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곽노현 ‘국회를바꾸는사람들’ 상임대표 / 전 서울시 교육감-3회

<2회에서 이어집니다.>

곽노현 ‘국회를바꾸는사람들’ 상임대표 / 전 서울시 교육감
곽노현 ‘국회를바꾸는사람들’ 상임대표 / 전 서울시 교육감

- ‘SKY캐슬’보다 더 견고한 국회에 하위계층 출신 의원 입성을 가능하게 하려면.

▲ 현재 국민 45%가 집이 없다. 그러면 국회에도 집 없는 의원이 45%가 있어야 맞다. 그래야 집 없는 사람의 설움을 대변한다. 다시 말해 국회는 재산이나 소득 하위계층 50% 출신의 국회의원으로 절반이 채워져야 한다. 그래야 경제적 계층계급을 골고루 대변하는 국민대표기구가 된다. 자영업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도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만약 국민을 닮은 국회를 만드는 데 동의한다면 완전연동형 선거제도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주요정당이 전략적으로 비례대표후보를 최대한 여성, 청년, 서민으로 채우고 여성, 청년, 서민출신 지역구후보에게도 과감하게 공천 가산점을 줘야 한다. 그래야 양성평등 국회, 젊고 푸른 국회, 서민민생우선 국회를 만들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20대, 30대, 40대는 남성이건 여성이건 일단 재산이나 돈이 변변치 않아서 소득과 재산 기준으로도 하위 50%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여성, 청년세대, 서민후보에게 공천 가산점을 이중삼중으로 주는 담대한 공천혁명을 하라. 그런 정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다.

 

- ‘코먼 피플’(Common People), 보통 사람들의 국회 가능성이 보인다.

▲ 그렇다. 국민을 닮은 국회를 달리 표현하자면 보통사람들의 국회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여성과 20대-30대-40대, 서민 등 세 그룹에게 전략적으로 공천 가산점을 주면 여성과 남성, 청년과 노장년, 부자와 서민이 균형을 이루는 보통사람의 국회가 가시권에 들어올 수 있다. 여성과 청년, 서민 국회의원이 많아지면 돌봄 민주주의와 민생 경제가 살아나고 경제민주화를 추동할 수 있다.

 

- 청소년인권법 문제는 어떤가. 세계적으로 18세 참정권 부여가 대세인데, 한국은 빠져 있다.

▲ 18세 선거권은 이미 전 세계 18세 청소년의 95% 이상이 향유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와 아르헨티나, 독일의 일부 주에서는 16세 청소년에게도 보장한다. 우리나라가 18세 청년들에게 아직까지도 투표권을 안 주는 건 우리아이들이 세계적 기준으로 볼 때 특별히 모자라다는 얘기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완전히 사실에 반할 뿐 아니라 우리청년에 대한 모독이자 대한민국의 망신이다. 기성세대이자 교육자로서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20대 국회에 18세 참정권법안이 상정돼 있지만 아직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교복 입은 유권자는 안 된다’는 이유로 발목을 잡고 엉뚱하게 학제개편론을 들고 나왔다. 18세 투표권은 아동-청소년의 목소리를 직접 지역사회와 국가에 전달하는 데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학생한테 교육감 투표권이 생기면 교육감후보들은 학생의견을 듣지 않을 수 없고 교육감이 되면 관련예산을 늘리고 관련정책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인권법 제정도 시급하다. 지금까지는 학생인권조례형식으로 해 왔지만, 17개 시·도 중 제정된 곳은 서울, 경기, 전북을 빼면 없다. 국가차원에서 모든 청소년들이 학생인권을 적용받으려면 법률제정이 필요하다.

 

- ‘교복 유권자’ 무시 아닌가.

▲ 정확하게 보셨다. 교복 입은 유권자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청소년참정권뿐 아니라 개혁입법이 안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대 국회는 완벽한 민심괴리 국회다. 자한당이 모든 개혁입법에 대해 100% 블로킹을 하고 있다. 의회권력을 심판할 유일한 방법은 투표혁명 밖에 없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1차 투표혁명이 있었다. 자한당의 표현대로 ‘궤멸수준’으로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국회까지 심판받은 건 아니다. 자한당이 머리수만 믿고 아직도 민심과 너무나 동떨어지게 행동한다. 첫 국회심판기회가 주어지는 내년 4월 총선에서 제2의 투표혁명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 올해 3월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았다. 굴곡졌던 격동의 근현대를 거쳐 온 ‘100년 전 조선’과 ‘100년 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말한다면.

▲ 지난 100년은 1919년에 시작해서 2018년에 끝났다. 100년의 시작은 3.1혁명이었다. 왕(王)의 나라 대한제국이 민(民)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바뀌었다. 수천 년 국체를 바꾼 정치혁명이었다. 분단과 전쟁, 냉전의 영향으로 군부독재와 권위주의정권을 거쳤으나 치열한 저항과 투쟁으로 민주화에 성공했다. 잠시 반동을 맞았으나 촛불시민혁명을 해냈다.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가 민주주의 종주국인 미국과 영국보다도 한 단계 위다. 어떤 민족, 어떤 국가의 지난 100년 역사도 우리민족의 지난 100년의 역사만큼 극적이진 않다. 물론 아직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미완의 국가다. 하지만 지난 100년의 마지막 해인 2018년에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사상최초의 북미정상회담으로 분단휴전체제 극복의 희망을 갖게 됐다.

 

- 출발도 ‘위대한 시작’이었다.

▲ 그랬다. 당시 2000만 인구의 10%인 200만 명 이상이 7~8개월 동안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정의와 인도주의에 입각한 운동이었고,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을 지향한 운동이었다. 무자비한 일본의 총칼로 순국한 선조들이 약 7500명에 달한다. 5만 여명이 체포와 구금을 당했다. 무단통치를 가했던 일본도 우리의 독립만세운동에 상당히 놀랐다. 우리는 비폭력이었고 국제적으로는 중국의 5.4운동과 인도의 비폭력 저항운동에 자극과 영감을 줬다. 일제가 억압해도 선교사를 중심으로 해서 외국으로 소식이 타전됐다. 이를 보고 들은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동방의 등불’이란 시를 지었을 정도다. 타고르의 마음속에 조선에 대한 존경심이 싹 튼 것이다. 우리의 지난 100년은 위대하게 시작했다.

 

- 한민족이 다음 시대에 풀어야 할 과제는.

▲ 실은 지난 100년은 위대하게 시작했을 뿐 아니라 위대하게 마감됐다. 지난 100년의 마지막 해인 2018년에 우리민족은 종전선언, 비핵화, 북미수교, 평화협정체제로 이어지는 분단정전체제 극복의 큰 그림이 드디어 남북미 정상의 공식 언어로 확인되는 감격을 맛봤다. 지난 100년의 최대 미완과제, 분단정전체제를 평화롭게 해소할 수 있다는 희망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촛불시민혁명의 기운과 남북화해협력의 기운을 받아서 지금은 각 분야별로 다음 100년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합의를 만들어 내야 한다. 물론 다음 100년은 너무 긴 시간이라 예측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10년이나 20년 정도를 내다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간의 공동체생활과 국가생활, 사회생활은 오래된 미래이고 인간적인 가치는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100년의 첫해인 금년 중으로 10년, 20년, 30년 후의 우리사회 한민족 전체의 모습 또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나는 그런 미래지향적 사회적 합의가 내년 총선에서 국민심판을 돕고 21대국회의 확실한 지향점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 세대 간 통합도 중요한 문제다.

▲ 우리민족에게는 2019년 올해야말로 지난 100년을 돌아보고 다른 100년을 내다보며 미래지향적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할 최적기다. 마치 100년 전 3.1혁명으로 민주공화국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이끌어냈던 것처럼 말이다. 과거 위에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지만, 우리의 눈을 10년, 20년, 30년 후에 두면 누구나 마음이 넓어진다. 지금 지지고 볶고 있는 문제들이 10년 후에 들여다보면 지질한 것인데도 너무 흥분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도 있다. 본래 우리민족이 갖고 있던 대륙적 기질을 회복해서 좀 더 유장한 시간적 프레임을 가져도 좋겠다. 지난 70년 우리가 사실상 섬나라에서 살면서 섬나라 근성이 생겨난 것 같다. 너무 아옹다옹하고 사람들이 쪼잔해진 측면이 있다. 올 한해는 길게 내다 볼 수 있는 즉, 우리 모두가 합의 할 수 있는 중장기 국가비전을 각 영역과 세대를 가리지 않고 같이 모색하면 좋겠다.

 

- 반민족 세력 혁파도 최대 과제다.

▲ 미래비전으로 통합된 우리국민은 미래지향적 포부를 갖게 된다. 이렇게 되면 수구세력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그동안 안보와 반공장사를 통해 극단적으로 사회갈등을 키웠다. 무고한 사람들을 잔인하게 유린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수구적 행태였다. 그래서 내년 4월의 투표혁명이 고대된다. 돌덩이가 아닌 종이로 된 투표용지를 통해 행정 권력 교체와 사법 권력 교체에 이어 입법 권력을 교체해야 한다. 내년 총선은 다음100년을 여는 총선이라 제2의 투표혁명이 너무나 절실하다.

 

- 새로운 100년을 맞은 시점에서 새로운 국회상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21대 국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 21대 국회는 새 100년의 정초국회로서 최대한 국민을 닮은 국회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자가 국회의원이 되고 가난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고 젊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는 게 중요하다. 50대,60대,70대 엘리트·부자 국회의원이 아무 것도 없는 아들딸 뻘 젊은 세대를 대표할 수는 없다. 그건 환상이다. 또 육아와 가사를 책임지며 경제 활동하는 여성의 3중고를 남성의원들이 속속 이해하고 대변해 줄 것이라는 것도 환상이다. 가난한 사람의 처지를 부자의원이 헤아려주고 돌봐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환상이다. 대표자를 두는 게 불가피하다면 누구나 자기를 닮은 대표자를 국회에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자꾸 되풀이되는 얘기지만 금년은 새 백년의 첫해이니만큼 다음 100년의 첫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국가적 민족적 비전에 대해 전 국민적 토론으로 일정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그 틀 안에서 지금의 소모적인 쟁점들과 갈등요인들을 발전적으로 해소해 나가야 한다. 이 부분이 있어야만 지혜로운 적폐청산이 가능하고 다른 100년의 새 시대를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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