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의 동시성, ‘라떼 파파’를 아십니까?
양육의 동시성, ‘라떼 파파’를 아십니까?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8.07.16 1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스웨덴의 크고 작은 도심이든, 지방의 소읍이든 거리나 공원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홀로 유모차를 끄는 아빠들의 모습니다. 이른바 ‘라떼 파파(Latte papa)’다. 물론 스톡홀름이라는 가장 큰 도시에서는 더욱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한 손에는 유모차 핸들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 컵을 들고 여유롭게 거리를 거니는 남성들의 모습.

물론 요즘 유모차는 좀 더 좋아져서 핸들에 커피 홀드가 붙어 있어 커피 컵을 들고 있던 한 손이 한가해졌다. 대신 휴대 전화를 들고 있거나, 책을 들고 있는 경우도 많다. 아무튼 이런 연유로 생겨난 단어인 ‘라떼 파파’는 스웨덴의 여러 가지를 설명하는 단어가 됐다.

 

▲ 공원의 라떼 파파 - 시내 공원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노는 아빠들이 많다. 이들 중에는 육아 휴직인 사람도 적지 않다.

 

우선 ‘라떼 파파’는 ‘라떼’와 아빠(papa)와 아기, 그리고 유모차, 이 네 가지의 결합 아이템이다. 가장 중요한 요소가 유모차다.

스웨덴은 유모차의 천국이다. 주택가든 시내 한복판이든 늘 유모차가 넘친다. 가장 큰 이유는 유모차는 모든 시내버스가 무료라는 점이다. 유모차는 누가 끌든 버스 뒷문으로 승하차를 한다. 그래서 스웨덴의 엄마들은 외출하기가 좋다. 스웨덴 시내버스의 1회 교통비가 44크로나(약 5600원)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교통비 절약의 효과가 있다.

‘라떼 파파’라는 말은 ‘양육의 동시성’이다. 스웨덴에서 양육은 철저히 부부가 공유하는 일이다. 각 가정에 따라 양육 부담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엄마와 아빠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맞벌이 부부 비율이 85% 이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또 여성의 사회 참여율도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양육의 동시성’인 것이다.

스웨덴은 만 1세 이상이면 유치원에 보낸다. 맞벌이 비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다. ‘너희는 일해. 아이는 국가가 키울게’의 현실화다. 그런데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것도 주로 아빠들이다. 유모차에 탄 아이를 데려오는 길에 공원에 들려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동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기도 한다. 그러다가 한 동네 가까운 이웃을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집 앞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다른 자녀와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오후 퇴근 시간 무렵부터 특히 ‘라떼 파파’들이 많이 보인다. 직장 내에서 일의 집중도가 무척 높은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평안하고 편안해 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또 ‘라떼 파파’는 노동의 여유로움을 의미한다. 아빠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와 산책을 하는 일은 주로 오후 시간과 주말에 이뤄진다. 회사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지만 오후 3시부터 퇴근시간이 시작되는 스웨덴의 기업 노동문화의 일면이다. 야근이라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생소한 곳이기에 여유로운 저녁 시간과 주말은 특히 아빠들이 아이들과 친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나이 즈음의 아기가 태어나면 회사의 일을 줄이는 아빠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풀타임 근무자가 자발적으로 파트 타이머로 일의 형태를 바꾸기도 한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이 되는 셈이다. 대신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더 늘린다. 당연히 수입은 준다. 하지만 생활이 지장이 생길 정도는 아니다.

 

▲ 길 위의 라떼 파파 - 라떼 파파는 스웨덴의 노동과 기업 문화의 여러 단면을 보여준다. 시간의 여유는 세게에서 가장 가정적이라는 스웨덴 가정을 만드는 요소다.

 

어차피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같은 종류의 업무라면 시간당 수입은 같다. 이미 1930년 대 스웨덴 노조와 기업, 그리고 정부를 ‘완벽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골자로 하는 연대 임금제를 확립해 놓았기 때문이다. 수입이 주는 것은 순전히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데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고, 충분히 수용 가능한 일이다.

아이를 낳았으니 기저귀 값, 분유 값 때문에라도 야근 더 하고 특근 더 하고 휴일 근무를 늘여서라도 수입을 늘려야 한다는 부담감은 전혀 없다. 사고방식이 그렇다. ‘아이를 돌보느라 월급이 적어졌으니 식비를 줄이자’는 게 그들이다.

또 어느 정도 아이를 키워놓고 풀타임 정규직으로 복귀하고 싶을 때 충분히 가능하다. 이는 복귀가 보장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고, 비교적 잘 되는 편이다. 이유는? 그와 같은 또 다른 아빠들은 늘 생겨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라떼 파파’인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실업자는 아니다. 아빠 육아휴직 사용자다. 스웨덴의 육아휴직은 총 480일이다. 이것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480일의 육아휴직은 원칙적으로 엄마와 아빠가 나누어 쓸 수 있는데, 절대 한 사람이 다 사용할 수 없다. 한 사람이 최대 사용할 수 있는 한도는 390일이다. 즉 엄마든 아빠든 한 사람은 390일까지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고, 나머지 한 사람이 반드시 90일의 육아휴직을 사용해야 한다.

이런 ‘라떼 파파’는 출생률의 증가로 이어진다. 스웨덴은 결혼을 잘 안하는 사회다. 하지만 출생률은 유럽 최고 수준이다. 지난 14일 EU 공식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Eurostat)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 해 인구대비 출생자 수에서 스웨덴은 인구 1000명 당 11.5명으로, 12.9명이었던 아일랜드에 이어 유럽 전체에서 2위였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 라떼 파파 - ‘한 손에는 라떼 컵을, 다른 한 손에는 유모차 핸들을’에서 유래된 ‘라떼 파파’라는 말은 가장 스웨덴다운 삶의 전형이다.

 

결국 ‘라떼 파파’가 많다는 것은 여성들의 출산에 대한 부담을 없애는 요소 중 하나다. 유로스타트의 같은 조사에서 스웨덴의 인구가 부쩍 늘어난 것은 높은 출산율 때문이다. 대규모 난민 수용이라는 이유와 함께 인구 증가에 따른 미래 경쟁력이 더 높아지는 요인인 것이다.

‘라떼 파파’는 단순하지 않다. ‘라떼 파파’에는 스웨덴의 다양한 장점과 미래지향의 경쟁력이 담겨 있다. 또 아이들의 정서에도 큰 영향을 미쳐, 스웨덴이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에서 상당히 낮은 평가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국가의 경쟁력이나 젊은이들의 창의성이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뒤처지지 않는 것은, 결국 아이들의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인성 형성이 이런 육아를 통해 이뤄짐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스웨덴의 노동 문화나 기업 문화가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족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 보여주는 게 ‘라떼 파파’다. ‘저녁이 있는 삶’이나 인간의 가치를 중요시 하는 노동의 유연성도 그렇다.

스웨덴에 처음 와서 공원이나 길에서 유모차를 끌고 한가하게 다니는 아빠들을 보면서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면? 스웨덴의 모든 것이 그 ‘라떼 파파’에게 담겨 있다는 것을 다시 공부해야 할 것이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