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도 교양이 될 수 있다!
과학도 교양이 될 수 있다!
  • 김혜영 기자
  • 승인 2019.07.0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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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서울국제도서전에 가다-2회] 김혜영

페스티벌의 계절인 여름, 풍성한 음악이나 흥겨운 춤 없이 오로지 책으로 가득한 축제가 있다. 지난 6월 19일부터 23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이다. 이틀 동안 한국에서 가장 큰 책 축제를 다녀오며, 그 후기와 감상을 두 편에 걸쳐 풀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1편은 나의 독서 이야기를 포함한 도서전 방문기였고, 2편에서는 현장에서 들은 과학 강연을 함께 나눌 계획이다.

 

도서전 풍경

처음 도서전에 방문한 날, 호기롭게 전시장 한 바퀴를 쭉 둘러보았다. 얼마나 큰 규모인지 모르고 내린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한 시간 즈음 지난 뒤에야 전체를 둘러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때 ‘과학문화의 출현’이라는 강연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과학책을 읽은 게 언제였더라. 어렸을 땐 인체탐험이나 유명한 과학자들의 일화가 소설만큼이나 흥미로웠는데, 문과와 이과가 나뉜 뒤로 과학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과학과 책을 주제로 한 강연을 듣고 나면 호기심이 가득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강연장에 들어갔다.
 

과학도 교양이 될 수 있다

시작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강연자는 작년에 tvN에서 방영되었던 ‘알쓸신잡3’에 출연한 김상욱 박사였다. 인문학 감성을 보유한 물리학자로 인기를 끈 그는 사회를 맡은 유튜버 김겨울과 능숙하게 강연을 진행했다. 서두는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모두가 어리둥절하던 때, 그는 열역학 제2법칙이 없으면 이 장면이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시간이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것을 설명하는 유일한 법칙이다. 만약 이 법칙이 없다면 로미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가 사라진다. 과거로 돌아가 줄리엣을 살리면 될 일이라서 비극적인 결말이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만이 교양이 아니고, 과학도 교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과학기술이 경제, 자본과만 연관된다는 편견을 깨야할 때다.

사람마다 과학의 의미는 다르고, 그가 생각하는 과학은 갈릴레오가 포문을 열었다. 망원경이 발명된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망원경을 사용했다. 군사 기술로 발전시키거나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방향이었다. 갈릴레오는 망원경의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만의 망원경을 만들어 최초로 하늘을 관측했다. 그리고 목성의 위성을 발견해 세상의 모든 별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발견은 지동설로 가기 위한 심리적 장벽을 깬 것은 물론, 직접 관측을 통해 얻은 증거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는 근대 과학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는 갈릴레오의 일화를 들려주며 물질적 증거에 기반 결론을 내리는 태도가 곧 과학이라고 말했다. 복잡한 수식이 아닌 태도 그 자체가 과학이라는 것. 그제야 과학도 교양이라는 말을 조금씩 이해했다.

 

클럽에서 열린 과학 파티
클럽에서 열린 과학 파티

모든 인간이 평등해야 하는 이유

그는 과학적 지식의 재미와 쓸모도 알려주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그래야 한다는 당위만 있을 뿐 논리적인 근거를 찾아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 이때 과학은 가장 중요한 근거를 줄 수 있다. 하나의 세포가 진화해 수많은 생명이 되었고, 호모 사피엔스는 그 중 하나라는 것. 현재 이 시점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지구상에서 똑같은 시간동안 진화해 죽지 않고 살아남은, 똑같은 처지의 존재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인간은 평등해야 하고, 반려동물을 학대해서도 안 된다.

이전에 신학 전공수업에서 인간의 특수성을 찾는 논의를 벌인 적이 있다. 인간이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이유, 인권이라는 개념을 부여할 수 있는 근거 등을 찾기 위한 토론이었다. 우리는 인간만이 예술을 즐길 수 있고 창의성을 가졌다는 특징들을 제시하며 역사적으로 논의되었던 담론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동물이나 인공지능도 그러한 특징이 있다는 것이 발견되며 실패로 돌아갔다. 그 결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신학적 이유만이 남았다. 종교적 근거는 해당 종교인이 아닌 모두를 설득하기에 한계가 있어 아쉬운 결론이었다. 이때 과학은 모든 생명체가 동등하다는 냉정한 관점에서 평등의 가치를 끄집어냈다. 인간이 다른 존재에 비해 특별하다는 주장보다 모두가 공평하다는 명제에 마음이 끌렸다. 과학이 답할 수 있는 인문학적 담론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 분야를 나누지 않고 교양이라는 큰 틀로 묶어 탐구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상욱 박사와 유튜버 김겨울
김상욱 박사와 유튜버 김겨울

과학을 문화로 즐기다

마지막으로 그는 과학문화의 출현이라는 강연의 제목을 설명했다. 과학과 문화는 이질적인 단어다. 문화는 인간이 상상력으로 만들어온 것이고, 과학은 인간과 상관없는 우주의 법칙이다. 우주는 아무런 의미 없이 질서를 유지하는 공장이자 팩트 그 자체일 뿐이다. 이때 우주의 사실로부터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것을 탐구하는 것이 과학문화다. 앞서 인간이 평등해야 하는 이유를 과학에서 찾은 시도처럼 말이다. 우리 주변의 대표적인 과학문화는 강연의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 외에 과학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등의 다양한 시도들이 포함된다. 물론 인문학적인 가치를 동반해야만 과학문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블 영화에서 아이언맨이 박람회 혹은 강연장에서 과학과 엔터테인을 결합한 무대와 쇼를 만들어내는 것도 과학문화다. 최근 서울에서는 유명 클럽에서 과학 공식을 화면에 띄워놓은 채 춤을 추고 즐기는 파티도 열렸다.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과학을 즐기는 것도 과학문화가 될 수 있는 것. 과학을 문화로 즐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김상욱 박사는 가장 훌륭한 과학 문화로 책을 꼽았다. 우리의 몸이 우리가 먹은 것이라는 말처럼, 우리의 생각은 우리가 읽은 책이다. 경험이나 이야기를 통해서도 사고를 고양시킬 수 있지만, 높은 밀도와 체계화된 형태로 지식을 얻기엔 책만 한 것이 없다. 과학이 문화라면, 문화를 습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책이라는 것. 그는 많은 사람들이 직접 과학자가 되어 실험을 하지 않아도 과학 책을 통해 교양을 얻기 바란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모든 말을 받아 적으면 책 한 권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알찬 강연이어서 한 편에 다 담지 못했다. 다음 편에 물리학자 김상욱 박사와 유튜버 김겨울이 관객과 나눈 대담을 담으며 국제도서전 탐방기를 마무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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