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만들어 고아원, 양로원서 연주봉사 하고파”
“오케스트라 만들어 고아원, 양로원서 연주봉사 하고파”
  • 정서룡 기자
  • 승인 2019.03.20 1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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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바이올리니스트 유지송

네 살 때 바이올린을 알았다. 바이올린은 너무 컸다. 어머니가 과자상자에 자를 붙여줬다. 바이올린 같았다. 그걸 가지고 놀았다. 5살 때 유치원에 들어가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단순한 취미생활 정도였다. 재미있었다. 재능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전주에 살던 초등학교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서울로 갔다. 레슨을 받았다. 이후 서울에 있는 선화예술학교와 선화예술고를 다녔다. 그녀 곁에는 항상 어머니가 함께 했다. 그녀는 러닝메이트였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유럽이 아닌 미국을 선택한 이유는 그곳의 자유로운 교육시스템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실력을 인정받아 켄터키주립대학 렉싱턴에서 루이스 전액 장학생으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에서는 현악기 교육학 석사와 바이올린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윌리엄 터윌링어(William Terwilliger)와 대니얼 메이슨(Daniel Mason)에게 사사받았다.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오케스트라와 심포니에서 연주했다. 에이큰 심포니, 오거스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사우스캐롤라이나 심포니, 켄터키대학 심포니 오케스트라, 렉싱턴 필하모닉 등이다. 한국에선 가톨릭 오케스트라 등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도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한다. OC컨저버토리와 인터내셔널 뮤직스쿨, 뮤직랩, 로고스 뮤직스쿨에서 바이올린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올해 개인 스튜디오도 오픈했다. 언론사에 클래식 음악 관련 칼럼도 쓰고 있다.

“기회가 있다면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도서관, 양로원에서 연주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바이올리니스트 유지송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지송
바이올리니스트 유지송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5살 때 처음 유치원에서 취미활동으로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께서 클래식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태어나서부터 클래식을 듣고 자란 게 바이올린을 시작하는데 영향이 컸었던 거 같습니다. 4살 때 제가 바이올린에 흥미를 가졌는데 그때 당시에는 제가 너무 어린 나머지 바이올린이 저에게는 너무 턱없이 컸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저에게 과자상자에 자를 부착하여 바이올린 모형을 만들어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날의 바이올린 모형을 가지고 놀면서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은 반대하지 않으셨나.

▲부모님께서는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셨습니다. 특히 어머니께서 바이올린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선화예술학교에 들어가는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전주에서 서울로 일주일에 한 번씩 레슨을 다닐 때도, 제가 선화예술학교, 선화예고에 들어가서 레슨을 다닐 때도 어머니께서 항상 저와 함께하는 러닝메이트 같은 존재셨었습니다. 제가 바이올린 레슨 받을 때 어머니께서 같이 있으시다 보니 나중에는 어머니께서 바이올린에 대해 반 전문가가 되셔서 저에게 때로는 따끔한 충고, 때로는 따뜻한 격려를 많이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나머지 가족들도 제가 집에서 바이올린 연습하는 소리를 들으며 무척 힘들었을 텐데 다 참아주시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어렸을 때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제가 초등학생 때 어머니께서 이런 식으로 연습하려면 그만두라는 소리를 하시면서 바이올린을 빼앗았는데, 제가 울면서 연습하겠다며 그만두지 않겠다고 하루 종일 고집을 부렸던 일이 기억납니다. 사춘기 이후에는 아무래도 많은 연습량이 힘들었던 거 같습니다. 선화예중, 선화예고 입시 때 7시간 이상 연습을 하면서 너무 힘든 나머지 바이올린을 그만 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는데, 그래도 항상 마지막 결심은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였습니다. 제가 그만두면 제 인생에서 바이올린이 영원히 없어질 거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무섭고 기분이 우울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도 바이올린이 이미 제 인생의 모든 것이 되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건 언제인가, 왜 미국으로 가게 된 건가.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바로 미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미국문화와 생활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운이 좋게도 고등학교 때 제가 사사했던 선생님께서 미국 대학교에 대한 정보들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이야기와 조언을 들으며 제 장래에 대한 명확한 목표가 생겼고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으로 유명한 나라들은 다 유럽에 있는데 왜 미국을 선택했냐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저는 미국대학교의 교육시스템을 느끼면서 여기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수님들의 자유로운 사고방식과 학생의 의견을 많이 존중해주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혼자서 유학길을 떠났는데 힘든 점은 없었나.

▲처음 미국에 와서 혼자서 생활할 때는 힘든 점이 무척 많았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부모님의 보호 아래 저는 연습, 공부만 하면 됐었는데 갑자기 미국에 오니 연습뿐만이 아니라 생활의 모든 걸 혼자 해결하고 처리해야 해서 힘들었습니다. 그때 당시 부족한 영어실력 때문에 제가 금전적으로 피해보는 일이 생겨서 부모님께 말하지 못하고 혼자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음악적으로 보자면 고등학생 때 저는 저의 음악을 만들기보단 바이올린 테크닉적으로 완벽하게 하는 것에 더 집중했던 면이 있었는데 미국 대학교 교수님께서는 테크닉보단 저만의 음악을 만드는 것과 솔로 곡보단 많은 앙상블 음악을 하며 더욱 다양한 음악을 연주해보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새로운 교육방식에 충격을 느끼면서 혼자서 어떻게 저만의 색깔이 드러난 음악을 연주해야 하나 무척 고민했던 생각이 납니다. 미국에 와서 제 생각과 성격이 드러난 음악을 연주하는 방식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연주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 거 같습니다. 미국생활은 제 개인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더욱 독립적으로 책임감 있게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 켄터키주립대학 렉싱턴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바이올린을 전공했는데.

▲제가 한국에 있을 당시 University of Kentucky 바이올린 교수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셔서 마스터클래스를 열었는데 그때 교수님께서 제가 연주하는걸 보시고 학교에 있는 Lewis Award라는 장학금 제도에 대해 말씀해주시면서 학교로 오는 걸 권유해주셨습니다. Lewis Award는 1년에 한 번씩 학교에서 여는 콩쿨이었습니다. 각 악기분야의 교수님들이 학생 한명씩을 추천해 그 학생들이 경연을 겨뤄 한 사람을 뽑아 전액장학금과 일정의 생활비를 상금으로 주는 콩쿨이었는데 그 콩쿨에서 제가 만장일치로 1위를 하게 되었고 학교 다닐 동안 전액장학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현악기 교육학 석사학위와 바이올린 전공 석사학위를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에서 받았다. 교육에도 관심이 있었던 건가.

▲처음부터 교육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하는 게 즐겁고 앙상블이 좋아서 연주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그 당시 학생들을 많이 가르치게 되면서 체계적인 교육방법에 대한 목마름이 생겼습니다.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자세와 주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책임감을 막중하게 느끼면서 바이올린 전공 석사학위를 마치고 교육학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교육학을 배우면서 교육방법에 대한 목마름을 채울 수 있었고 바이올린에 대한 다양한 교육방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에이큰 심포니 등 여러 심포니와 오케스트라에서 연주자로 활동했다. 감회를 얘기하자면.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할 때는 항상 즐겁고 흥분됩니다. 모든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겠지만 그 많은 연주자들이 함께 음악을 만들어간다는 게 너무 재미있고 설렙니다. 여러 심포니에서 연주하면 다양한 지휘자들과 솔로이스트들, 그리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만나게 되는데, 각각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음악으로 하나 될 때 음악의 힘을 느낍니다. 오케스트라 콘서트 무대에 많이 서다 보면 유명한 솔로이스트들의 앙코르 곡을 정말 가까이서 들을 기회들이 생기는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느끼고 넋을 잃고 쳐다보게 된답니다.

 

-현재는 무슨 일을 주로 하고 있나.

▲현재는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이번 년도에 개인 스튜디오를 오픈했고 칼럼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일단 더욱 더 교육에 힘쓰면서 개인 스튜디오를 발전시켜 나가는 게 제 목표입니다. 기회가 있다면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도서관, 양로원에서 연주 봉사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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