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록 여행스케치> 안보 관광지, 양구의 여름 속으로

▲ 화채그릇을 닮은 펀치볼

휴전선 한가운데, 첩첩한 산으로 에워싸인 양구는 화천과 춘천, 인제와 경계에 있는 최전방 군사도시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 국토의 정중앙, 비무장지대를 끼고 있는 고장답게 어딜 가나 천혜의 자연이 기다린다. 섬 지방을 제외하고 가장 작은 군(郡)에 속하지만 볼거리 배울거리 많은 여행자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어느덧 68년. 남북분단은 여전히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동서를 가로지른 휴전선은 언제쯤 그 견고한 철책을 활짝 열어젖힐 것인가. 여름에 찾아가는 양구는 이런 상흔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고 평화통일을 염원하기 위함이다.

 

▲ 두타연 조각공원

 

양구는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였다. 도솔산전투, 피의능선전투, 대우산전투, 크리스마스고지전투, 949고지전투, 단장의능선전투, 가칠봉전투, 백석산전투, 펀치볼전투 등 피비린내 나는 크고 작은 전투가 쉼 없이 벌어졌다. 1951년 6월부터 12월말까지 사망하거나 실종된 군인만 2만8300여 명에 이른다니 그 당시의 처절한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세월이 많이 흘러 가뭇해진 지금, 양구는 그 때의 기억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요하기만 하다.

한국전쟁 막바지까지도 치열한 전투가 계속됐던 양구군 곳곳에는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는 전투 전적비가 서 있다. 북한강과 파로호의 물길을 따라가다 만난 백석산 전투전적비(방산면 송현리). 해발 1,142미터의 백석산은 휴전선을 끼고 있는 최전방고지로 1951년 9월 24일부터 10월 1일까지 8일간에 걸쳐 물고 물리는 전투가 이어졌던 곳이다. 이른바 백석산고지 탈환전이다. 그러나 적군을 향해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음에도 지형이 매우 험악하고 보급로마저 끊겨 일부 고지만 탈환한 채 작전을 끝내야 했던 아픈 역사가 있다.

 

▲ 열목어가 사는 두타연계곡

☞민통선이 숨겨놓은 명소

여기서 길은 두타연 계곡으로 연결된다. 두타연으로 가는 길은 때 묻지 않은 자연과의 기분 좋은 동행이다. 중간 중간 보이는 지뢰 표지와 시멘트 덩이의 전차방어벽은 이곳이 민통선 안이라는 걸 알려준다.

두타연은 금강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로 깊은 골짜기를 흐르다가 굽은 한 부분이 움푹 꺼지면서 만들어진 폭포 아래 너른 소를 말한다. 수심 12미터의 연못인 두타연(용소 또는 드래소)은 둘레가 50미터에 이르고 소 건너편엔 커다란 검은 동굴(일명 보덕굴)이 입을 벌리고 있어 자못 신비롭다.

 

▲ 연못과 폭포, 동굴로 이루어진 두타연
▲ 두타연 탐방길에서 본 두타연 계곡
▲ 두타연 탐방길에 있는 양구전투위령비

 

두타연 계곡물은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을 띤다. 계곡물에 살고 있는 열목어, 금강모치, 쉬리, 꺾지, 버들치 같은 민물고기는 이곳이 때 묻지 않은 청정지대임을 말해준다. 운이 좋다면 숲에 사는 산양과 노루, 여우와 고라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연못으로 떨어지는 폭포 위 바위에 설치된 데크에 오르면 웅장한 비경이 펼쳐진다.

두타연을 둘러보고 방문객들을 위해 만든 평화누리길(탐방로)도 걸어보자. 이목정과 비득 안내소 사이 계곡을 따라 만든 평화누리길(총 길이 12km)은 트레킹이나 자전거로 돌아볼 수 있다. 자전거는 안내소에서 대여해준다. 평화누리길에 있는 양구전투위령비는 한국전쟁에서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고자 1994년 12월 3일 박두산 부대장이 건립했다고 한다.

 

▲ 갖가지 식물 생태계를 볼 수 있는 두타연 탐방길
▲ 두타연 탐방길에 통일을 염원하는 리본이 걸려있다.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비목)이여⋯.”

위령비에 적혀 있는 글귀가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비목’이란 이 가곡은 한명희 교수가 작사해 오늘날까지 애창되고 있다. 그는 1939년 충북 중원 출생으로 ROTC 육군 소위로 임관되어 수색중대 DMZ 초소장으로 화천 북방의 백암산 고지에서 군 생활을 했다.

오밀조밀 이어진 탐방로를 걷다보면 금낭화, 큰꽃으아리, 올괴불나무, 쪽동백, 회목나무 등 다양한 들꽃과 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두타연 탐방은 지난해 11월부터 절차가 간편해져 당일 개별 관광도 가능하다. 출입 신청서와 서약서를 작성해 신분증과 함께 안내소에 제시하면 출입증을 건네준다.

 

▲ 펀치볼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을지전망대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해안분지 마을

굽이굽이 이어진 돌산령 길을 허위허위 넘는다. 문명의 이기라는 자동차지만 이 길에선 엔진소리를 거칠게 낸다. 그렇게 고개를 넘자 눈앞에 멋진 정경이 펼쳐진다. 움푹 파인 분지와 분지를 둘러싼 산들이다. 시원하다 못해 장쾌한 장면이다.

해안면 일대의 저 분지는 바로 펀치볼이다. 주발처럼 생긴 펀치볼은 그 자체가 희귀한 볼거리다. 자세히 보면 거대한 화산 분화구 같은 모습인데 해안면 땅은 이 펀치볼 안에 다 들어 있다. 멀리서 보면 아주 작은 땅처럼 보여도 직접 다녀보면 제법 넓다는 걸 알 수 있다. 직경이 동서 8.5㎞, 남북 7㎞, 둘레는 무려 33㎞에 이른다.

 

▲ 1990년 3월에 발견된 제4땅굴
▲ 북한이 남침을 목적으로 파내려온 4땅굴

 

‘펀치볼’이란 이름은 한국전쟁 중 외국군 종군기자가 이 지형이 야채와 소스를 섞을 때 쓰는 둥글고 큰 그릇인 펀치볼(Punch Bowl)을 닮았다 해서 붙였다고 한다. 현재 653세대 1400여 명의 주민들이 무, 감자, 배추 등 채소류와 산채류 등 지역 특산물을 키우며 살아간다. 특히 무 잎을 뜯어말린 시래기는 이 마을의 고소득 작물이다. 해안면은 농지의 3분의 1이 무밭이다. 해서 가을이면 집집마다 무잎(시래기)을 뜯어 말리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체적으로 영농조합을 조직해 연간 30여 톤의 시래기를 생산한다. 이곳 시래기는 다른 지역보다 섬유질과 비타민이 풍부해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다. 펀치볼마을(http://punchbowl.invil.org) 참조.

펀치볼은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펀치볼에는 북한의 실생활을 볼 수 있는 양구통일관과 도솔산전투, 펀치볼전투, 피의 능선전투 등 6.25 당시 격렬했던 양구 지역 9개 전투사를 모아놓은 양구전쟁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 양구 지역 9개 전투사를 모아놓은 전쟁기념관
▲ 선사박물관에 전시한 고인돌 무덤

 

비무장지대(DMZ) 철책 위에 세워진 을지전망대와 북한이 남침을 목적으로 파내려온 4땅굴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두 곳은 양구통일관에서 출입신청을 해야 들어갈 수 있다. 가칠봉 능선에 자리잡은 을지전망대에 서면 북한군 주력부대가 있는 매봉, 운봉, 간무봉을 비롯해 북한군 초소와 대형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과 차일봉, 미륵봉도 또렷이 보인다. 을지전망대는 또한 펀치볼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어 양구를 찾았다면 꼭 가보길 권한다. 1990년 3월 3일 양구 동북쪽 26㎞ 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된 4땅굴은 관람용 전동차를 타고 땅굴 내부를 볼 수 있다. 입구에서 100미터 정도까지 들어갈 수 있는데 땅굴 광장에는 기념비와 군 장비가 전시돼 있다.

 

▲ 박수근미술관
▲ 박수근미술관에 있는 박수근 화백 동상

♦박수근미술관=세계적인 화가 박수근 선생의 얼을 기리기 위해 미술관을 비롯해 전시장, 스튜디오 등이 들어서 있다. 1914년 이곳(양구읍 정림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봄이 오다’, ‘고목과 여인’, ‘나무와 두 여인’, ‘봄’, ‘앉아있는 두 남자’, ‘탑돌이’ 등 향토애 짙은 많은 작품을 남겼다. 전시장에 걸려 있는 다양한 유화, 판화, 스케치화 등은 대가의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일생을 가난하게 살았던 그가 손수 오려서 모은 르느와르, 밀레 등 대가들의 작품 스크랩북과 지인에게 보냈던 편지 등도 볼 수 있다. 반원형의 박물관 뒤편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박수근미술관에서 3km 거리에 있는 선사박물관은 양구 지역에서 출토된 신 구석기 시대 유물 650여 점이 전시된 산 교육장이다. 선사시대의 수혈주거지를 본 따서 지은 박물관 건물과 지석묘군, 움집, 석기제작체험관 등은 선사인들의 지혜와 생활문화를 더듬어보게 해준다.

 

▲ 대암산생태식물원

♦대암산생태식물원(양구생태식물원)=민통선과 대암산 일대에서 자라는 노랑무늬붓꽃, 끈끈이주걱, 해오라비난, 왜솜다리, 금강초롱, 개느삼 따위의 희귀식물을 한데 모아둔 자연학습장이다. 식물원은 대암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대암산 정상 부근에는 하늘로 올라가던 용이 쉬었다는 ‘용늪’이 있다. 이 습지는 약 4천-5천 년 전에 형성된 걸로 알려져 있는데, 환경부에서 자연생태보전구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여행팁(지역번호 033)

▶가는 길: 서울춘천고속도로 춘천나들목→46번국도→배후령터널→추곡터널→웅진터널→양구읍→31번국도→460번지방도→고방산리→두타연. 서울-양구,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22회(06:30~19:35) 버스 운행, 약 2시간 10분소요. 양구시외버스터미널: 1666-0335. 두타연은 오전 9시~오후 4시까지 출입할 수 있다. 신분증 필수. 월요일은 쉰다. 양구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박수근미술관행 버스 1시간 간격 운행, 소요시간 10분. 이목정안내소(033-482-8449). 양구 문화관광(http://ygtour.kr) 참조.

▶맛집: 펀치볼 주변에 있는 정주골(481-6777), 시래원(481-4200) 등은 시래기를 재료로 한 정식이 맛있다. 산채비빔밥이 일품인 청수골쉼터(481-1094 방산면 송현리)도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맛집이다.

▶숙박: 양구읍내에 kcp호텔(482-7700), 삼호장모텔(481-3367), 센츄럴모텔(481-2121), 대암모텔(481-1993) 등이 있다.

 

<여행작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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