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농촌의 가을 풍경

▲ 누가 꽃이고 누가 나비인가…

이 맘때쯤이면 가수 양희은의 ‘가을 아침’이란 노래가 읊조려진다. 기자는 양희은의 원곡 보다는 아이유가 리메이크한 노래를 먼저 들었다. 아이유가 상큼하고 청명한 가을 아침을 담아냈다면 양희은은 좀 더 편안하고 여유로운 가을 아침 정취를 노래한다.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음
눈 비비며 빼꼼히 창밖을 내다보니
삼삼오오 아이들은 재잘대며 학교 가고
산책 갔다 오시는 아버지의 양손에는
효과를 알 수 없는 약수가 하나 가득 음
딸각딸각 아침 짓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엉금엉금 냉수 찾는 그 아들의 게으름이
상큼하고 깨끗한 아침의 향기와
구수하게 밤 뜸드는 냄새가 어우러진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노래 ‘가을 아침’中
 

▲ 안개와 달맞이꽃, 그리고...
▲ 안개 자욱한 가을 아침  

 

▲ 강아지풀과 이파리의 유유상종  
▲ 자, 날아가거라 저 푸른 하늘을 향해~

 

아침에 일어나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던 이부자리. 이젠 창문 넘어 들어오는 가을 아침바람이 살결을 간질이듯 잠을 깨운다. 얇은 여름이불은 장롱 속으로 들어가고, 좀 더 포근한 이불을 꺼내 덮기 좋은 날씨.

농촌의 이른 아침, 촉촉하고 상큼한 이슬 냄새를 온몸으로 느끼며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아직 안개가 가시지 않았다. 마당에 나가보니 저 멀리 옹기종기 모여있는 지붕들 위로 안개이불이 포근하게 덮여있다. 아직 일어나기엔 이른 시간이니 조금 더 자라고 토닥이는 듯하다.

 

▲ 달맞이꽃
▲ 등산 중인 개미
▲ 영롱한 이슬구슬
▲ 칡잎에 살포시 내려앉은 가을 이슬

 

해가 떠오르면서 안개가 천천히 걷힌다. 처마 밑에 옥구슬이 열렸다. 햇볕을 받아 영롱한 빛을 발산한다. 아침 이슬이다. 참 아름답다. 노란 달맞이꽃이 눈부시게 피었다. 자줏빛 달개비꽃도 하얀 참취꽃도 한창이다. 코스모스는 며칠 전 내린 비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그 머리 위 빨강 하얀 꽃들이 청초하다. 모두들 이슬 모자를 살포시 뒤집어쓰고 있다. 발길에 차이는 풀잎, 차가운 이슬이 폐부를 자극하며 잠을 깨운다. 이제 아침, 저녁으로 겉옷은 필수다. 조금 있으면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고…그리고 서리가 내리겠지. 갈수록 짧아지는 가을이 아쉽기만 하다.

 

▲ 코스모스와 꿀벌
▲ 마지막 고추 수확에 한창인 아낙
▲ 피고 지고

 

8월말 심어놓은 김장배추는 고행 중이다. 갑자기 쏟아져 내린 폭우 때문에 모종을 다시 심는 수고까지 더해줬다. 잎이 제법 자라나면서 이제 벌레들이 극성이다. 배춧잎마다 구멍이 송송 뚫려있다. 김장무와 총각무, 홍당무, 대파와 쪽파, 갓 등도 앞다퉈 자라고 있다. 이제 두어달 뒤면 빨간 김장배추의 재료로 제 몫들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고추나무는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농부의 아내는 벌써 몇차례 빨간고추 수확을 했더랬다. 수확을 한 고추는 햇볕에 말려 가루를 낸다. 오늘도 해가 중천에 떠서 더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고추수확에 나서야 한다. 고추도 이제 막바지다. 폭염도, 가을 시작 즈음 내린 폭우에도 버텨내준 아이들이다. 몇 번이고 수확해 먹고 나니 이제 막바지 고추들은 연할 만큼 연해졌고 또 독해지기도 했다. 오이고추라고 심어놓은 것들이 청양고추 행세다.

 

▲ 가을의 휴식

 

수확의 계절이다. 하지만 봄, 여름 농부의 노력이 무색하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수확물들이 말라비틀어질 정도로 뜨거운 나날들이었다. ‘배추가 금값’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여름내내 그늘이 지고 어두웠던 농부의 얼굴엔 다시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맑디맑은 푸르른 가을하늘을 올려다보며 감사인사를 올린다.

이제 김장용 채소들에 희망을 걸어본다. 속 알차게 채워 겨울엔 마음이라도 따뜻하게 해줬으면. 이 고생이 헛되지 않게, 농부의 땀방울이 무색하지 않게 무럭무럭 자라나 주거라.

 

▲ 참취꽃
▲ 바쁘다바빠. 열일중인 무당거미
▲ 포도 사냥 중인 여치

 

코스모스는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코스모스 꽃들 사이로 벌들이 바지런하다. 마당가 풀밭에선 가을 곤충들의 잔치가 한창이다. 메뚜기, 여치, 방아깨비, 귀뚜라미…. 노오란 국화꽃 위에는 호랑나비가 앉아있다. 누가 꽃이고 누가 나비인가. 물아일체의 경지다. 무당거미들은 우주를 펼쳐놓은 듯 신묘한 집짓기 기술을 매일 선보인다. 때론 파리가, 모기가, 잠자리가 걸려 발버둥 친다. 개미들도 식량을 찾아 밭 이곳저곳을 수색한다. 푸르른 가을하늘과 어울리는 반가운 고추잠자리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찌르르- 찌르르- 풀벌레 소리만 들어도 배부른 가을이다. 참 고즈넉하고 풍요로운 농촌의 가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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