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최자영 부산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 공동대표-3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최자영 부산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 공동대표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 의료인 책임보험은 없는지.

▲ 우리나라 의사는 의료정보개방을 매우 꺼려한다. 예상 가능한 의료손실 부담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책임보험 가입률이 저조하기도 하지만, 가입했어도 실제상황에 맞게끔 보험이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의사와 환자 간에 공정한 중재가 이뤄지기 어렵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의료지식이 여과 없이 소비자에게 개방될 경우, 의료인과 의료소비자 간 분쟁이 급증할 것이고, 의료인에게 지워질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책임보험제도의 안전장치가 망가진 한국의 의료계는 당연히 조정중재원 감정결과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중재원 소견에 따라 보상, 혹은 배상금액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인 책임보험은 그에 대한 책임보상을 보험회사로 전가해 의료분쟁 시 초래될 의료인의 시간적 경제적 손실을 덜어 줄 수 있다.

 

- 우리사회 고소사건이 이웃한 일본보다 월등하게 많다. 왜 그런가.

▲ 한국은 2018년 기준으로 최근 6년간 전체 사건 중 고소고발 비중이 39%에 달한다. 이는 고소고발로 인한 불만과 함께 피해자도 그만큼 많다는 것을 뜻한다.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기소율과 함께 ‘불필요한 분쟁’을 줄이려는 검찰과 법원의 관행 때문에 부당한 수사, 재판이 양산되기 때문이다.

2004~2009년 고소가 60만 명을 넘었고, 2016년까지 50만 명대에서 증감을 반복해 왔다. 일본에 비해 고소사건이 턱없이 높다. 일본은 2014년 해결된 사건을 기준으로 9180건에 불과하다. 고소고발도 한 해에 1만 건을 넘지 않고, 3천 건 이하다. 미해결 사건을 포함해도 1만5000건에도 못 미친다. 연간 8500명 당 1건 정도라는 계산이다.

 

- 일본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고소가 된다는데.

▲ 일본 경찰 또는 수사당국은 형사 범죄가 구성되지 않는 사안이나 미미한 사기, 횡령, 일반경제사범 등은 우리처럼 마구잡이로 접수하지 않는다. 고소고발 건에 대해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치게 하고 있다. 따라서 3분의 2 가량이 반려되거나 자진철회 하도록 유도한다.

일반인이 고소고발을 하려면, 그전에 반드시 변호사 상담을 하거나 각종 법적중재를 통해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도 사기나 횡령, 경제사범에 대해 고소하겠다면, 피해자 측이 기소가 가능한 증거를 확보해서 수사당국을 납득시킬 경우에만 접수한다.

말하자면, 국가수사기관도 수사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먼저 민사적으로 해결이 가능한 사건들을 1차적으로 개인 간 조정에 맡긴다. 그러면서 국가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은 형사사건에 집중하는 것이다.

 

- 부실한 법과 수사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는 현실은.

▲ 공정한 재판보다는 ‘불필요한 분쟁’을 줄이려는 재판관행이 범죄를 부추긴다. 피해자 입장은 무시되고 억울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고소도 늘어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불필요한 분쟁’ 개념이 법률의 예방적 기능을 저해시키고 있다. 부족한 인원과 공권력도 문제지만, 부실한 수사와 재판이 악순환되는 구조다. 원천적으로 한국의 고질병인 사법적폐를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

 

- 공권력의 적폐 관행도 여전한데.

▲ 한국이 고소고발이 많은 이유가 부실한 수사와 검찰의 잘못된 관행 때문인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민-형사를 가리지 않고, 사건을 은폐축소하거나 불기소하는 경향이 사법부에 구조적으로 작동된다.

여기에는 국민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설치한 민간조직도 허용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그렇다고 당국이 사건처리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권력만 꼭 쥐고 있다.

수사도 입맛에 맞게 선별하고 사건을 축소하다 보니 자연히 부실수사와 부실한 재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법률의 예방적 기능도 적다. 일본처럼 스스로 해결할 기회도 적은데다 불안정한 사회적 구조 때문에 범죄발생도 높다.

한국사회의 자유와 평등, 정의, 소통 등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은 시민의 자유와 창조적 기풍이다. 하지만 국가조직이 원천적으로 인권침해를 해왔고, 공무원의 공권력 남-오용이 심각하다. 감시하고 제거하는 것부터 쇄신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 허울뿐인 제도가 ‘사법 적폐’를 양산한다.

▲ 대한민국은 1945년 8월에 갑작스레 해방을 맞으면서 갑자기 근대국가로 출발하다 보니 사회적으로 경황없이 일본이나 독일, 영미법 본 따 급조해서 만든 헌법이 문제다. 그렇다고 외국의 법제도가 온전하게 받아들여진 것도 아니다.

중간에 변질되고 한국의 오래된 관습과 풍토에 맞게 채색돼 버렸다. 자유민주주의 역사가 짧고 일본식민지 지배와 관료, 독재정권에 입맛에 맞게 다듬어졌다. 오랜 기간동안 모두가 그런 전통에 물들어 버렸다.

통치자는 독선을 하고, 피치자는 관성적으로 순종해온 풍토다. 그런 변질은 사법부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의 시민배심제도와 헌법재판소는 다 허울만 갖추었을 뿐 내용이 부실하다. 시민배심제는 영미법 영향을 받아 만든 것인데 배심원이 유무죄를 판단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 그냥 자문관에 불과하다. 재판관은 참고만 할 뿐이다. 이들은 시민에게 사법 권력을 나누는데 익숙하지도 않고 독선적 관료주의만 있을 뿐이다.

 

- 독일을 본 따 만든 한국의 헌법재판소 어떻게 다른가.

▲ 헌법재판소(헌재)는 1987년 헌법에 의해 만들어진 기관이지만, 공권력 견제의 기능을 근원적으로 포기하고 있다.

1987년 헌법이 그 이전의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부독재 때보다는 민주화된 법이겠지만, 그것은 단지 상대적일 뿐이다. 36년 식민지배와 독재로 얼룩졌던 우리사회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민주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친일과 독재에 협조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있고, 여야 정당도 기존의 틀을 바꾸지 않았다. 민주세력을 위협하던 국가의 인적조직들은 타격받지 않았고 그대로 유보돼 왔다. 이것이 알게 모르게 1987년 헌법이나 하위 법률제정에 영향을 미쳤다.

이런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한국의 헌재는 독일의 헌재를 모델로 해서 태동했다. 그런데 한국의 헌재는 이름만 같을 뿐, 조직과 기능이 독일과 아주 다르다. 때문에 완전히 독일을 모방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 기능과 역할에 대해 말해 달라.

▲ 독일 헌재는 전문분야별로 기능이 나누어져 있지만, 한국은 한 곳에 합쳐져 있다. 9명의 재판관이 전권을 쥔 채 심리를 하는데 마치 9명의 독재판관 같다. 독일의 헌재가 다루는 현안의 95%는 헌법소원인데, 대부분이 재판소원이다.

일반법원에서 이뤄지는 부실한 재판을 감독하고 사법적폐를 없애는데 공헌을 한다. 한국은 정반대다. 애초부터 하위법인 헌재를 통한 재판소원을 법으로 금지했다. 한국은 처음부터 법률을 수호할 의사가 없었음을 증명한 꼴이다. 2007년에는 재정사건도 배제됐다.

이는 검찰의 부당한 불기소처분에 대한 제어장치마저 사라져 버리는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 독일은 잘못된 재판을 내린 법관을 징벌할 수 있는 제도가 있지만, 한국은 법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헌재뿐 아니라 일반재판도 마찬가지다.

 

- 헌재가 삼권분립을 초월한 초법기관이라는 말인데.

▲ 헌재의 기능이 제4의 행정-사법기관으로서 사법부 3심제와 충돌이 된다는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고, 독립기관인 헌재가 구조적으로 삼권분립을 벗어나 절대적 권위에 군림했다는 점이다. 또 헌법재판관을 국회 위에 올려놓거나 그에 필적한 권위를 부여한 것도 국회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9명의 헌법재판관과 관료의 결정은 다수의 토론장인 국회와 차이가 있다. 국회 입법은 토론과 숙의 과정을 거치지만, 헌재 결정과는 다르다. 9명 관료에 의한 결정은 자의적이고 독재적인 판단의 위험성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 사법권력 분산이 필요한 시점이다.

▲ 1987년 헌법은 이렇듯 사법부를 초헌법적 존재로 만듦으로써 30년간 사법적폐를 양산하는데 기여했다. 적폐의 중심은 태풍의 눈 같은 헌재다. 사법부뿐 아니라 정부기관 구석구석 양심을 외면한 좀도둑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1987년 헌법이 독재종식을 했다면, 다음에 이뤄져야 할 개헌은 ‘좀도둑 감시’다. 사법적폐 척결을 하려면 무엇보다 중앙집권적이고 획일적인 사법구조를 바꿔야 한다. 한 사람의 명령 하나로 움직이는 관료조직을 타파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대법관 임명방법만 바꿀게 아니라 사법부 자체의 권력구조를 지방단위로 분권화하고, 시민이 법관 임명에 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시민이 사법재판에 배심원으로 임석해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개헌은 시작되어야 한다.

 

ⓒ위클리서울/ 이주리 기자

- 해방 이후 국가공권력의 인권압살 관행이 70년을 넘었다. 정부와 국민, 단체 등에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남겨 달라.

▲ 민중정치 참여가 대의제보다 비용이 더 들고 번거롭게 생각하는 이가 있다. 그러나 비용문제는 차치하고 민중의 직접 정치참여는 불가피하다. 공익순서에서 사적인 것은 무시되고, 정부가 모든 국민을 보호하지 못해도 불법이 아닌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많은 국민이 어마어마한 공권력의 공백에 대해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과 사, 큰 것과 작은 것을 구분하고 사적인 것, 작은 것을 무시하는 것은 권위주의의 망상이다. 이런 권위주의는 한국의 의료계에도 같이 적용되어 왔다.

촛불시위가 남다른 것은 정치를 위정자들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치게 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민중의 뜻을 외면한다.’는 불평은 여전히 수동적인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뜻한다.

한 번의 거사로 개혁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또 촛불혁명이 구체적인 변화와 방향을 제시한 것도 아니다. 정부권력 감시자는 주권자인 민중이어야 한다. 감시를 멈추는 순간 주권은 상실 당한다. 빼앗긴 국민개헌 발언권을 확보하고 그런 평화의 촛불이 지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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