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남미여행기-스물세 번째 이야기 / 강진수

 

45.

산티아고에 도착하자마자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은 도시의 지리였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 또는 마을들만 전전했던 우리는 산티아고와 같은 대도시에서 길을 찾으려 하니 막상 겁이 났다. 쿠스코에서도 잘 타지 않던 택시를 겨우 잡아타고 미리 봐놓은 숙소로 갔다. 숙소는 지금껏 머물던 곳 중에서 가장 으리으리했다. 크기도 크기 나름이었고, 들어가는 카운터부터 작은 정원과 테이블, 널찍한 부엌과 각종 주방기구들까지. 칠레는 페루, 볼리비아와 다르게 식당에서 식사하는 비용이 저렴하지 않으므로 주변 마트에서 장을 직접 봐서 숙소에서 해먹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부엌의 유무가 매우 중요하다. 물가도 칠레에서부턴 거의 한국과 맞먹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마트에서 구매하는 소고기와 와인의 가격은 지나칠 정도로 저렴해 호스텔마다 파티가 끊이질 않는다. 아타까마라는 북부 말단의 시골에서 벗어나 마주한 산티아고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짐을 내려놓으러 2층 침실로 이동했다. 원래 호스텔 건물이 커다란 상가였는지 방마다 옛 가게 때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내가 머무는 방은 이발소였다. 방에 들어서면 세면대와 거울, 이발소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고풍스러운 계단과 벽면의 액자들, 소파. 그 모든 것들이 아주 오래된 역사를 지닌 것이었기에, 우리는 박물관에서 며칠 머무르게 된 기분이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숙소를 나서 조금 걸어보았다. 어딜 가나 드높은 마천루나 유리로 벽을 세운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거리에는 자동차도 드물었고, 공원이나 광장 쪽으로 걷다 보면 잔디밭 곳곳에 누워있는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는 커플들을 볼 수 있었다. 페루와 볼리비아가 오래된 유적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역사를 보여주었다면, 산티아고에서는 내가 남미에 대해 꿈꾸고 기대했던 그 모습 자체를 볼 수 있다. 사랑과 열정이 넘치는 마성의 공간. 그저 길을 걷고 있을 뿐이었는데도 말로만 듣던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산티아고에서는 형과 내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태국에서 함께 일한 동료가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이곳에 머물고 있던 것이다. 그녀는 산티아고에 온 지 며칠이 채 되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가 페루에서부터 더 오래 남미에서 머물고 있다는 점은 우스꽝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잘 아는 사람을 이곳 낯선 땅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형과 나는 여전히 휴대전화를 개통하지 않았으므로 숙소에서 겨우 그녀와 연락을 주고받고, 숙소 근처 지하철역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역으로 갔는데 전철역의 출입구가 그렇게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페루, 볼리비아에서는 있지도 않던 전철이 있는 이토록 커다란 도시에서 휴대전화 없이 무작정 약속을 잡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한참 역 앞을 서성이며 모든 출입구들을 살폈고, 비로소 낯익은 얼굴의 여자를 발견했다. 우리는 반갑게 서로를 껴안았다. 지난 겨울에 태국에서 돌아와 서울에서 잠깐 얼굴을 보고, 그새 봄이 되어 드넓은 남미 대륙 칠레의 도시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

 

근처 로컬 식당에 가서 간단히 점심을 같이 먹었다. 돼지고기에 감자튀김을 곁들인 평범한 현지식이었는데, 시장이 반찬이라고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아타까마에서 이곳까지 24시간을 버스타고 오느라 그동안 제대로 된 식사도 한 번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허겁지겁 음식을 먹고 있으니 맞은편의 그녀가 상당히 안타깝다는 듯이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벌써 2주 가까이 남미에서 머물면서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느라 옷가지나 행색 또한 많이 초라해보였을 것이다. 음식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그녀가 몇 가지를 더 시켜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 역시 스페인어를 잘 할 줄 아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음식 주문은 형과 내가 더 잘하는 편이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한 달이라도 좀 뒤에 만났으면 그래도 스페인어를 조금 쓸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우리 모두 별반 차이 없어. 그래도 여행자인 나와 형보다는 유학생인 자신이 돈은 조금 더 많다며 점심 값을 그녀가 모두 계산해버렸다. 머쓱해진 우리는 커피라도 사야겠다며 카페를 찾아 나섰다. 뜨거운 한낮의 햇빛을 받으며 한가로이 도심을 향했다.

 

46.

한참 아르마스 광장 방향으로 걸었다. 햇빛이 따갑다가도 무성한 가로수의 그늘에 서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곳은 한국과 달리 가로수의 가지를 전혀 잘라내지 않았다. 아예 가로수를 건드리지 않은 것만 같이 나무가 도로 곳곳에 길게 가지를 뻗어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가끔 도로에 드리운 가지들이 지나다니는 사람과 부딪치곤 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커다란 시계탑이 있는 건물을 지나면 곧 아르마스 광장이 나오는데, 광장 직전에 길게 뻗어있는 길목이 매우 아름답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명동이나 인사동 거리 같은 모습인데,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뭔가 물건을 사고팔거나 군것질거리를 하러 걷는 거리가 아니라 오로지 휴식을 위한 길이었다. 길 중간 중간에 예쁜 벤치가 놓여 있었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책이나 신문을 읽었다. 또 곳곳에 노천카페들이 들어서 있고 중후한 노신사가 그곳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한가로운 낮을 보내고 있었다.

 

여전히 카페를 찾아 헤매다가 광장 중심까지 들어섰다. 같이 온 그녀 역시 산티아고를 이렇게 천천히 둘러보는 것은 이날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광장에는 잡지를 파는 사람, 코미디 원맨쇼를 하는 사람, 빅밴드의 거리 공연, 광장 주변으로 자리 잡은 고풍스런 카페와 멋진 종업원들 이 모두가 어우러져 어떤 이루 말할 수 없는 느낌을 만들어냈다. 이게 아마 산티아고만의 느낌일 것이다. 그동안 머물렀던 모든 도시와 마을들이 각기 그 느낌이 달랐듯이. 산티아고 역시 나름의 느낌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 느낌의 한가운데에서 가장 특이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서울의 종로나 탑골공원에 가면 장기와 바둑을 두시는 어르신들이 계시듯, 이곳 광장에도 칠레 어르신들이 모이셔서 체스를 두고 계셨다. 그 모습이 한편으로 매우 도시적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도시의 풍경과는 안 어울리기도 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간을 정해두고 그 시간 안에 말을 옮겨야 하는데, 시간이 다 되었다고 종을 치는 사람과 그 발랄한 종소리가 아직도 선명하다. 나와 형도 한 귀퉁이에 앉아 체스를 두었다. 서로 이기겠다고 치고 박던 그날의 승부는 나의 패배로 끝이 났다.

우리 셋은 나란히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를 시켰다. 커피를 마시려다가 날씨를 보아하니 반드시 맥주를 마셔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대화들이 오고갔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날 오후에 그림 같은 광장과 카페에서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됐다.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시간이 지나고, 그녀와 우린 작별을 했다. 다시 한국에서 만나자. 서로의 행운을 기원하며. 서로 남미에서 살아가야 할 각자의 삶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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