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사법 등 국가폭력 잔재 일상에 깊게 스며들어"
"행정・사법 등 국가폭력 잔재 일상에 깊게 스며들어"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9.10.30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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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최자영 부산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 공동대표-1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서양 문명의 전통은 크게 세 가지를 든다. 헬레니즘, 헤브라이즘, 게르마니즘이다. 헬레니즘은 자유시민의 고대 그리스 문화, 헬레니즘은 흔히 철학적인 ‘이성과 논리’(Reason and Logic)‘로 상징되지만, 그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인간의 감정에 굳게 뿌리를 둔 자유이다. 헤브라이즘은 예수를 비롯한 유대 히브리 예언자들의 ‘사랑과 정의’(Love and Justice), 게르마니즘은 유럽 게르만 인들의 공동체주의에 바탕을 둔다. 정주하는 대신 이동성이 강했던 초기 게르만 사회는 일종의 토지공개념으로 토지에 대한 사유개념이 발달하지 않았다.

 

최자영 부산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 공동대표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이 같은 자유, 사랑과 정의, 공동체성의 원칙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현대사에서 식민지배와 독재정권의 비밀경찰, 군부 등 국가폭력에 의해 자유시민의 권리는 짓밟히고 억압당했다. 더 심각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국가폭력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정부 행정부나 사법부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 깊게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국가의 폭력의 역사는 멀게는 로마 제국으로까지 소급해갈 수 있다. 말하자면, 근대국가의 기원은 군국주의에 기반 하여 정복과 억압의 역사를 상징하는 로마제국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뿐 아니라 4세기 기독교와 결합한 기독교 로마제국은 거대 국가 관료제도(hierarchy)의 원형이기도 하다.

최자영 부산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부미사) 공동대표가 시민운동가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모친이 병원에서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한 가운데 사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원인으로 죽어가고 있을 때 병원에서는 악화의 원인이 말기 암 때문인 것으로 간주하고는 진료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원인을 밝히고 생존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했다고 최 대표는 말한다. 그 후 모친의 변사를 두고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경찰과 검찰의 문을 두드렸던 최 대표의 숱한 노력은 번번이 불기소처분됐다. 그는 이를 잘못된 법조계 현실과 의료계의 무책임이라 생각하며 이에 대해 심한 좌절과 회의를 느꼈다.

최 대표는 그리스에 유학하여 고대 그리스 민주 정치사를 전공했다. 돌아온 후 한국의 현실과 부딪히면서 그리스와 한국의 비민주적인 관행이 틀려도 너무 틀리다는 점을 체험적으로 깨달았다. 그리스의 역사고고학 박사이며 의학박사 학위를 가진 그녀가 한국사회 사법제도의 허점과 비리, 의료제도의 결함과 그 개선에 뜻을 두는 것은 이런 사정이 깔려 있다.

최 대표는 검사와 판사 조직의 집단적 횡포에 의한 사법피해자뿐 아니라, 한국의료계의 적폐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도 깊게 알게 됐다. 의사들에 의한 의료정보 은폐관행, 과잉진료로 인한 의료사고 피해자들을 양산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리스 의학연구사 의학박사인 최 대표는 미진한 의료관행을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법조계가 특정 이익집단과 결탁하고 하나의 폐쇄적 카르텔을 형성하는 우리사회의 편향된 권력의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의학박사 학위공부는 이전부터 시작했다가 모친 사건 때문에 도중에 학업을 중단했지만, 의료비리 현실을 목도한 후 다시 학업을 계속, 무려 15년 만에 학위를 따게 된 최 대표는 “굴곡의 역사가 앗아간 시민 민중의 권리를 찾기 위해 위정자에게 편중된 권력을 척결하고, 주권자 민중이 정치적 발언권을 찾아야 한다.

공권력의 오용 남용이 주로 사법 권력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인데도, 우리나라는 헌법재판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재판소원 및 청원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했어야 할 최소한의 마지막 견제 장치조차 동결함으로써 사법 권력의 부패와 방종이 우리사회를 병들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잘못된 의료계의 태만으로 사랑하는 모친을 손도 못써보고 허황하게 잃어야 했고, 사인을 밝히려는 과정에서 ‘부당한 공권력’과 부딪쳐온 최자영 공동대표를 만났다. 해방 이후부터 이어져 온 사법계의 비리와 함께 의료계가 가진 문제점들을 짚어본다.

의료 관련에서는 유럽과 독일의 의료인 책임보험제도, 일반인의 의료정보 구득의 권리, 의료사고에 대한 입증책임 문제와 의사윤리강령에서 나타나는 차이점 등을 알아본다. 3회에 걸쳐 게재한다.

 

- 모친 사망과 함께 법조계와 의료계의 무책임에 심한 좌절을 겪었는데, 그 과정에서 느낀 의료계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말한다면.

▲ 무엇보다 의료인의 집단적 ‘침묵과 공모’로 인한 의료정보 은폐관행을 타파해야 한다. 또 전문가도 아닌 환자에게 입증책임을 전가하는 현행법을 고쳐서 진료한 당사자 전문 의료인이 입증책임을 지도록 법을 바꿔야 맞다.

의료선진국 독일이나 유럽처럼 의료인이 책임보험을 들도록 보건당국이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그것이 환자뿐 아니라 의사들이 사는 길이다. 사고, 실수는 언제나 일어난다. 자동차 책임보험제도를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실수가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의사들이 거짓 위선을 하는 것이다.

책임보험을 통해서 사고 실수에 대한 처리를 제도화하고, 의사들은 실수의 위험과 손해배상에 대한 강박관념과 억지로 하는 거짓말에서 해방되어야만 한다. 있었던 일을 없는 것처럼 거짓말하고 사는 것도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 국가와 사회를 움직이는 근간이 헌법(憲法)이다. 그러나 우리의 법체계는 일제 식민시대 법, 거기다 독재시대의 법과 관행까지 여전히 남아있다. 비민주적 법과 악습이 전래되어 오면서 사회 곳곳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또 국민기본권을 훼손하는 재판정보 비공개 관행도 여전하다.

▲ 헌법 제 21조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를 명시하고 있지만, 현재 법원은 물론 각급 행정기관 등에서 정보공개를 오히려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공개하지 않는 이유도 ‘불필요한 분쟁 회피’나 ‘재판 중인 사건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당화한다.

뭐가 ‘불필요’하고 뭐가 ‘부정적’인 것인지가 고무줄 잣대로 그 기준부터가 모호하고, 이런 모호한 명분으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받을 여지가 많다. 정보비공개는 법원의 자의적인 판결가능성과 책임회피 등 공공연한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수사나 재판의 공정성 확보가 어렵다. 공정성보다는 오히려 수사나 재판이 끝없이 이어져 사회적 비용이 초래될 것을 더 두려워한다. 공정하지 못하고 빠르기만 한 수사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 비민주적 인권침해도 심각한데.

▲ 식민주의와 봉건적 권위주의는 한국의 경찰과 검찰 내부에도 잔재가 여전하다. 경찰만 해도 범죄예방을 위해 조직과 예산을 늘려야 하지만 인력을 무한히 늘리기도 어렵다. 대안은 시민경찰 제도를 두어 권력을 분산해서 시민과 경찰이 서로 협조하는 데 있다.

봉건적 권위주의로 인해 한국경찰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서도 해결할 것같이 허세를 부린다. 시민은 시민 나름대로 경찰이 다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바로 이런 미련함 때문에 경찰의 권위주위에 속거나, 알면서도 애써 묵인하고 산다.

시민 민주사회는 권력에 맹종하는 봉건적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스스로 정당방위를 행사할 수 있을 때 도래한다. 정당한 행동권, 즉 정당방위가 사회적 제도로 인정될 때, 경찰인력부족에 따른 문제도 해결이 가능해진다.

 

- 부실한 ‘법 시스템’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원인이 무엇인가.

▲ 한국은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우리 근-현대사에서 올바른 민주시민의식이 싹트지 못했고, 역대 독재정권들에 의해 음양으로 저해 받았다. 한국인에게 뿌리 깊게 남은 봉건적 권위주의 타성도 문제다.

일본식민지와 해방 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 유신독재를 거치면서 국가조직폭력에 의한 인권침해와 관료주의 권력적폐가 아직도 남아 있다. 또한 1948년 8월24일 미군이 남한점령군으로 들어와 무단통치에 들어가면서, 노동조합과 농민조합, 민중운동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미군의 이런 정책은 혁명적 변동을 억제했고, 자본주의 체제로서의 미군정체제를 굳혀갔다. 모든 산업체는 미군정 재산관리처 관리로 넘어갔고,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일본인 소유의 토지는 신한공사가 관리했다. 그러면서 농민들은 다시 신한공사의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 민중에 대한 국가폭력도 많았다.

▲ 조선은행 등 금융자본도 미군정에 귀속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민중세력과 미군정 간에 유혈충돌이 벌어졌다. 전국적으로 민중봉기가 일어났지만, 미군정은 강력한 물리적 힘으로 민중조직을 완전히 해체시켰다.

미군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일제치하 당시의 행정기구와 경찰기구를 다시 부활시켰다. 사실상 과거 일본제국주의에 부역했던 관리들과 자본주의체제 수립에 예속적으로 충성한 파시즘 경찰의 민중억압 관행들이 재현된 것이다. 해방 후 정부가 수립될 당시에도 한국 민중들의 민주적 의식이 전혀 없었던 게 아니다.

단지 현실적으로 조직적인 국가폭력 앞에서 민중의 힘이 너무 무력했기 때문에 와해된 것이다. 국가에 의해 민중세력이 무너지면서 그나마 가지고 있던 의식마저 타성에 젖게 되었다. 수동적이고 무감각함이 지금까지 내려왔다. <2회로 이어집니다.>

 

 

▲ 최자영 부산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 공동대표
    경북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경북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서양사 석사 / 사학과 박사
    1987~1991?그리스 이와니나(Ioannina) 대학교 역사고고학(박사)
    2004~2017?그리스 이와이나 대학교 의학(박사)
    2007~2010 한국외국어대학교 그리스?불가리아어학과 강사?
    2007~2010 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2010~2017 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지역원 부교수
    2016~2017 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회장
    현 ATINER(아테네교육연구소) 역사학부장
    현 한국 그리스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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