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 텃밭의 할머니들이 멸종직전의 토종 씨앗 보존해와”
“시골마을 텃밭의 할머니들이 멸종직전의 토종 씨앗 보존해와”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8.06.1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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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변현단 '토종씨드림' 대표-1회

토종 씨앗이 사라지고 있다. 정부의 영농정책은 농부가 갖는 권리, 즉 ‘농부권’과는 거리가 멀다. 국제생물다양성협약에 가입했지만 농부종자권(農夫種子權. 농부가 갖는 종자에 대한 권리)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친환경 전통농업을 통해 생산한 농산물은 찾아보기도 힘든 실정이다. ‘씨앗과 유통’을 장악한 종자회사들은 1회만 재배가 가능한 ‘터미네이터’ 종자, 개량종자로 국민 입맛을 바꿔 놓았다. 전통 감자와 고구마, 고추, 배추, 밀, 옥수수 등 식품들은 유전자변형작물로 대체된 지 오래다. 토종은 사라지고 외래종이 판을 치는 현실이다. 농민들은 종자권과 유통권을 박탈당했고 국민들의 식량주권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농민들은 씨를 뿌려 작물을 생산하고 다시 씨를 수확해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권력과 자본이 토지를 장악하면서 그런 자연농법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다국적 종자기업들은 종자시장을 장악했다. 농촌은, 농업은 식민지로 전락했다. 한때 농업독립을 꿈꾸는 자활공동체가 여기저기 생겨났지만 그마저 사라지는 추세다. 경기도 시흥에 있던 도시빈민여성 자활공동체 ‘연두농장’도 농업자립을 위한 전진기지였다. 이곳에서 8년 동안 자연농과 천연약초 재배를 배웠다는 ‘토종씨드림’(Native Seedream) 변현단 대표는 “당시는 모두가 어려웠기 때문에, 농사도 돈이 안 드는 친환경농업을 했다. 천연발효퇴비를 직접 만들어 기른 구억배추와 무릉배추를 나누기도 하고 절임배추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 변현단 토종씨드림 대표

 

하지만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연두농장을 떠나야만 했다. 그때 뿔뿔이 흩어진 연두회원들은 공동체마을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다. 변 대표는 전남 곡성의 산골로 들어갔다.

“연두농장에 있을 때 농업기술센터가 준 ‘F1’ 때문이었다. ‘터미네이터’ GM 옥수수씨였다. 농사가 완전 엉망이 됐다. 그때는 그런 종자가 있는 지도 잘 몰랐다. 씨를 매년 구입할 수밖에 없는 농업체계도 충격이었다. 씨의 중요성을 그때 깨달았다.”

이런 농업현실을 바로잡아보자며 결성한 단체가 ‘토종씨드림’이다. ‘토종씨드림’은 국내 최초의 토종 씨앗보급 민간단체다. 2008년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토종 씨앗을 찾아 전국을 누비는 변 대표가 현재까지 개인적으로 수집한 종자만 800품종이 넘고 ‘토종씨드림’이 보유한 종자는 5800품종에 달한다.

곡성의 1500평 밭에서는 210여 가지 품종의 토종 작물들이 새로운 토종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변현단 대표에게서 토종 씨앗 수집과 보급 문제, 종자산업, GMO, 농부종자권, 식량주권 등에 대해 깊이 있게 들어보았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 귀농 15년째다. 요즘 생활은 어떤가.

▲ 지금은 어느 정도 정착을 했다. 꿈꿔왔던 씨종자를 농민과 일반인에게 나누어주며 살고 있다. 씨 수집은 여전히 중요일과다. 1년 중 절반은 전국의 농촌지역에서 수집활동을 하며 보낸다. 이전부터 농업활동가로서 토종 씨앗을 보존하고 나누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씨 보급도 사실 조심스럽다. 무작정 농민에게 씨종자 수확용 작물재배를 맡기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대부분 상업농을 하고 있고 농가소득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략적 재배를 통해 씨앗을 확보하고 있다.

 

- 산골 생활과 농사가 쉽지 않을 텐데.

▲ 제 옆에서 ‘토종씨드림’ 일을 배우며 농사를 도와주는 조력자가 한 분 계시다. 올해부터 같이 농사도 짓는다. 지난해에는 120품종을 심었고, 올해 210종을 심었다. 하지만 농사는 1주일에 절반 밖에 못한다. 외부일과 씨앗수집, 업무회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엔 콩을 추가해 심으려 한다. 콩은 한국이 원산지다. 토종 콩들이 주변에서 사라졌다. 그동안 재배하지 않고 사라졌던 콩 중 30년 만에 다시 찾은 것도 있다. 그런 콩들을 재배해 씨종자를 채종해 일부를 나눠주려 한다. 저희는 100% 친환경농업이다. 기계도 농약도 쓰지 않는다. 이곳을 찾는 분들이 ‘좋은 토종작물을 왜 안 파느냐’고 늘 묻는다. 저로서는 파는 게 중요하지 않다. 나누는 것이 내 사명이다. 씨앗과 작물을 나눈다. 토종작물을 먹어보면 맛이 장난 아니다. 내 집에서 차린 자연밥상을 한번 드셨던 분들은 모두 감동한다.

 

- ‘토종씨드림’은 어떤 계기로 설립했나.

▲ GMO로 국내농업이 잠식된 상황에서 토종 씨앗만큼은 지켜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들었다. 연두공동체에 있을 때, 농업기술센터가 나눠준 옥수수 씨를 받아 심었는데, 이듬해에 완전히 엉망이 됐다. F1종자 때문이었다. 개량종이 아닌 유전자가 변형된 ‘터미네이터’(1회 재배만 가능한 작물) 씨앗이었다. 타격이 컸다. 그때는 그런 종자에 대한 정보조차 없었다. 당시 언론에 ‘자활농민, 옥수수 재배실패’로 보도되기도 했다. 가뭄 때문에 망친 걸로 알았다. 나중에서야 아주 특이한 보급종자 씨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때서야 씨앗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됐다. 그리고 그걸 계기로 농업의 현실을 심각하게 느낀 8개 농민단체의 수장들이 모여 2008년에 만든 단체가 ‘토종씨드림’이다. 초기에는 결성은 해놓고 전국각지로 씨를 수집하러만 다녔다. 토종씨앗이 있을만한 농촌을 다 뒤졌다. 특히 마을 할머니들을 많이 만난다. 작은 텃밭에 혼자 농사지어 먹고살아가는 할머니들은 거의 토종 씨앗을 간직하고 있었다. 고유의 맛 때문에 씨앗을 온전히 보존해온 유일한 분들이다.

 

- 전략적으로 씨앗을 보급한다고 들었다.

▲ 무차별로 씨를 나눠주는 것보다 일정량을 분배한다. 어떤 농민에게는 500평을, 또 다른 농민에게는 300평을 재배하라고 권유한다. 규모가 있게 재배하면 씨 보급 속도가 그만큼 빨라진다. 밀의 경우 참밀은 앉은뱅이밀보다 품종도 우수하고 맛도 좋다. 그러다보니 농민들은 돈이 되는 참밀농사만 짓는다. 그러면 단일품종으로만 쏠려버린다. 안되겠다 싶어 작년부터 오리지널 토종 참밀 6품종을 선별해 곡성의 500평 밭에 농촌보급용으로 먼저 심었다. 밀은 지역별로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재배과정에서 어떤 변화나 성장특성 등을 관찰하고 비교실험을 한다.

 

- 씨앗을 보관하는 것도 문제일 텐데.

▲ 씨앗을 수집하면 1차적으로 저장이 중요하다. 외부환경요인으로 손실될 수 있기 때문에 종자은행 ‘씨드볼트’나 ‘유전자원센터’에 우선 저장한다. 그런 다음 2차로 도시농민이나 2만여명의 ‘토종씨드림’ 농민회원들에게 나눠준다. 전국 각 지역에 있는 30개 공동체에 의뢰해 씨앗을 증식하고 수거한다. 각 지역 농민공동체에 콩 작목반과 고추작목반, 잡곡작목반을 별도로 만들어 품목별 씨앗생산과 확산을 꾀하고 있다. 콩의 경우, 재배하고 싶어 하는 농민들의 요청이 많아 30~40명을 선정했다. 이분들은 한 품종의 콩만 재배하게 된다. 재배된 토종 콩과 다른 토종작물들은 올 12월 KBS가 마련한 프로그램에서 선을 보인다. 토종 콩과 고추, 잡곡, 볍씨 등 품목별로 워크숍이 개최될 예정이다.

 

- 종자은행 ‘씨드볼트’를 만든 이유는.

▲ 지금 세계는 지구온난화와 생태계 파괴로 생물자원의 다양성 보호가 필요하다. 천재지변이나 전쟁 등 인류재앙에 대비한 식물종자자원의 영구보존도 시급하다. 종자은행(Seed Vault)은 Seed Bank, Seed Storage, Gene Bank 또는 ‘최후의 날 저장고’(Doom‘s day Vault)로도 불린다. ‘씨드볼트’는 세계적으로 식물종자에 대한 장기저장과 품종보존, 육종농가 씨 보급을 담당한다. 토종품종 멸종방지와 유전적 특성 이용이 언제든 가능하다. 한국은 지난 5월 3일 영구저장이 가능한 종자보관기관 ‘씨드볼트’를 경북 봉화에 210억 원을 투입해 구축했다. 세계 두 번째 규모다. 200만 품종의 식물종자들을 지하 40m, 영하 20도에서 영구보존이 가능하다. 진도 7 지진에도 끄떡없도록 설계됐다. 기후재해와 자연재해 발생 등으로 멸종될 종들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변현단 대표는…

약력 : 충남 논산 출생, 생태농업활동가, 현 토종씨드림 대표

저서 : ‘연두’ ‘약이 되는 약초음식’ ‘자급자족사회를 위한 農이야기’ ‘알맞게 욕구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자립인간’, 시문집 ‘색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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