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남미여행기-열네 번째 이야기 / 강진수

27.

우리는 모든 것이 다 잘 된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호스텔에 복귀했다. 이제 쿠르미 호스텔에 머물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곳 숙소는 시설이 그렇게 좋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여행자들의 고요한 쉼터로서 제 격이었다. 특히 비가 올 때 처마 밑에서 코카차를 마시다보면 쿠스코를 이미 완벽하게 다 둘러본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숙소가 주는 어떤 특별한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았다. 그 분위기를 우리는 사랑했고 그렇기에 결국 떠난다고 하니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보다도 더 많은 코카차를 마셨고 더 오랜 시간 처마 밑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다시는 이와 똑같은 편안함을 되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다시 똑같은 호스텔로 돌아온다고 해도. 오직 이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이곳에만 존재한다.

나와 형은 굳이 멀리 가지 않고 호스텔과 그 주변을 돌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르마스 광장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아르마스 대성당과 쿠스코 대성당도 여전히 늠름하게 서있었다. 잉카 시절부터 있었다던 거대한 돌 벽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쿠스코와 작별을 나눴다. 내일이면 정든 쿠스코를 떠나 또 다른 여행지로 떠난다. 쿠스코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물러 있었으므로 그새 떠나는 것이 낯설어졌는지도 모른다. 밤이 되자 언제나 그랬듯 쿠스코 전역에는 별이 곱게 내려앉았다. 호스텔로 가는 오르막에 서있다 보면 하늘에 뜬 별들과 도시에 내려앉은 별들이 서로 대칭을 이루었다. 이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니. 부슬비가 내리는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원주민 복장을 한 무리가 내게 다가와서 내 손을 잡는다. 나는 춤을 추는 시늉을 하며 호응한다. 잊지 못할 쿠스코의 밤이 지나가고 있다.

 

 

쿠스코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위해 우리는 사치를 조금 부려보기로 했다. 호스텔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골목에 맛 좋은 화덕피자집이 있었다. 다른 식당보다는 가격대가 조금 있어 한 번 가고 말았지만, 이제 쿠스코뿐만 아니라 페루 전체에서 마지막 저녁을 먹는 것일 텐데 가격 따위가 무슨 대수인가. 둘이서 의기양양하게 들어가 커다란 패밀리 사이즈 피자를 시켰다. 그리고 그토록 갈구하면서도 물이나 코카차로 대신했던 콜라도 큰 페트병으로 하나 시키고 맥주도 두 병 시켰다. 그러고 나니 나도 모르게 뭔가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피자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를 내며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조식을 먹을 때 몇 마디 나눈 브라질 친구들이었다. 물론 친구라 하더라도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중년의 아저씨들이었지만 그들과 나는 얼마 대화를 하지 않았음에도 좋은 친구 사이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한국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또 대화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즐거운 에너지를 불어넣어주곤 했다. 누군가는 브라질 사람 특유의 밝음이라고 했는데 어느 정도 이 말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의 뜨거운 에너지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년이라는 중후하고 정적인 나이 대에도 그들은 만사에 긍정적이고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그게 내겐 참 멋있게 느껴지곤 했다.

 

 

여하튼 그들이 가게로 들어와서 반갑게 우리와 인사를 나눴다. 그들도 피자를 시키면서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이 맛있냐고 묻기에 나름 메뉴 추천을 해주기도 했다. 피자를 먹으면서도 한국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자신들도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둥, 멀리 가고 싶은데 부담스러워서 가까운 페루로 휴가를 왔다는 둥, 나와 형은 오히려 브라질이 너무 가보고 싶었음에도 치안이 좋지 않은 이유로 포기했다는 것도 이야기해주었다. 그들도 리우나 상파울루 같은 브라질의 대도시가 치안이 매우 심각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지금 시즌에는 가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들은 와인을 시켰는데 우리 테이블에 와서 건배를 권했다. 다 함께 ‘살룻’을 외쳤다. 스페인어로 건배라는 뜻이다. 꼭 쿠스코에서의 마지막 밤을 위하듯이.

 

28.

늦게 출발하는 버스였기에 다음날에도 물론 여유로웠다. 여느 때처럼 여유로운 조식과 점심을 먹고,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으며 코카차를 마시기도 하면서 편안한 오후를 보냈다. 그러다보니 금방 시간이 흘러 버스 터미널로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짐을 다 동여매고 호스텔 처마 밑에서 예약해놓은 택시를 기다렸다. 호스텔의 직원 아주머니는 우리가 호스텔에 머무는 동안 친절하게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우리가 떠난다고 하자 아쉬워 하셨다. 꽤 오랜 기간 이 호스텔에 머물면서 마추픽추 간다고 짐도 맡아주시고, 투어 픽업이 늦어지자 비 오는 새벽에도 전화 걸어주시면서 도와주시고, 심지어 떠나는 택시 예약도 이 아주머니께서 맡아 주셨다. 그러니 감사한 마음과 작별의 아쉬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수밖에.

아주머니가 버스는 어느 것으로 끊었냐고 물었다. 우리는 당당하게 크루즈 델 수르 버스를 탄다고 말씀드렸다. 아주머니가 갸웃거리시더니 영수증을 좀 볼 수 있겠냐고 묻는다. 뭔가 안 좋은 예감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나는 느꼈다. 아주머니는 크루즈 델 수르가 볼리비아 국경을 넘는 게 없을 텐데, 하시면서 영수증을 찬찬히 살펴보셨다. 하지만 영수증에 크루즈 델 수르 상표가 딱 하니 자리 잡고 있지 않느냐고 그녀에게 반문해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영수증에 적힌 버스 회사 전화번호로 금방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스페인어로 주고받다가 전화를 끊은 그녀의 한 마디. “이거 크루즈 델 수르 아니래.”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곧 터미널로 떠날 택시가 도착할 마당에 이제 와서 예약한 버스가 엉터리라니. 알고 보니 크루즈 델 수르를 취급하는 버스 회사가 맞긴 맞았으나 볼리비아 국경을 넘는 버스는 다른 버스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다른 버스는 과연 어떻겠냐고 아주머니께 물어보자 그녀가 말하길 아무래도 좋은 버스는 아닐 것이고 아마 좀 낡은 버스일 것 같다고 했다. 크루즈 델 수르라고 생각하고 그 비싼 값을 치렀건만, 편하고 사치부리며 가려다가 완전 코 베인 셈이었다. 아주머니가 지금이라도 환불하고 다른 버스를 타겠느냐고 친절히 물어봐주었지만, 이미 생각한 것보다 쿠스코에서 오래 머무른 상태에서 또 일정이 틀어지면 여행 전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예약된 버스를 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결국 아주머니와 다른 의미로 눈물의 작별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터미널까지 왔지만 역시나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에게 티켓을 판 아저씨는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고, 똑같은 부스에 가서 크루즈 델 수르라고 적힌 간판을 가리키며 따져 물어도 직원은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었다. 겉보기에도 낡은 버스 한 대가 터미널로 들어왔고 그 순간 직감했다. 저것이 내가 약 20시간을 타고 가야할 버스구나.

그러나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하고 후회할까. 더 이상의 군소리 없이 우리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얼른 볼리비아 국경을 넘기도 바쁘다. 그리고 먼 이 땅까지 와서 처음으로 넘는 국경 아닌가. 그런 마음을 가지니 한결 편안해지면서 무뎌졌던 설렘이 다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버스에 싣는 우리의 몸도 더욱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