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따라 봄마중 나가볼까나
남한강 따라 봄마중 나가볼까나
  • 김초록 기자
  • 승인 2019.02.2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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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록 여행스케치] 경기도 여주

산천에 봄기운이 퍼지는 경칩 무렵이다. 동백, 매화가 봄소식을 알리더니 저 어디선가 개나리, 산수유도 꽃봉오리를 내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봄은 강에서 먼저 오는가? 여주시내를 가로지르는 남한강에도 봄 햇살이 퍼지고 있다. 여강은 남한강의 옛 이름이다.

먼저 여강을 지척에 둔 영릉으로 간다.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자리한 두 기의 능은 왼쪽이 조선의 4대 임금인 세종대왕(재위 1397∼1450)과 그 왕비인 소헌왕후(1395∼1446) 심씨를 합장한 영릉(英陵)이고, 오른쪽이 조선의 17대 임금인 효종(재위 1649∼1659)과 비인 인선왕후(1618~1674)가 잠들어 있는 영릉(寧陵)인데,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은 오솔길로 연결돼 있다. 청신한 숲이 에워싼 이 길은 이른바 ‘왕의 숲길’로 불린다. 태종에게 임금의 자리를 물려받은(그의 나이 21살 때였다) 세종은 53세로 승하할 때까지 우리나라 역대 왕 가운데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훌륭한 성과를 올렸으니 여주의 자랑이자 대한민국의 자긍심이다.

 

1명당으로 꼽히는 세종대왕릉
명당으로 꼽히는 세종대왕릉

▶우리 역사의 큰 인물을 만나다

영릉(英淩)은 천하의 명당자리로 알려져 있다. 영릉 덕으로 ‘조선왕조의 국운이 100년은 더 연장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영릉을 ‘왕릉 중에서 제일’이라고 칭송했다. 영릉(英淩)과 영릉(寧陵)을 탐방하기 전에 들머리의 재실(齎室)에 들러본다. 재실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무덤이나 사당 옆에 지은 집으로, 제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숙식과 제사음식을 장만하던 곳이다. 수령 300년을 헤아리는 재실 앞마당의 회양목(천연기념물 제459호)이 고고함을 한껏 뽐내니 세월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이 회양목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로 알려져 있다. 세종대왕릉 입구에 있는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서 세종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답사 순서: 효종대왕릉 주차장-재실-효종대왕릉-왕의숲길-세종대왕릉. 소요시간 1시간.

 

명성황후기념관
명성황후기념관

영릉에서 10분 거리에는 조선 제26대 고종황제의 왕비인 명성황후(1851∼1895년) 생가가 있다. 안채, 행랑채, 사랑채, 별당채로 나눠진 생가는 명성황후가 태어나서 8세까지 살던 집으로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생가 앞 기념관에는 각종 자료와 유품들, 고종의 모습과 당시의 의복 같은 민속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19세기 말 허약한 국권을 지키기 위해 일본에 정면으로 맞서다 비참한 최후를 맞은 명성황후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펴볼 수 있다. 생가 옆에 있는 감고당(感古堂)은 명성황후가 왕비로서의 삶을 살기 전에 잠시 머물렀던 집인데, 원래 안국동 덕성여고 본관 서쪽에 있다가 2006년 명성황후 생가가 있는 이곳으로 옮겨왔다.

 

신륵사 경내에 서 있는 다층전탑
신륵사 경내에 서 있는 다층전탑

▶남한강변에 들어선 전망 좋은 절집

여주시가지의 남북을 잇는 여주대교를 건넌다. 다리 밑으로 남한강이 흘러간다. 강빛이 쪽빛 하늘을 닮았다. 남한강은 여주땅을 가로질러 서북쪽으로 유유히 흘러간다. 여주 사람들은 이 남한강을 신성한 강으로 여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철 마르지 않는 강물은 오랜 세월 그들의 생활터전이자 쉼터였기 때문이다.

여강이 바라보이는, 경치 아름다운 곳에 들어선 신륵사는 우리나라에서 마당 앞으로 강이 흐르는 드문 절집이다. 여주를 대표하는 천년고찰로 신라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태조 이성계가 스승 무학대사를 추모하기 위해 지었다는 팔작지붕집인 조사당은 신륵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또한 절 앞 강가 절벽에 있는 강월헌(江月軒)이라는 정자에 오르면 남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신륵사의 경치 중 으뜸으로 꼽힌다. 신륵사에 남아있는 여러 문화재 중 특히 탑이 눈길을 끈다. 대리석으로 마감한 조선 전기의 다층석탑(보물 제225호)과 흙으로 구운 벽돌을 쌓아 세운 고려시대의 다층전탑(보물 제226호)은 깊은 멋과 함께 웅장한 기품을 보여준다.

 

3강변 풍경이 아름다운 브라우나루터
강변 풍경이 아름다운 브라우나루터

▶강바람 맞으며 강변길 걷기

신륵사 건너편 여주대교 쪽 강변에는 영월루(迎月樓)라는 아름다운 정자가 남한강을 바라보며 서 있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여강길은 캠핑장이 있는 금은모래유원지를 지나 한강문화관(강천보), 브라우 나루터, 우만리 나루터, 흔암리(흔바우) 나루터, 아홉사리과거길, 도리마을로 이어진다. 여강길에서 만나게 되는 강천보는 여주에 있는 3개의 보 중에서 가장 상류에 있는데 옛날 남한강을 누볐던 황포돛배를 형상화했다. 브라우(붉은 바위란 뜻)나루는 여강변 나루터 중에서 풍광이 가장 빼어난 곳으로 불과 10여 년 전까지도 배를 띄웠다고 한다.
 

우만리 나루터 앞의 느티나무.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우만리 나루터 앞의 느티나무.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우만리와 강천면 가야리를 연결하던 우만리나루터 앞에는 수령 300년 된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다. 1972년 홍수로 나루는 사라졌지만 느티나무는 거친 풍파를 이겨내며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주의 끝머리인 도리마을에서 소너미고개를 넘어 남한강대교를 건너면 강원도 원주땅을 밟게 되는데 좀 더 가다보면 강변 풍경이 빼어난 흥원창에 이른다. 흥원창은 배로 곡물을 나르기 위해 국가가 운영하던 창고로 지금은 표석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강변길(여강길) 걷기의 시작점인 금은모래유원지
강변길(여강길) 걷기의 시작점인 금은모래유원지
강천보 앞으로 난 남한강 자전거길
강천보 앞으로 난 남한강 자전거길

한편 신륵사 건너편의 금은모래유원지는 그 옛날 한강과 남한강을 오가던 황포돛배들이 잠시 거쳐 갔던 곳으로 황포돛배는 소금, 새우젓, 곡식, 땔감 같은 생활 용품들을 실어 날랐다. 여주 사람들은 삶을 살찌우는 이런 강줄기를 ‘여강 백리길’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1970년대 팔당댐 건설로 뱃길이 끊겼고 다리가 놓이고 길이 뚫리면서 나루터도 함께 사라졌다. 그 시절의 황포돛배는 자취를 감췄지만 관광용 황포돛배가 신륵사에서부터 여주대교를 거쳐 여주시청, 영릉, 여주보까지 왕복 3km를 운항하고 있다. 황포돛배 문의: 031-882-2206

 

국보로 지정된 고달사지 부도
국보로 지정된 고달사지 부도

▶놓치면 아쉬운 곳들

여주시내에서 37번 국도를 타고 양평 쪽으로 가면 옛 절터인 ‘고달사지’를 만나게 된다. 고달사지의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사방 30리가 모두 절땅이었고, 수백 명의 비구들이 도량을 지켰다고 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하는데, 지금은 덩그렇게 절터와 유물 몇 점만 남아있다. 절터를 지키고 있는 유물은 그 가치가 아주 뛰어나 보물과 국보로 지정됐다. 혜목산(慧目山)이 병풍처럼 둘러선 절터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석불대좌(보물 제8호)를 비롯해 현재 남아 있는 부도 가운데 가장 크고 높다는 고달사지부도(국보 제4호)와 원종대사탑비가 방문객을 맞고 있다. 유물들은 하나같이 단아하고 웅장하고 역동적이어서 눈길이 오래 머물게 한다.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파사산성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파사산성

고달사지에서 여주와 양평을 잇는 37번 국도를 타고 남한강을 따라 더 올라가면 금사면 이포리와 대신면 천서리를 잇는 이포대교와 마주한다. 일제 때 여주 일대의 곡물이 이곳 이포대교 밑 나루에서 실려 한강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는 서글픈 역사가 있었다. 또 단종이 왕위에서 쫓겨나 강원도 영월땅으로 유배를 가던 중 이곳에 잠시 내려 눈물을 뿌렸다는 사연도 전한다.

 

천서리마을의 명물인 막국수
천서리마을의 명물인 막국수

이포대교 옆에 걸린 이포보는 여주의 새인 백로와 생명을 품은 ‘알’을 형상화해 건설한 보로 전국 16개 보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듣고 있다. 마을 뒤에 있는 파사산은 해발 200미터 남짓 되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남한강과 이포대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경치가 아주 좋다. 산 정상부엔 900여 미터의 성이 둘러서 있는데 신라 5대 파사왕 때 쌓은 파사산성이다. 복원된 산성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은 무척 장쾌해 막힌 가슴이 탁 트인다.

 

여주세계생활도자관에 전시된 각종 생활 도자기
여주세계생활도자관에 전시된 각종 생활 도자기

여주는 일찍이 도자기의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각종 문헌에서 보듯 도자기의 원료인 고령토가 출토되어 고려 초부터 질 좋은 도자기를 생산, 남한강 물길을 통해 서울 등 각처에 도자기를 공급해 왔다. 신륵사 관광단지에 있는 여주세계생활도자관에 가면 다양한 생활 도자기를 볼 수 있고 일반인 및 전문가를 위한 도예공방과 전통 옹기가마 등 도자기와 관련된 다양한 시설이 모여 있다. <여행작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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