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이호준의 ‘사진 이야기’-3회

프로 사진가들이 입문자들에게 많이 하는 조언 중 하나는 "유명 출사지로 우르르 몰려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들이 다 찍는 똑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재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맞는 얘기다. 그럼에도 나는 유명 출사지 촬영을 적극 권유하고 싶다. 그것은 사진의 즐거움을 체득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여행의 즐거움과 같은 취미를 공유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은 사진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사진=이호준

사진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장면을 소유하고 친구들에게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을 갖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찍으면 그림이 되는’ 유명 출사지를 찾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굳이 멘토들의 조언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사진의 재미에 푹 빠져 유명 출사지를 부지런히 쫓아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공허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일종의 식상함이다.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진생활에 진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때를 잘 넘기는 것이다.

유명 출사지에 식상함을 느꼈다는 것은 단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볼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복제하는 것을 넘어, 본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유명 출사지를 벗어날 때가 왔다. 사진가 사울 라이터는 “모든 게 사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찍을 게 도처에 널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은 사진은 특정 장소, 유명 출사지에서만 찍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촬영자의 시각이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사물과 풍경일지라도, 자기만의 시각으로 얼마든지 멋진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럼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나만의 포인트’를 개척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비밀스런 장소나 숨겨진 비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홀로 충분히 시간을 갖고 피사체에 다가가 사진 생각으로 충만해질 수 있는 곳을 말한다.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다.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산이나 시내, 골목길 같은 곳이어도 좋다. 원래 신비로운 일들은 친숙한 장소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한 곳은 조금만 개척정신을 발휘하면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이왕이면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좋다. 대중교통은 정확한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동하는 동안 다른 데 신경쓰지 않고 사진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집에서 반나절 안에 돌아올 수 있는 곳에 자신의 노천 스튜디오를 차리고, 시간날 때마다 들러보자. 나머지 반나절은 찍어온 사진을 바라보며, 촬영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를 복기하며 자신의 시각이 제대로 관철됐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러한 촬영과 복기의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는게 사진의 실체다. 그러한 사진생활이 지치거나 싫증나지 않게 나만의 포인트가 도와줄 것이다.

이왕이면 몇 군데 정해 놓고 번갈아 가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한군데만 너무 집중하면 창의력의 빈곤감이 쉬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찍을 게 없다 느껴지면 지체 없이 다음 포인트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러다 한참 후 다시 가보면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 불현듯 나타날 수 있다. 그렇게 몇군데 포인트를 정해놓고 온전히 집중해보라. 분명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름지기 인생샷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좋은 포인트와 나쁜 출사지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촬영자의 의도에 부합되거나 그렇지 않은 장소가 존재할 뿐이다. 자신의 시각과 의도를 충족시켜줄 포인트를 찾아내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해보도록 하자. 그러면 뮤즈가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뮤즈는 모름지기 열심히 작업하는 예술가를 선호하며 우리가 최선을 다해 작업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호준(facebook.com/ighwns)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서 2회 수상하고, 세 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 3회를 개최했다. 월간지 <SW중심사회>에 사진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