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우리시대 최후의 척탄병’ 김영곤-김동애 시간강사 부부-3회

<2회에서 이어집니다.>

김영곤 시간강사
김영곤 시간강사

- 강사가 되기 위해선 석박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강사와 교수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왜 굳이 대학원에 진학하느냐는 비판도 있다.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강사들을 향해 스스로 자초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는데.

▲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교수와 연구자 수요에 맞춰 대학원에서 박사를 양성해 공급해야 한다. 일본도 1970년대에는 한국처럼 박사가 넘쳤는데 수급을 조절해 지금은 박사가 되면 연구자나 강사, 교수가 될 수 있다. 강사는 당연히 교원이고 5년 강의하면 교수로 승급한다. 한국도 강사를 제대로 대우하고 일생동안 안정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사를 필요로 하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늘려야 한다. 중고등학교 때 학문을 하고 싶어 대학에 가서 박사가 되었는데, 박사학위를 받고 보니 지금 강사들의 현실인줄은 꿈에도 몰랐다고들 한다. 사회에서 정책으로 조절해야 할 문제이다. 물건의 경우는 생산비에 맞춰 가격을 쳐주는데 박사는 그렇지 않은 게 모순이다.

 

- 수도권이나 지방이나 부패한 대학들이 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시간강사들은 발붙일 곳이 없다. 이런 딜레마는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 대학은 이수학점이 있고, 학생은 이수학점을 따야 졸업한다. 대학이 일시적으로 강사를 줄일 수 있지만 조금만 내다봐도 강사를 더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오히려 강사가 교원이 되면 학생을 교육, 지도하고 학문을 연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또 주입식 교육을 그만두고 토론 수업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 지방에 있는 대학들도 개성을 갖게 된다. 서울에 있는 큰 대학들이 연구의 모든 부문에서 비교우위를 누리던 상태는 불가능하게 된다. 흔히 다른 나라는 지방에 있는 작은 대학도 질이 좋다고 하는데 한국도 그런 방향으로 갈 수 있다.

 

- 김영곤 선생의 경우 대학원 진학을 하지 않고 강사가 되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 노동운동을 하다가 2005년 ‘한국노동사와 미래’라는 책을 썼다. 고려대 강수돌 교수가 이 책을 보고 자신이 강의하던 ‘노동의 역사’ 강사로 저를 추천했다. 강 교수가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하던 과정에서의 경험을 한국에도 적용하려 했던 것 같다. 독일에서는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와 사회생활을 하던 연구자가 함께 연구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그런데 강의를 하면서도 교원지위를 회복해달라, 강사료를 국립대 수준으로 올려달라, 학생 수업 절대평가를 하자고 요구하니까 학교에서는 저를 해고시켰다. 해고 사유는 제가 학사이고 제 책이 국방부 금서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학사라서 실력이 없다는 주장은 철회했지만 저에게 강의를 배정한다면 고려대 재정이 위기에 빠진다며 경영상의 이유를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은 교수나 학생이 제 강의를 원하므로 계약갱신 기대권은 인정하지만 고려대 재정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기각했다. 나머지 법원도 마찬가지였다.

 

- 노동법 관련 도서가 문광부 추천도서가 되기도 했다. 책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그리고 당시 교수직 채용 제안이 없었는지.

▲ ‘한국노동사와 미래’와 ‘노동의 역사 노동의 미래’는 문광부 추천도서였다. 동시에 ‘노동의 역사 노동의 미래’는 국방부 금서였다. ‘한국의 공동체 자기고용’은 협동조합에 관한 내용인데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였다. ‘한국노동사와 미래’는 임진왜란 이후의 한국 노동사를 돌이켜보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제 나름대로 전망해봤다. 고려대 본관 앞에서 농성을 하는데 어느 분이 와서 총장을 사적으로 만나겠느냐, 또 다른 사람은 교수를 뽑는데 응할 생각이 있느냐고 전화했다. 싸우는 사람에게 그런 제안은 예의가 아니고 농담이겠지 하고 넘겼다. 진담이었다면 해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 대학 시절 공장노동자였다. 이념적 소신이 있다면.

▲ 대학을 그만두고 공장 노동자 생활을 오래했다. 저는 사회주의를 신봉한다, 신봉하지 않는다, 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 노동, 민족, 생태환경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삶의 구성요소를 각기 충족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개개인의 행복을 더한 국민행복 총량이 커진다. 다만 이들을 종합하는 헤게모니가 국민 일반에 있느냐 자본에게 있느냐에 따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구분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도 민주주의와 결합되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교육과 관련해서 부, 신분, 학벌의 세습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학벌의 세습을 가장 큰 문제로 생각한다. 부는 있다가도 없고, 신분은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학벌은 적어도 2∼3대를 간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이 학벌 세습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신진대사가 되지 않아 사회가 정체된다. 이런 나라가 무너지는 모습을 우리는 역사에서 경험했다. 그것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진지한 고민을 정치인이나 지식인이 해야 한다.

 

- 좀 다른 현안이다. 최근까지 남북미가 정상회담 건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북핵 문제를 떠나 북한의 경제 문제 해결에 이목이 쏠리기도 했다.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나.

▲ 올해는 3.1혁명 100주년이다. 당시는 일제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고 민주공화제를 수립하고 거기서 국민이 두루 존중받는 평등한 사회를 꿈꾸었다. 이런 지향이 지금은 세계 차원으로 확대되었고 동아시아에도 이런 흐름을 타야 한다. EU나 ASEAN이 그런 모습이다. 이들 광역공동체는 내부에 자잘한 문제가 많지만 크게는 하나의 평화 공동체이다. 세계적인 빈부 격차나 생태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면 세계정부로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졌다. 한국에서 메르스 사태가 일어났을 때 한국 정부보다 세계보건기구의 역할이 컸던 기억이 난다. 동아시아도 일본이 군국주의를 포기하고 중국이 패권주의를 추구하지 않는 광역공동체를 구성해야 한다. 그러자면 일본과 중국의 시민도 노력해야겠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상태를 종결짓고 이것이 지렛대 역할을 해야 한다. 그 이후 남북한이 교류를 확대하는 것으로 그칠지 통일로 나갈지는 예상할 수 없지만 동북아시아의 현안 문제를 해결하는데 남북의 협력이 큰 힘이 될 것이다. 일국의 노력과 아울러 동북아시아가 큰 틀에서 문제를 함께 고민할 때 효과적이다.

 

- 끝으로, 경제학 전공자로서 한국 사회 어떻게 보나.

▲ 사회 계층 구성을 언론은 10:90의 사회라고 본다. 2008년 금융공황 때 미국 뉴욕 월가에서 시위하는 아큐파이(occupy)운동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세계 계층 구성을 1:99로 봤다. 둘 다 맞는 얘기지만 저는 한국 사회를 1:9:90사회로 본다. 자본을 향해 싸울 때는 90이 9와 힘을 합쳐 1과 싸우고 무엇인가를 따낸다. 일단 이긴 다음에 성과를 나눌 때는 9가 독점하고 90을 배제한다. 비정규직 문제가 그런 모습이다. 다음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9는 90에 협조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1과 나머지의 격차가 커지고 사회는 1:99가 된다. 9가 90을 배려할 때 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생긴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