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이호준의 ‘사진 이야기’-5회

디지털 카메라의 심장이 센서(sensor)라면 눈은 렌즈(lense)다. 렌즈는 빛의 도움을 받아 피사체의 이미지와 색상을 기억장치인 센서로 전달한다. 사람의 눈과 비교하면 수정체와 같은 기능을 한다. 렌즈는 멀리 있는 피사체를 더 가깝게 보이게 하거나 시야를 넓히는 것 이상의 역할을 수행한다. 렌즈는 피사체에 대한 사진가의 태도와 친밀도를 반영한다. 찍고자 하는 주제나 소재의 선택에도 관계한다. 따라서 렌즈의 쓰임새를 기계적 특성에만 초점을 맞춰 이해하는 건 곤란하다. 촬영자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태도, 피사체와의 관계, 촬영대상 및 소재의 특성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사진=이호준
사진=이호준

일반적으로 렌즈의 종류는 초점거리의 차이와 초점거리의 고정 여부에 따라 나눌 수 있다. 초점거리는 렌즈와 이미지 센서 사이의 거리를 말하는데, 짧으면 짧을수록 화각이 넓어지고, 길어질수록 화각은 좁아진다. 여기서 화각이 넓은 렌즈를 광각렌즈, 화각이 좁은 렌즈는 망원렌즈라고 부른다. 화각은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시선의 범위라고 보면 된다. 광각렌즈는 보통 35mm 이하, 망원렌즈는 70mm 이상의 초점거리를 가진 렌즈를 말한다. 광각과 망원 사이, 대략 40~50mm 정도의 초점거리를 가진 렌즈는 표준렌즈라고 부른다. 표준이란 용어를 쓰는 이유는 40~50mm 정도의 초점거리를 가진 렌즈가 사람의 눈과 거의 유사한 화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초점거리의 고정 여부로 줌렌즈와 단렌즈로 구분하기도 한다. 일정한 범위 내에서 초점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렌즈를 줌렌즈라고 부른다. 줌렌즈는 16-35mm, 24-105mm, 70-200mm 등으로 초점거리의 범위가 표시되어 있어, 촬영자가 움직이지 않고도 피사체의 화각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반면, 단렌즈는 35mm, 50mm, 80mm 등으로 초점거리가 고정돼 있어, 화각을 변경하려면 촬영자가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한다. 줌렌즈는 편의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지만, 초점 조절 메커니즘이 복잡하고 많은 수의 렌즈를 사용하기 때문에 단초점 렌즈에 비해 화질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사람마다 사진에 동기와 목적이 다양하고, 찍고자 하는 촬영대상과 피사체도 다르다. 이러한 사진활동의 다양성을 감안해, 촬영 상황에 맞는 렌즈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출사에 앞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어떤 렌즈를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DSLR 카메라의 경우, 장비의 무게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기동성도 고려해야 한다. 무작정 소유하고 있는 렌즈를 모두 가지고 나갔다가는 무게에 지쳐 촬영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찍고자하는 대상을 고려하지 않고, 전문가들이 권하는 대로 렌즈를 구입하는 것은 금전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프리미엄 렌즈의 가격은 만만치 않다. 잘 쓰지도 않을 렌즈를 구색 맞추기 식으로 구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떤 렌즈를 사용할지 결정할 때에는 피사체와 촬영하는 사람 사이의 심리적 관계와 물리적 거리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칫 촬영행위는 피사체에게 심적 부담과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인물사진을 예로 들면, 광각렌즈는 피사체에 매우 가깝게 다가가야 하기 때문에 촬영 대상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고 일상생활에 방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망원렌즈는 피사체가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촬영할 수 있지만, 몰래 카메라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에 인물사진이나 일상적인 거리풍경 사진을 찍을 때에는 촬영자의 시각과 유사한 표준렌즈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표준렌즈를 사용하면 피사체의 일상을 크게 방해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장면을 담아낼 수 있다. 덕분에 사적이면서도 솔직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표준렌즈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적당히 피사체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렌즈의 광학적 특성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초점거리가 긴 망원렌즈는 피사체를 격리시키고 앞뒤 공간을 압축시키는 효과를 낸다. 넓게 펼쳐져 있는 풍경 중 원하는 장면만 분리해 담아내는데 유용하다. 배경과 분리된 강렬한 인물사진을 찍는데도 요긴하다. 또한 스포츠 경기나 야생동물 촬영 같이 피사체에 가깝게 다가가기 힘든 상황에서 망원렌즈는 능력을 발휘한다. 다만, 중첩되는 피사체 간의 거리가 압축된 것처럼 찍혀 이미지의 공간이나 깊이감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광각렌즈는 메인 피사체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요소들이 프레임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구도와 세부묘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즉, 이미지 속의 많은 공간과 움직임은 최종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므로 프레임을 예의주시하면서 촬영에 임해야 한다.

“줌렌즈는 악마의 작품”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줌렌즈가 촬영자에게 편리성을 제공할 뿐, 사진에 대한 시각을 구축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일부 사진작가나 아카데미 강사들이 줌렌즈의 경박함을 강조하며, 단렌즈의 사용을 강하게 권유하는 경우가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반쯤 맞는 말이다. 렌즈는 도구일 뿐이다. 여행을 다니거나 다양한 피사체에 관심을 갖는 촬영자에게 줌렌즈는 매우 효율적인 장비다. 피사체가 달라질 때마다 매번 렌즈를 교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발줌이라는 말로 몸의 움직임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일정한 영역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악마’라는 식의 자극적인 말로 줌렌즈 사용자를 폄하하는 것은 지나치다. 렌즈는 용도에 맞게 쓰면 그만이다. 줌렌즈를 쓰든 단렌즈를 사용하든 그건 촬영조건을 감안한 사용자의 선택일 뿐이다. 광각, 망원, 표준 렌즈도 마찬가지다. ‘악마 렌즈’라고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이호준(facebook.com/ighwns)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서 2회 수상하고, 세 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 3회를 개최했다. 월간지 <SW중심사회>에 사진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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