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국제법 전문가’ 이장희 전 한국외대 부총장-2회

<1회에서 이어집니다.>

‘국제법 전문가’ 이장희 전 한국외대 부총장
‘국제법 전문가’ 이장희 전 한국외대 부총장

 

- 북·미관계, 남북관계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의 대북정책,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나.

▲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문재인 정부의 노력도 있었지만 우리 국민들이 원했기에 가능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6.15공동선언-7.4남북공동성명’ 등으로 초석을 다졌다면, 문재인 정부는 그것을 바탕으로 몸소 실천하는 의지가 역력해 보인다. 북·미관계에 있어서도 과거와 달리 문재인 정부가 운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최종 평가는 이르지만 변화를 갖고 온 것은 분명하다.

 

-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당시만 하더라도 북·미 관계와 관련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북·미 관계가 이렇게 진전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 북한이 처한 여러 상황이 어렵다. 한국전쟁 이후 늘 그러해왔고 북한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속 시원히 풀린 적 없다. 돌이켜 보면 북한 문제는 논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북한은 체제유지를 자신들의 핵심 과제로 여긴다. 여기서 북한의 가장 큰 약점으로 드러난 게 인권 말살 문제였다. 그 다음이 정치범 수배 등이다. 핵무기 개발까지 이어지면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때, 과거 미국 정부는 논리적으로 접근했다. 반면 트럼프는 기업가 마인드로 접근했다. 트럼프 입장에선 각료들에게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게 뭘까, 나아가 서로가 원하는 게 뭘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덧셈-뺄셈이 분명하다. 미국이 원하는 건 완전한 비핵화이다. 북이 원하는 건 체제보장을 전제한 종전선언이다. 결론적으로는 평화체제 속에서 북?미관계 정상화이다. 여기에 속도를 좀 내라는 게 미국의 요구다. 앞서 문재인 정부의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남북은 신뢰를 쌓았다. 이를 발판으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회담의 큰 틀은 북한 입장에선 체제보장, 미국 입장에선 비핵화이다. 다만 실천방안에 있어서는 서로의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만약 트럼프가 북한에게 비핵화를 과거처럼 논리적으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의미)를 무조건적으로 강요했다면 북핵문제는 깽판이 됐을 수도 있다. 핵무기를 일단 가져버리면 상식적으로 그것을 완전히 없애는 데에만 20~30년 걸린다. 비용 역시 천문학적이다. 그동안 미국 입장에선 핵무기로 자신들의 본토를 공격하는 게 고심거리였고, 북한이 핵불능 상태라면 나머지 잔여물을 없애는 건 북한 사정에 따라서 하라는 것이었다. 미국은 그동안 불능 상태로 이행한 적 없다고 비판하며 속았다고 해왔다. 그래서 CVID를 고집해왔다. 상황은 달라졌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북한의 내부 사정은 미국을 비롯 전 세계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선 오히려 트럼프 식으로 화통하게 나가는 게 북?미 신뢰 관계에 있어 좋다. 많은 전문가들은 트럼프를 미친 사람이라 한다. 김정은도 한 때 그런 소리를 들었다. 반농담식으로 말하자면 양쪽 다 미쳐야 해결될 수 있는 게 북핵 문제다. 북한을 이해하려면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의미에선 지금까지 오바마보단 트럼프의 북·미 관계 기여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미국 중간선거가 있었다.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트럼프 입장에선 임기 중 북·미 관계 정상화 업적을 남기고 싶을 것이다.

 

- 북핵, 대외적으로 폐기한 것처럼 선포하고 핵심 기술은 보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트럼프가 북핵 문제로 미국 내에서 계속 공격받아 답답했는지, 정 그러면 캘리포니아 어디 가져다놔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핵 폐기 비용은 20~30조원이 든다. 돈과 직결된다. 그러니 북한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나 서방국가가 원하는 건 북한과 같은 국가가 혹시 실수라도 할까봐 어서 폐기하라고 그러는데, 결국 돈 문제다. 트럼프 집권시 북·미 관계가 정상화 되면 북한도 나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될 것이다. 미국과 서방세계 그리고 북한이 서로 신뢰를 갖고 폐기 수순을 밟아야 한다.

 

-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제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미국은 비핵화의 속도가 진전되길 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전문가들 보는 자리에서 핵폐기 장면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폼페이오가 원하는 것은 CVID보다 FFI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가능한 핵폐기)이다. 계속 공격을 받으니 용어도 바꿔보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북·미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은 신뢰이고, 나아가 유엔이 가하는 제재 규정을 북한이 준수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비핵화 과정의 투명성이기에 말이다. 그래야 트럼프도 정치가로서 입지가 나아진다.

 

- 남·북·미 3자 정상회담 가능성도 열려있는데.

▲ 당장 논의될 사안이 아니다. 중국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에 남·북·미 정상회담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도 아니다. 현재 우리 입장에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힘들다 하더라도, 우리 정부는 북·미간 2차 정상회담을 완성시키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 종전선언이 언급되고 있다. 문서상의 선언에 그치는 건 아닌지, 다시 말해 실질적 효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 개인적으로는 한반도의 ‘평화협정’이라는 용어보다 ‘평화체제’를 선호한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상 협정보다는 체제가 적합하다. 평화체제라 함은 법적 장치, 군사적 장치, 국제정치적 장치, 이 세 가지가 충족됐을 때 완전하고 실천 가능해진다. 법적인 면에서 협정이라 해놓거나 문서로만 적대관계 종식한다 하더라도 한반도에 평화가 보장되지 않는다. 어느 한쪽이 지키지 않았을 때, 국제적으로 통제하고 평화를 보장해주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종전선언하면 비무장지대를 누구나 마음대로 오갈 수 있을 것 같은가. 굉장히 혼란스럽다. 통제가 안 된다. 완전한 법적 선언이 되면, 민간의 방북 자체는 이적행위가 아니다. 여전히 작동하는 국가보안법과 무관하게 된다. 그러면 또 논란이 생기기 마련이다. 실질적으로 비무장지대를 관리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정전협정 이후 군사적 측면에서는 그곳을 지탱해주는 군사분계선이 있다. 여기에 서로 문제제기 할 수 있는 군사정전위원회가 뒤를 받치고 있다. 또 하나는 정전위원회가 잘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중립국감시위원회가 있다. 평화체제가 되려면 이 세 가지를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놔야 한다. 이를테면 한반도 평화관리기구와 같은 이름의 기구가 있어야 한다. 최근 우리 정부가 남북군사공동관리위원회를 통해 대인지뢰도 없애고 군인들 이동도 감시했다. 잘한 일이다. 군인들이 직접 머리 맞대고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 군사적 신뢰가 담보되어야 이 모든 것들이 선순환적으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남북이 아닌 제 3의 국가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유럽으로 말하자면 헬싱키선언과 같은 합의가 있어야 한다. 남북이 추천한 국가들로 6자한반도평화관리기구, 다자관리기구와 같은 협의체가 평화체제 과도기에서는 필요하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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