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남미여행기-스무 번째 이야기 / 강진수

 

39.

은하수를 이불 삼아 덮고 잤던 우리 일행들은 꼭두새벽부터 서둘러 다시 짐을 싸고 지프차에 몸을 실었다. 우유니에서의 마지막 반나절을 보내야 할 오늘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차분하고 고요하다. 차가운 공기를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차 안에서 한껏 몸을 웅크리고 각자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 하면 나중의 우리가 이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깊이 정들어 버린 우리는 그런 고민과 괴로움으로 골똘해 있었을 것이다. 벌써 사막의 저편에서는 해가 뜨기 시작했고, 차 안도 우리의 몸도 천천히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새파랗게 시린 새벽과 이글거리는 태양이 서로를 밀어내고 있었고, 설산 너머에서 그 영역들이 일그러지며 하나가 되어갈 때 지프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췄다.

 

우리가 새로이 선 곳의 땅에서는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왔다. 예전에 무슨 세계 기행 프로그램에서나 보던 광경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졌다. 화산 지형인 이곳 지하로부터는 마그마에 의해 데워진 지하수가 흐르고, 그 뜨거운 증기들이 땅 바깥으로 빠져 나와 그 장관을 이루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김이 뿜어져 나오는 곳 근처에는 유황과 온천수를 구경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는 곳에 가보니 수증기가 10m 정도의 높이로 솟아올랐다. 더 놀라운 모습은 가이드들이 그 수증기 줄기에 작은 물건들을 하나씩 던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물건들이 수증기가 솟아나는 방향에 따라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제자리에서 돌았다. 꼭 미지의 우주 또는 이름 모를 행성에서 실험 하듯이, 그곳의 풍경과 지형 그리고 그곳을 즐기는 우리들의 흥분된 모습까지도 모두 이색적이었다. 지구에서는 느낄 수 없을 것만 같은 새로운 세계랄까.

수증기는 생각보다 엄청 뜨겁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해가 완전히 뜨기 직전이어서 분명 바람도 불고 날이 추웠지만, 이곳 주변만큼은 그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수증기가 얼마나 높이까지 올라가나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점점 그것에 호기심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가이드는 수증기가 나오는 구멍에 신발을 가져다 대보라고 권했다. 처음엔 사람들이 망설이고 우물쭈물하다가 누군가 용기를 내고 수증기 위로 발을 대보자 너도나도 사람이 몰려들었다. 나 역시 수증기 위로 발을 가져다 댔다. 강한 힘으로 솟아오르던 수증기가 내 발에 막히는 동시에, 나 역시 안간힘을 써가며 수증기의 힘과 씨름했다. 발이 저절로 붕 떠오르는 듯 하는 기분에 몇 번이고 다시 발을 댔는지 모른다. 간헐천과 온천수의 땅을 신비롭게 바라보던 것도 잠시, 우리 팀은 자연 그 중심으로 들어섰다는 기쁨에 흥분되어 서로를 부둥켜안고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다시 저편에서 수증기가 굉음을 내며 뿜어져 나올 때, 멀리 설산 너머에서는 해가 솟아올랐다. 울긋불긋하던 해의 영역이 새벽의 푸른 기운을 조금씩 걷어내기 시작했다. 태양은 그 색이 선명하고 뜨거웠다. 천천히 사라져가는 그늘 위로 따뜻한 공기가 대지를 덮었다. 우유니에서의 마지막 아침이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는 우리 중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 보낸 사흘은 정말 뜻 깊었고, 우리 팀 여섯은 다시 서로를 꼭 껴안아 주었다. 수고했다, 이곳까지 오느라 너무나도 고생 많았어. 서로를 토닥이며 이게 우유니의 마지막 아침이라는 것을 애써 기억에서 지우려고 노력했다. 가이드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베스트 팀워크. 그간 가이드 일을 하면서 가장 팀워크가 좋은 팀이었다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우리의 팀이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그 마음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40.

해가 어느 정도 떠오르고 주변이 밝아졌다. 아직 아침의 서늘한 공기는 조금 남아 있었지만, 우리가 갈 곳은 그 서늘함 정도야 금방 해결해줄 수 있는 곳이다. 이 우유니 여행의 정말 마지막 장소는 노천 온천이다. 화산지대 한복판에서 즐기는 노천 온천이라니, 우리 모두는 이미 들떠 있었다. 다만 로게르가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아 걱정이었다. 복통을 호소하며 몇 번씩이나 화장실을 다녀오던 그는 아무래도 온천을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마지막 추억으로 다 함께 온천을 즐기면 좋겠지만, 대신 그는 온천 바깥에서 우리 모두의 사진을 많이 찍어주기로 했다.

노천 온천은 드넓은 사막과 멀리 보이는 산줄기 사이에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꽤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사람들은 아침 일찍 벌써부터 가득 모여 있었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얼른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비좁은 탈의실 안에서 겨우 한 귀퉁이에 몰려 옷을 갈아입는데 낯익은 언어가 들렸다. 한국 사람들 두 명을 만난 것이었다. 우유니에 한국 관광객들이 물론 있지만, 지프 투어를 하는 사람은 드물어서 매우 반가웠다. 그분들은 온천을 마치고 나가는 중이었기에 아주 짧게 인사만 나누고 서로의 행운을 빌어 주었다.

 

레오와 나, 형이 환복하고 나오자 이미 옷을 다 갈아입은 라리샤와 에이미가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물은 적절히 따뜻한 온도였기에 온몸을 담그고 나니 기분이 편안해지고 좋았다. 그동안 좁은 숙소, 덜컹거리는 지프에서 고생하며 다녔던 사흘간의 추억들이 사르르 녹아 온천물에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몸이 안 좋은 로게르 역시 기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우리 다섯의 사진을 여러 장 찍어주었다. 온천 너머로 드리우는 우유니의 광활한 풍경은 감히 그 어느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천국이 있다면 여기일까. 우리끼리 이렇게 사치스러운 말들을 쑥덕거리며 물장구도 치고 장난도 주고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여유롭지 않은 관계로 이십분 정도의 짧은 온천을 마치고 다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그리고 바로 지프에 올랐다. 이제 아타까마로 가는 국경으로 향해야 했다. 그곳에는 아타까마까지 가는 승합차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에이미는 다시 우유니 마을로 돌아가 그곳에서 공항으로 간 다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가는 비행기를 탈 계획이었기에 아쉽지만 작별해야만 했다. 페루 쿠스코에서부터 시작된 아주 우연한 만남과 인연이 볼리비아로까지 이어질 것이라고는 에이미도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다신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서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힘은 우리를 우유니로 끌어들여 다시 만나게끔 했다. 그리고 사흘 동안 동고동락하며 깊은 우정과 사랑을 쌓게끔 했다. 그러니 이 작별의 순간이 어떻게 아쉽지 않을까. 에이미도 나도 포옹을 몇 번이고 나누며 꼭 연락하고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안녕. 서로의 행운을 빌면서. 안녕.

다행히 나머지 다섯은 아타까마까지 동선이 같았다. 비록 나와 형의 계획은 아타까마에 잠깐 들러 투어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저녁때까지 투어를 마친 다음, 밤차를 타고 산티아고를 가는 것이었기에 아타까마에 가서 우리가 얼마나 함께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사막 한 가운데 덩그러니 서있는 국경사무소에서 출입국 도장을 받고 승합차에 우린 몸을 실었다. 사흘 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에 휩싸여 칠레를 향했다. 드디어 절반이다. 여행의 절반을 마쳤다. 그리고 다시 절반의 시작. 처음 남미 땅에 발을 디뎠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와 지금이 여전하다면, 우린 잘 해오고 있는 걸까. 여행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우리의 여행도 그 한계가 무한하니. 내 옆에 있는 형의 얼굴을 골똘히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믿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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