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의 원초적 생명력은 거리낄 것 없는 민중으로부터 비롯된 것”
“민화의 원초적 생명력은 거리낄 것 없는 민중으로부터 비롯된 것”
  • 강진수 기자
  • 승인 2018.12.1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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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인터뷰] ‘그림 그리는 재미’ 민화 전시회 작가 4인을 만나다 - 3회

<2회에서 이어집니다.>

민화는 대중에게 생소하기도 하고 심지어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했다. 왠지 민화라 하면 서양화나 수묵화에 비해 천박하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속화라 하여 궁중과 사대부에서 그려지는 그림과 구분되어 왔었고, 일제시대 이후에는 전근대적인 미개한 그림으로 취급되어 그런 대접을 받아 왔다. 현대에 들어서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우환, 김호연 등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었고, 김기창, 권옥연, 황창배 등 한국의 주류 화가들에 의해서도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화채색화연구회 또한 이런 노력에 기여하고 있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화채색화연구회는 소위 스스로를 ‘붓을 놓았다가 겨우 다시 잡은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작가 16명이 구성하고 있다. 이들의 전시는 단순 미술 전시가 아니라, 민화의 부흥이자 작가들의 삶이 부흥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일종의 르네상스인 것이다. 한국 미술계에서 오래 소외받았던 민화와, 주부로서 또는 직장인으로서 바쁘게 사느라 붓을 놓았던 이십여 년 간의 인생이 주인공이 되는 르네상스. 그렇기에 그들의 작품은 예술과 삶 그 중간에 놓여있다. 작품 하나하나에서 삶을 살아가는 향기가 난다. 오래 붓을 내려놓았기에, 다시 잡는 순간 풍기는 새로운 향기가 아닐까. 그 향기에는 삶과 예술에 대한 열망과 꿈이 묻어나고 있다.
지난달 10일까지 전시회를 연 작가들 중 네 명과 민화 이야기 그리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소소하게 나눠 보았다. 민화가 맞고 있는 현실과 민화가 예술로서 갖는 위치에 대해 진중한 답변을 듣기도 하고, 한편으론 민화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를 들어 보았다. 아직도 대학 시절 소녀 같이 수줍음과 웃음이 많은 민화 작가 넷을 만나보자.

 

 

허서령, 차보경, 임수경, 박연옥 작가 (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허서령, 차보경, 임수경, 박연옥 작가 (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 황창배 선생님과 민화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박연옥 : 민화가 가지고 있는 자유분방함을 통해 사실 황창배 선생님도 스스로 그 예술의 자유를 누리셨다고 생각해요. 과감하게 틀을 깰 수 있는 원동력은 민화로부터 찾을 수도 있거든요. 민화가 갖는 원초적 생명력은 거리낄 게 없는 민중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에요. 밥을 한 끼 주고받으면서 그림을 그려내는 경우도 많았고, 그런 자유로운 교환과 나눔의 과정에서 민화가 이루 말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럼에도 민화가 외국으로 많이 반출되고,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민화를 천박하다거나 부끄럽게 여기니, 황창배 선생님도 그러했고 우리 역시 안타까울 뿐이죠.

차보경 : 100세에 세계적인 화가가 된 ‘모지스’ 할머니도 사실 소위 미국의 민화를 그려내면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고 알려진 경우거든요. 우리도 그처럼 해보이고 싶어요. 우리나라 역시 그런 작품성과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의 나이 대에도 보여주고 싶어요. 지금의 나이에도 꾸준히 시작해서 이어가다보면 조금씩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박연옥 : 문자도의 예를 들자면, 새우를 하나 그리더라도 똑같이 그린 새우를 민화에서는 감히 찾을 수가 없어요. 그만큼 돋보이는 자유로움이 다른 나라에서 많은 관심을 끌게 되죠. 잭슨 폴록이나 칸딘스키가 그린 추상화의 정신이 오래 전 그려온 민화에서도 보인다는 것은 매우 놀랍고 독창적인 부분이에요. 하지만 슬픈 점은, 우리나라의 좋은 민화 작품들이 대부분 일본에 많이 가 있고 프랑스 기메 미술관을 비롯해서 해외의 많은 곳에 반출되고 말았다는 거죠.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고유의 그림들을 업신여긴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인식을 일제가 심어준 부분도 있었을 테고요. 이를 회복하기 위해 황창배 선생님이 많은 노력을 하셨지만 아직까지도 완전히 민화에 대한 편견과 장벽이 무너지지 않고 있는 상태예요.

 

▲박연옥 작가의 ‘화접초충도’ : 양귀비는 씨앗을 가득 담은 꽃으로 알을 많이 낳는 방아깨비와 같이 다산을, 쇠뜨기 풀은 강한 번식력과 자손 번창을 기원한다. 나비는 장수와 부부금슬을, 패랭이꽃은 ‘석죽화’라 하여 젊음과 장수를 축원하고, 바위 또한 장수를 기원한다. 하늘소는 갑제갑충으로 장원급제의 출세를, 제비꽃은 ‘여의’라 하여 뜻하는 바가 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박연옥 작가의 ‘화접초충도’ : 양귀비는 씨앗을 가득 담은 꽃으로 알을 많이 낳는 방아깨비와 같이 다산을, 쇠뜨기 풀은 강한 번식력과 자손 번창을 기원한다. 나비는 장수와 부부금슬을, 패랭이꽃은 ‘석죽화’라 하여 젊음과 장수를 축원하고, 바위 또한 장수를 기원한다. 하늘소는 갑제갑충으로 장원급제의 출세를, 제비꽃은 ‘여의’라 하여 뜻하는 바가 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임수경 작가의 ‘화조도’ : 아름다운 꽃 위로는 물총새 한 쌍이 노닐고 바위 위에는 대나무가 곧게 그려진 그림으로 금슬 좋은 부부가 곧은 절개를 지키며 장수하며 살아가고픈 뜻이 담겨져 있는 그림이다.
▲임수경 작가의 ‘화조도’ : 아름다운 꽃 위로는 물총새 한 쌍이 노닐고 바위 위에는 대나무가 곧게 그려진 그림으로 금슬 좋은 부부가 곧은 절개를 지키며 장수하며 살아가고픈 뜻이 담겨져 있는 그림이다.

- 희열과 즐거움으로 민화를 그리는 작가님과 오직 예술로서 민화에 접근하는 작가님이 엿보이는데, 그 경계 가운데에서 과연 민화의 위치는 어디에 존재할까요?

박연옥 : 사실 그 말씀이 정확해요. 우리는 그런 다양성으로 민화를 다루는 여러 작가들이 함께 작품을 하며 교류하는데 의의가 있어요. 우리의 성격은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실은 전시 자체가 즐거움이 가득하고 사람들에게 접근성이 좋았으면 하기도 해요.

허서령 : 창작이라는 것은 늘 어렵기 마련이죠. 그러나 창작을 너무 우선하지는 말고 일단 취미로서 민화를 받아들이게 되면 사람들이 이를 즐겁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주부로서의 삶을 살다가 취미로 민화를 접하게 된 것도 이러한 맥락이었어요. 저에게 민화란 늘 즐겁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그림이었죠. 사람들 역시 그런 즐거움 속에서 민화를 발견하면 좋겠어요.

임수경 : 저는 반면에 민화의 좋은 점을 나누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민화 역시 의미가 다양하고 재미도 있어야겠죠.

박연옥 : 우리는 삶을 화가가 아닌 채로도 살아봤어요. 꼭 예술가로서의 고뇌만을 느끼며 살아본 사람들은 아니기에 사람들에게 우리의 그림을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해요. 이 자체가 즐겁고 행복한데 계속 해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겠죠.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전공자라는 이유로 대단한 예술적, 사회적 가치를 기대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 책임감에 너무 함몰되지는 않았으면 해요.

허서령 : 동의해요. 민화는 가볍게 접근하기에도 충분히 좋은 그림이거든요. 대단한 가치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쉽게 바라고 염원하는 것을 그림들이 담아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런 염원들을 통해서 원작의 예술성 자체를 느끼는 순간도 올 것이라고 저는 믿어요. 사람의 소망을 나타내고 그로인해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은 민화가 갖는 궁극적인 예술성에 맞닿아 있어요. 제가 그리는 ‘책가도’ 역시 하나하나 그 염원들이 새겨져 있어요. 그런 소원과 생각들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다보니 저 스스로가 정화되는 느낌도 들죠. 그 뿌듯함을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박연옥 : 허서령 작가가 주로 그리는 ‘책가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그것이 역원근법과 같은 기존의 미술 체계와는 다른 기법들로 사물들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는 의미의 면을 넘어서서, 그리는 사람이 정말 많은 부분들을 그 그림에서 표현하고 싶어 하는 열망을 드러내는 거죠. 달리 말하자면 큐비즘적인 요소가 ‘책가도’에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어요. 평범한 시선에서 보면 보이지 않아야 할 지점들과 사물들이 그 그림에선 어김없이 보이기 때문이죠.

임수경 : 이는 서양과 동양의 관념이 다른 것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서양화적인 요소로만 그림을 우리가 보기 때문에 민화들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죠. 서양화적 요소가 주류를 이루기 이전에는 결코 민화의 시점들이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민화 작품들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연옥 :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만들어 놓은 원근법으로부터 발전하다보니 서양화는 큐비즘 자체가 늦게 생겨났지만, 동양화는 오래전부터 그런 독창성을 내재하고 있었어요. 결국 사물이 가진 본질 자체를 온전히 보이게끔 민화 나름의 노력을 꾸준히 해온 거죠.

허서령 : 이런 수많은 요소들 때문에, 민화를 감상하는 것보다도 사실 그릴 때 그 즐거움이 더해지는 것 같아요. 그 민화적 과제에 참여함으로써 그림으로부터 감정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민화의 본질이 아닐까요.

박연옥 : 솔직히 말하자면, 서구적인 미술 교육을 통해 대학을 다닌 우리에게도 민화는 불편할 때가 있어요. 기존의 틀이라고 믿는 요소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민화는 그런 전형성을 해체하는 작업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차보경 작가의 ‘모란영수화병도’ :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과 수호신을 나타내는 상상의 동물화병을 그린 영수도로 부귀와 장수, 평안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차보경 작가의 ‘모란영수화병도’ :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과 수호신을 나타내는 상상의 동물화병을 그린 영수도로 부귀와 장수, 평안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허서령 작가의 ‘책거리’ : 책거리는 조선시대 정물화이며 책갑의 선, 면, 색상의 기하학적이고 화려한 장식성으로 현대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화목이다. 출세의 상징인 책을 중심으로 기물들이 뜻하는 평안, 부귀, 축복 등의 길상적인 의미들과 함께 자식을 많이 낳아 공부를 시켜 출세하여 행복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소망 또한 가득 담겨 있다.
▲허서령 작가의 ‘책거리’ : 책거리는 조선시대 정물화이며 책갑의 선, 면, 색상의 기하학적이고 화려한 장식성으로 현대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화목이다. 출세의 상징인 책을 중심으로 기물들이 뜻하는 평안, 부귀, 축복 등의 길상적인 의미들과 함께 자식을 많이 낳아 공부를 시켜 출세하여 행복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소망 또한 가득 담겨 있다.

- 정리하자면, 하나하나 막혀있던 것들을 해체하는 작업에 이 모임은 몰두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미술과 삶, 친구 간에서의 권위까지도 해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허서령 : 꼭 민화를 그린다, 또는 남다른 창작을 한다는 게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우선으로 이 민화 모임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싶어요. 모임의 목표는 어떤 거창한 것에 매달려 있지 않으니까요.

차보경 : 이런저런 일이 많았고, 또 앞으로 있더라도 화실에만 가면 친구들과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어요. 그럴 때마다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혹은 일상과 전혀 다른 마음이 들거든요. 그런 따뜻함 자체를 잘 지켜나가고 싶어요.

박연옥 : 민화의 대중화에 우리가 더 기여했으면 해요. 즉 많은 사람들이 우리 미술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서구적인 것들을 우월시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 자체가 얼마나 우수하고 위대한 사람들인지를 깨달았으면 해요. 그 과정에 조금이나마 우리 모임이 보탬이 된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임수경 : 죽기 전 마지막 에너지라고나 할까요? (웃음) 그걸 모두 불태우길 바라요. 너무 장엄한 말일지는 몰라도, 우리의 책임과 과제에 최선을 다하고 이 모임이 그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해나가길 바랍니다.

PS. 인터뷰에 응해주신 네 분의 작가님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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