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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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순 감독의 '지록위마' 포스터 ⓒ위클리서울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내가 스스로 찾아가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시사회 초대를 받았기에, 그리고 별다른 약속이 없었기에 응했다. 이 말은 가지 않고, 보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해도 내 삶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화관 입구에서 내 이름이 적힌 좌석표를 받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불 꺼진 방에 검은 안대를 쓰고 내가 앉아 있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온다. 무엇이 알고 싶어 이곳에 오셨나요? 나는 질문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제가 꼭 무언가를 알아야 하나요? 라고 되묻는다. 그렇다면 왜 이곳에 앉아 있나요? 뭔가 찜찜해서요. 그게 뭔지 찾지 못하고 돌아갈 수도 있지만 그건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시의 침묵. 누군가 내 눈에서 검은 안대를 벗긴다. 그리고 영화는 시작된다(영화가 시작되기 전 이런 느낌으로 앉아 있었다).

경순 감독이 만든 이 영화의 제목은 ‘지록위마(指鹿爲馬)’. 중국 옛 진나라 시절 실권을 장악한 환관 조고가 황제와 조정 신하들 앞에서 사슴을 말이라 우긴다. 그런 다음, 자기 말에 토를 단 사람들을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온 이 영화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일까?

2013년 8월 28일 새벽. 국가정보원들이 압수수색하기 위해 누군가의 집에 들이 닥친다. 이유인즉슨, 국회의원 이석기가 내란을 음모했다는 거다. 은밀한 조직을 결성해서 북한을 칭송하고 현 정권을 내리 깐 다음 뒤집어엎으려고 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했다. 쿠데타 모의 현장에 있던 누군가가 영민하게 녹음을 했고 그 녹취록이 너무 길었던 나머지 군데군데 떼어내고 갖다 부치긴 했지만 틀림없는 증거자료라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이석기 의원이 몸담고 있던 통합진보당은 하루아침에 박살이 나버렸고 6명의 현직 국회의원이 자격을 박탈당했다.

 

경순 감독의 '지록위마'
경순 감독의 '지록위마' 포스터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이렇다. 강연을 했다. 누가? 이석기 전 의원이. 그런데 뭐가 나왔다? 녹취록이 나왔다. 녹취록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다? 나라를 뒤집어엎어야 된다는 이석기 전 의원의 결의와 다짐이 낱낱이 녹음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됐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재판이 열리고 핵심 인물로 몰린 사람들은 죄인으로 수감된다. 그런 다음 진보정당 하나가 박살이 났고 언론은 이런 사실을 실시간으로 부지런히 퍼다 날랐다. 사건의 기승전결도 없이 증거자료라고는 딸랑 녹취록 하나를 가지고, 그것도 어디서 잘리고 어디다 갖다 붙여진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순식간에 정당 하나가 풍비박산이 나버린 거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묻고 싶어질 것이다. Why?

진보당에서는 그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을 폭넓게 조사하고 있었다. 그로인해 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심각한 불신이 퍼져나가고 있을 때였다. 뭔가 관심을 딴 데로 돌리지 않으면 박근혜 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 그가 나타났다.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 그리고 앞서 말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27일 밤늦게까지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집으로 돌아와 잠이든 진보당원들의 집에 28일 새벽, 국정원들이 압수수색을 하겠다며 느닷없이 들이닥친 것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좀… 어디서 본 것 같은 상황이다. 영화 ‘변호인’의 배경이 됐던 사건. 우연인지 몰라도 2013년, 그러니까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이 일어난 같은 해에 ‘변호인’이 개봉됐다. 여기에 나오는 국밥집 아들 진우는 친구들과 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데모도 하며 그 시대에 한번쯤 읽고 토론할만한 책들을 보았다는 이유로 잡혀 들어간다. 불온서적을 읽고 공산주의 혁명을 꾀했다는 게 이유였다.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이미 위에서 모든 프레임을 짜놓고 하는 재판을 이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근대사에 뻐젓이 일어난 공안기획사건이었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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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댓글 사건으로 궁지에 몰렸고 그 때에 맞춰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터지고 녹취록이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어진 종북몰이 사건에 대해. 녹취록에 대한 언론의 왜곡 보도와 인간 이석기에 대해 여기저기서 근거 없이 터져 나오는 ‘카더라 뉴스’에 대해 누군가는 의문을 제기하고 나서야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힘을 합쳐 맞서 싸워야 될 사람들까지 등을 돌렸다.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건의 실체가 말이 아닌 사슴이라고 딱 잘라 말하진 않는다. 단지 질문을 던져 놓는다. 우리가 과연 이 사건에서 보지 못했고 보려 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이냐고.

지난 해. 불교인권위원회는 이석기 전 의원에게 <불교인권상>을 수여했다. 내란음모 사건으로 내몰린 죄인에게 말이다. 수상 발표에서 그들은 “이석기 전 의원 수상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에서는 모든 양심수들이 석방되길 바란다”고 발표했다. 그들이 우리 모두에게 던져놓은 화두인 셈이다. 촛불로 정권이 바뀐 지금도, 그리고 우리가 바꿔나가야 할 것들과 싸우고 있는 오늘까지도, 이석기라는 이름은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비껴나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언론이 국민에게 퍼 나른 뉴스들은, 마치 눈을 가리고 수술을 하겠다고 덤비는 의사를 보고 있는 느낌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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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 앉아 검은 안대를 벗고 다큐 영화 한 편을 보았을 뿐이다. 친절하지 않았다. 쉽게 풀어 말해주지도 않았다. 재미도 없었다. 극적인 효과나 반전 같은 건 아예 없었다. 감정에 호소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냥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 하고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하다가 스스로 자기 말이 꼬여서 당혹해 한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계속 자기 검열을 하느라 말을 멈추고 국가 보안법에 대해 말하다가 목이 멘다. 촛불 집회에서 조차 그들이 사람들에게 받았던 설움을 담담하게 이야기 하고 그냥 그러다 영화는 끝이 났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느꼈느냐고?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나는 시 한 편이 있었다. 그래서 이 시로 내 마음을 대변하려 한다.

나는 내 자신을 깊이 경멸하노라 /니콜라이 네크라소프 
 
나는 내 자신을 깊이 경멸하노라 
하루 또 하루를 소용없이 헛되이 살기에
 
어떤 일에서도 힘을 시험해 보지 않고 
제 스스로를 무자비하게 단죄하였기에 
 
'나는 보잘것없는 자, 약한 자'하고 게으르게 곱씹으면서 
평생을 공손히 노예같이 굴었기에 
 
이럭저럭 서른 번째 봄까지 살아오면서 
이렇다 하게 돈도 모으지 못하였기에
 
어리석은 자들이 내 앞에 굽실거리고 
약은 자들도 때로 부러워하게 살지 못하였기에! 
 
나는 내 자신을 깊이 경멸하노라.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고 일생을 보냈기에 
 
사랑하고 싶으면서… 온 세상을 사랑하면서 
의지할 곳도 없이 사람들을 등지고 헤매이기에 
 
가슴에 맺힌 악의가 크고 사나움에도 
칼을 들면 손에서 맥이 풀리기에! 

##네크라소프(1821~1878)는 유시민의 <항소 이유서> 말미에 인용한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유명한 시구를 남긴 러시아의 시인이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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