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강기갑 전 의원-2회

<1회에서 이어집니다.>

▲ 강기갑 전 의원

 

- 당적은 없지만 정의당과 친분이 있다. 농사를 짓는 가운데서도 의견을 주고 받는 것으로 안다.

▲ 과거 통합진보당 사태에 책임을 지고 나갔고 그러해서 당적은 없지만, 농업정책에 대해선 여전히 정의당에게 제언을 해왔다. 농업정책과 관련 정의당 윤수하 의원과 당원 못지않게 지역토론회에 많이 다녔다. 정의당은 당연히 이런 부분에 있어 민주당보다 적극적이다. 진보정당으로서는 두 말할 나위 없다. 제 당적을 떠나 철저하게 함께 했고 적극적으로 나서주더라. 포럼에 한 번도 안 빠지고 늘 축사를 해주셨다.

 

- 정의당의 요즘 정책 행보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 노동자, 농민, 도시 서민, 자영업자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양지로 끌어 올리려는 정의당의 정책은 여전히 존중한다. 진보정당으로서 확실한 방향과 목표를 갖고 몸부림 치는 정당이기에 어쩔 때는 안타깝고 어쩔 때는 가엽기도 하다. 어쩔 때는 무슨 힘을 빌어서라도 도와주고 싶은 심정이다. 흔히 정치에서 정치의 목적이 정의라면, 진보정당의 목적은 정의보다는 상생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제가 농담 삼아 정의당 이름을 짓기 전에 ‘상생정당’으로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상생정당이라고 짓기엔, 우리사회가 아직까지는 그 언어의 의미를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여겼다. 우리사회가 상생까지는 워낙 멀고 정의도 실현이 안 되니, 정의부터 넘어서야 상생으로 가는 것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정의가 더 목마르니까, 정의가 실현되면 상생정당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설파였다. 결국 정의당으로 이름 지어졌다. 그런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현재 정의당은 물과 같다고 생각한다. 물은 언제든지 아래로 흐른다. 중력에 기초한다면, 물이 아래로 가 수평을 유지해 평평해지면 그것이 곧 평등과 궤를 함께 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물은 밑에서부터 차오른다. 그러니 모든 정책은 밑바닥으로 내려와 밑에서부터 끌어올리며 평등이 돼야 한다. 아직까지 만족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나마 정당 중에서 그런 정치의 정석대로 가는 게 정의당이라고 본다. 제게 큰 힘은 없지만, 이런 가치를 공유하며 마음으로나 기도로나 그리고 삶 속에서나 힘을 실어주고 싶다. 지역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도울 길이 있으면 힘을 실어주고 싶다. 물론 정의당뿐만 아니다. 요즘 미생물 공부하면서 나름 깨닫는 게 많다. 누구라도 다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그런 심정이다.

 

- 정의당 얘기가 나오면 당연히 한때 동고동락했던 고 노회찬 의원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 다 그랬겠지만, 그렇게 초개처럼 던질지는 몰랐다. 모든 것, 당만을 위해 서 한 것 같다. 지난 지방선거에선 자유한국당의 반대급부로 민주당 쪽으로 표심이 몰렸다. 그렇다보니 정의당을 찍어주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자유한국당을 막기 위해 국민들이 민주당을 찍어준 게 아닌가 하고 조심스레 평가해 본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지지정당으로 지지율이 올라갈 때 쯤 ‘드루킹 사건’이 나오고 노회찬 의원은 거기에 연루되는 게 싫어 몸을 던진 게 아니었던가. 당신은 오직 내가 평생을 약자를 위해 정치해야 하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책임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생명까지 버린 것 아니었겠는가. 그동안 정의당을 국민들이 대안정당으로 힘을 모아주고 지지할 때 노 의원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당을 위해 생명까지 초개같이 던져버린 걸 보면서 제가 참 부끄럽기 짝이 없다. 표현은 안했지만 누구보다 눈물을 많이 흘렸다. 시골에서 농사일 하고 있을 때 그런 비보를 접했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정의당에 전화를 해 몇 차례 확인한 뒤에야 비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였다. 땡볕에서 일이라도 열심히 하면 분이 삭을까 싶었는데, 이내 주저앉게 되더라. 저는 사실 통합진보당 사태 때문에 농사하러 간다는 명분이 있었다. 정의당 창당할 때 몇 분들의 요청도 있었지만, 통합진보당 사태로 진보정당이 그렇게 추태를 부려서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며 농사지으러 내려왔다. 시골에 오니 너무 편하고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라는 등 그런 이야기를 한 내 처세가 지금 부끄럽다. 서울 장례식장 가서도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삼켰다. 할 말이 없다. 농사짓는 걸 무슨 자랑처럼 말하고 다녔는데, 노 의원 앞에서는 한 없이 부끄러운 사람으로 남겨졌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비교하는 이들도 많다.

▲ 노 전 대통령도 당신이 다 지고 간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당신과 함께 모든 이들을 빌미로 삼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아닌가. 검찰이 실제 책임 없는 사람들과 계속 연결시켜 쑥대밭 만드니, 노회찬 의원도 다 끌어안고 한 몸 던져 중단시켜야겠다는 심정이 있었을 것 같다. 사실 노 전 대통령과는 개인적으로 많은 사연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정치를 처음 시작할 무렵 저랑 인연을 가졌다. 농촌총각 관련 운동도 함께 했다. 농촌 총각들이 결혼도 않고 자살해서 전국농촌총각결혼대책위를 만들기도 했다. ‘농촌 사는 총각 힘도 좋고 마음도 좋다’ 이런 홍보도 했다. 그때 그 어떤 정치인보다도 의뢰인에게 듣는 것처럼 너무 진지하게 들어주더라. 그런 면에선 노회찬 의원과도 참 닮았다. 부산에서 의원으로 출마해 떨어질 때 저랑 대화도 많이 했었다. 한 번은 비서관이랑 같이 와서 정치를 제안하시더라. 제가 당시 가톨릭농민회 경남회장을 맡고 있었다. 저는 농민들이 절박해서 운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만 대답했다.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노 대통령과는 인연이 좀 짓궂었다. 허구한 날 노 대통령 비판하며 쌀 투쟁에 나섰으니 말이다. 그러다 재판에 기소되고, 항소시기를 놓쳐버려서 대법원에 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대통령 되고 얼마 안 되어서 농민 운동을 비롯 민주화 운동한 사람들 다 사면시키더라. 저는 그래서 국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 농민단체에서 제게 찾아와 당신이 출마 안 하면 당장 농민 출신 중 국회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 집사람은 정치하지 말라고 울고불고 난리 났었다. 젖소들 못 키운다고. 하지만 그렇게 출마해서 우여곡절 끝에 당선되었다.

 

- 일각에선 노회찬 의원이 5000만원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닐 수 있다고도 한다. 다른 정치자금도 있으니 정의당에 해를 끼치기 싫어 극단의 선택을 한 게 아니냐고도 하는데.

▲ 일반인들은 돈 5000만원 때문에 그러냐고들 묻는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중도나 보수는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지만, 진보는 그들과 성향이 다르다. 5000만원 뇌물은 사약과 같다. 진보는 하얀 백지와 같다. 거기에 파리똥 붙어봐라. 바로 티 난다. 시커먼데 파리똥 붙어봐라. 표가 안 난다. 그 차이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진보의 잣대는 엄중하다. 다른 정당의 잣대와 다르다. 과거 중도나 보수에 비하면 진보가 한 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비교도 안 된다. 그런데 진보는 하얀 백지와 마찬가지다. 그게 대한민국 진보의 현실이다. 사실 통합진보당 사태도 다른 정당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국민들이 진보에게 요구하는 눈높이가 높고 엄하다. 그래서 진보는 작은 것이라도 실수하면 엄청나게 고민에 빠진다. 노회찬 의원도 당신 스스로 어리석었다고 했듯, 해서는 안 될 것을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그런 진보의 눈높이, 그런 높은 결백과 순수성을 이해하기 힘들다. 과연 목숨을 던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노회찬 의원에게 5000만원이라는 액수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500만원이었더라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수 있는 분이다. 스스로의 허물 때문에 평생 낮은 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자신의 진보정치와 정의당이 추락할 위기였으니.

 

- 진보의 큰 별이 사라졌다. 대안이 있다고 생각하나.

▲ 농사일을 하면 잊을까싶어 한 때 땡볕에서 계속 일만 했다, 그런데 쓰러질 것 같더라. 막상 우리 곁을 떠나니까 더 커져 보인다. 정의당에 많은 훌륭한 분들이 계신다. 제 2의 노회찬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많은 국민들이 응원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진보정치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예나 지금이나 진보정치의 길은 가시밭길이다. 혹시나 하는 노파심인데, 진보정치에서 패권 같은 건 뇌물과 같은 사약이다. 중도나 보수는 정파적 패권을 안고 갈 수 있지만, 진보에게 그것은 사약이고 암 종양과 같은 것이다. 국민의 더 큰 행복을 위해 버릴 수 있는 것은 버리는 실천을 해야 한다. 이런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인 게 지금으로서는 정의당이다. 저 역시 이들과 함께 했고, 지금도 인연을 끊을 수는 없다.

 

- 정치권에선 ‘올드보이의 귀환’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강 전 의원도 복귀할 수 없는지. 그만큼 진보의 빈자리가 커졌으니 말이다.

▲ 지금 저로서는 예전보다 정치를 더 잘 할 자신이 없다. 정치라 함은 새롭게 업그레이드 하면서 더 나아가야 하는데, 제 경우 예전처럼 특별한 계기들도 없다. 저는 실력으로 정치를 했다기보다는, 진정성이나 오기로 했던 것 같다. 정치권 행태를 봐서 이게 아니다 싶으면 온몸을 던져서 했던, 그런 스타일이어서 제 능력이 몇 배로 튀어보인 것 같다. 물론 그걸 안 좋게 본 분들은 저를 깡패정치인이라고 했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진보진영에서 볼 때 이명박 정부 때 필요했던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지금 제가 복귀한다고 해서, 과거처럼 정치를 할 수는 없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수준을 제가 맞출 수 없다. 노회찬 의원이 떠났다고 제가 그걸 메우는 인물로 거론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이다.

 

 

- 끝으로, 농민들, 그리고 정치인들 그리고 우리 국민들에게 덕담을 건네자면.

▲ 다시 강조하자면, 제가 지금 짓고 있는 농사가 상생농법이다. 흙사랑, 유기농 미생물 농법, 생태농장, 이런 키워드를 떠올리면 된다. 농사를 짓다보니 깨닫는 게 많다. 먹이사슬의 구조라는 것은 천적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 이 단순한 논법에서 더 깊이 나아가야 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그런데 인간은 가장 작은 바이러스나 슈퍼박테리아에게 죽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다. 서로의 균형을 맞춰주는 게 농사라는 것을 느꼈다. 좀 철학적이지만 사실 이건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먹이사슬의 구조를 좀 더 확장해보면 세상 만물의 조화를 이루는 하늘의 섭리와 자연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고로 만물의 진리와 원리는 상생의 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귀중하다고 느낄수록 다른 사람도 귀중한 걸 느끼게 되는 것이다. 볼 품 없는 사람 앞에서 당신 스스로가 그 사람보다 또 다른 한 단계 위의 종 같아도, 먹이사슬의 구조로 보면 그 하위로 여겨지는 사람이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 내 존재가 중요하듯, 타인도 중요하다. 그래야 진정한 행복을 접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농사꾼으로 돌아와 깨달은 것 같다. 요즘 최저임금 몇 백 원 더 올려서 자영업자들이 고민에 빠져있다. 좀 달리 생각해보자. 당신이 부모이고 슬하에 자식이 세 명 있다고 가정해보자. 첫째 자식이 자영업 하는데 거기 몇 백 원 더 올라가면 어떻겠는가. 그런데 최저임금도 못 받는 자식이 있고, 대기업 다니는 자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부모라면 아무리 못 난 자식이어도 최저임금 받는 자식이 돈 더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 자식의 편일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가장 바닥을 보는 부모의 심정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원리를 접하면서 어떻게든 아래로 물이 흐르듯, 밑바닥 사람 위하는 마음으로 사는 행복을 국민들이 만끽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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