈 꿈에 부풀어 있는 스웨덴의 ‘R-10’이 한국을 가게 되면 아이돌 말고 다른 한국을 더 많이 봤으면 좋겠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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