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과 텃밭, 실개천, 골목골목엔 정겨운 돌담길이…
대숲과 텃밭, 실개천, 골목골목엔 정겨운 돌담길이…
  • 김초록 기자
  • 승인 2018.08.2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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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록 여행스케치> 고성으로 떠나는 초가을 나들이
▲ 옥천사 가는 길의 녹음이 청량하다.

경남 고성은 말로왕(김말로)이 세운 소가야의 옛 땅이다. 지금의 고성땅은 말로왕 때부터 이형왕에 이르기까지 아홉 임금이 461년 동안 다스렸던, 부족국가가 있던 곳이었다. 고성읍내 초입에 자리잡은 송학동고분군(사적 제119호)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엔 소가야의 왕족과 장군의 무덤이 7기나 있는데, 돌로 무덤방을 만든 뒤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들었다. 붉은색의 고분은 가야 무덤 형식을 그대로 따랐다. 이 고분에서는 신라, 백제, 가야, 일본 등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토기가 출토되기도 했다.

탈박물관으로 간다. 박물관 입구의 장승들이 익살스런 표정으로 길손을 반긴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고성 오광대 탈을 비롯해 여러 지역의 오광대 탈을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하나같이 우스꽝스럽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된 고성오광대 놀이는 양반 계층의 위선과 속 보이는 윤리를 익살과 해학으로 풀어내는 서민들의 한바탕 민중극이다. 문둥이춤, 오광대춤, 중춤, 비비춤, 제밀주춤 등 5마당으로 이뤄진 오광대놀이는 그 시대 사람들의 애환과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상설전시관 외에도 매달 기획전이 열려 지역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 고풍스러운 옥천사 자방루

고성이 품은 그윽한 고찰

고성읍을 떠나 연화산(해발 528미터) 기슭으로 간다. 옥천사가 있는 곳이다. 절로 들어가는 길에서 듣는 새소리가 정겹다. 세속의 찌든 마음이 말끔히 헹궈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나무와 벗하며 가길 10여 분, 옥천사가 반긴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니 조선후기의 대표적 건물인 자방루(滋芳樓)가 우뚝하다.

자방루 옆 돌계단을 오르면 팔작지붕 다포계 양식의 대웅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웅전 좌측에는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玉泉)이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 샘은 예부터 각종 병을 고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중병을 가진 많은 환자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옥천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독성각, 적묵당, 칠성각, 옥천각, 산령각, 보장각(유물전시관) 등 절을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은 하나같이 고풍스럽다. 특히 자방루에 그려진 비천상, 비룡상, 산수화, 새 그림은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듯하다.

 

▲ 금태산 자락의 계승사

 

절 옆으로 연화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 있다. 연화산은 적송, 상수리나무, 전나무, 편백나무 등 식생이 다양하고 잘 보전돼 있을 뿐 아니라 산세가 수려해서 한국의 100대 명산에도 이름을 올렸다. 옥천사에서 부속 암자인 청련암을 거쳐 남산-편백숲-황새고개-옥천사로 내려오는데 2시간 정도 걸린다. 옥천사에서는 템플스테이도 진행한다. 연화산 숲길에서 하는 아침고요 명상, 편백숲길 걷기, 숲길 따라 암자 순례 등 명상 프로그램들이 돋보인다. 옥천사 템플스테이: 055-672-0100

옥천사가 산 속에 숨은 절이라면 무이산(해발 548미터) 자락의 문수암은 남해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절이다. 일찍이 신라시대 화랑들이 수련장으로 이용했다는 무이산은 다도해를 굽어보고 있는 명산이다. 문수암은 그 산 허리에 새 둥지처럼 들어앉아 있다. 문수암으로 오르는 길은 아주 쉽다. 자동차가 절 바로 아래까지 올라가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절까지는 100미터밖에 안 된다.

 

▲ 계승사 앞마당 바위에 물결무늬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문수암도 신라 신문왕 8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걸인 모습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에게 이끌려 무이산을 오르던 의상대사가 이곳의 절경에 반해 암자를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대웅전 앞 가파른 길 끝 전망대에 서면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이 손에 잡힐 듯 선득선득 다가선다. 가히 한 폭의 풍경화다. 높고 낮은 육산들과 어우러져 장엄하기 이를 데 없다.

태조 이성계의 설화가 깃든 금태산 중턱의 계승사(영현면 대법리)도 고성에서 이름값을 하는 절집이다. 이 절은 한 마디로 웅장하다. 절을 둘러싸고 있는 백악기의 지층들이 위용을 뽐내는데 그 모습이 하도 놀라워 저 먼 이국땅의 어디쯤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백악기 시대에 이 절은 호수였을까. 바위벽에 선명히 찍힌 공룡 발자국이 그런 상상을 하게 한다. 또 대웅전 옆으로 길게 누운 암반에는 1억 년 전의 물결 자국이 나 있고 대웅전 뒤편의 비탈진 계단에는 1억 년 전의 빗방울 화석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자연의 수수께끼다.

 

▲ 경치 수려한 당항포 해변길

공룡의 신비와 충무공의 자취를 찾아서

고성읍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에는 고성의 아이콘이 된 공룡 공원이 있다. ‘한국판 주라기공원’으로 불리는 상족암(천연기념물 제411호)이다. 밥상다리 같다고 해서 상족(床足)이라고도 하고 여러 개의 다리 같다고 해서 쌍족(雙足) 또는 쌍발이라 불리는 이곳은 마치 백악기 시대로 돌아간 듯 거대한 암반 위로 공룡 발자국 화석이 듬성듬성 찍혀 있다. 이 기이한 발자국들은 1억 3000만 년 전부터 6500만 년 동안 한반도에 무리지어 살았던 공룡들이 남겨놓은 흔적이다. 상족암은 얼핏 보면 저 부안의 채석강처럼 수직의 암벽이 불쑥불쑥 솟아 있고 바위면에 어지럽게 찍혀 있는 공룡 발자국들은 보폭과 방향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다. 이곳은 미국 콜로라도, 아르헨티나 서부해안 지역과 함께 세계 3대 공룡발자국 화석지로 꼽힌다.

 

▲ 고성의 자연을 모아 전시한 당항포의 고성자연사박물관
▲ 공룡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공룡박물관
▲ 공룡박물관에 전시한 공룡 전신 골격
▲ 상족암 바위에 찍힌 공룡발자국
▲ 당항포 야외전시장에 있는 공룡 모형

 

공룡 화석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상족암 뒤편 산중턱에 들어선 공룡박물관으로 가보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전시실 내부에는 각종 공룡 모형과 공룡 화석, 공룡 전신골격 복제품, 익룡 전신골격, 연구자료 등을 볼 수 있고 상족암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기 좋은 전망대도 있다. 박물관 광장에는 높이 24m의 공룡탑이 세워져 있다.

 

▲ 당항포 앞바다에 전시된 퇴역 해군 상륙함
▲ 당항포에 전시한 거북선

 

고성읍에서 마산 방면으로 20여 분 달리면 임진왜란의 현장인 당항포에 닿는다. 이순신 장군은 이곳 당항포에서 거북선을 앞세우고 두 차례에 걸쳐 왜군을 무찌르니 그 유명한 당항포해전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앞으로 호수 같은 당항만이 보이고 충무공의 승전을 기리는 전승기념탑이며 사당(숭충사), 당항포해전관, 실물 크기의 거북선, 자연석 수백 점을 전시한 수석전시관, 동물의 박제, 공룡알, 어패류의 화석 등을 볼 수 있는 자연사박물관도 볼 수 있다. 이밖에 방파제 한쪽에는 늠름한 모습의 퇴역 해군 상륙함이 있다.

 

▲ 걷기 좋은 학동마을 돌담길

고향 같은 정겨운 돌담길과 숲

하일면 학림리, 수태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학동 마을로 간다. 고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고향에 온 듯 참 정겹다. 전주 최씨 안렴사공파의 집성촌인 이곳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돌담길이 있어 연중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대숲이 있고 텃밭이 있고 실개천이 흐르고 느티나무가 수문장처럼 서 있는, 느림의 미학을 일깨울 수 있는 보기 드문 마을이다. 집과 집을 잇는 돌담길은 300년 전쯤 만들어졌다고 한다. 마을 뒷산에서 나는 납작한 돌을 가져와 황토를 섞어 정성스레 쌓아올렸다.

 

▲ 장산마을에 있는 장산숲
▲ 하룻밤 보내기 좋은 상족암 캠핑장

 

마암면 장산마을도 고성 여행에서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김해 허씨 집성촌으로 고가들과 어우러진 숲이 참 인상적이다. 정자와 연못을 둔 마을 숲은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가을에는 단풍이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숲은 한때 1km에 이를 정도로 길었다는데 지금은 100미터 정도로 짧다. 하지만 숲을 이룬 수종은 가치가 상당해 학계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개서어나무, 이팝나무, 느티나무, 푸조나무, 물푸레나무, 검노린재나무, 쥐똥나무, 소태나무 등등 저마다 오랜 세월 꿋꿋하게 자라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이 숲은 행복한 숲이고 보배나 다름없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대전통영고속도로(통영 방면)-고성나들목-고성읍-33번국도(진주 방면)-부포사거리에서 좌회전-13번국도-중촌삼거리에서 우회전-77번 국도(사천 방면)-제전삼거리-1010번 지방도-고성공룡박물관(상족암). 대전통영 고속도로 연화산나들목-오서교차로-영오사거리-옥천사삼거리-연화산도립공원. 대전통영고속도로 고성 나들목-고성(회화면)-당항포. 서울, 부산, 대구, 마산, 대전, 진주 등지에서 고성행 버스 수시 운행. 고성군 관광안내소: 670-3173

☛숙박=연화산도립공원 집단위락시설단지에 숙박시설이 많다. 상족암 공원과 당항포에 파도소리를 들으며 하룻밤 보내기 좋은 당항포오토캠핑장(670-4504)이 있고 공룡펜션(854-3030), 달빛의속삭임펜션(832-1747)도 좋다. 연중무휴. 고성읍내의 남산오토캠핑장(010-4904-5253)도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읍내에 파레스모텔(672-8715), 파크모텔(674-8005) 등이 있다.

☛맛집=고성읍내의 대진한정식(672-4844)과 수라한정식(674-0118)은 싱싱한 해물에 맛깔스런 반찬이 상 가득 올라오는 한정식으로 유명하고 상족암 부근에 용골횟집(832-3489), 공룡횟집(834-5646) 등이 있다.

<여행작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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