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인천・대구 등에서 카슈미르데이 맞아 연대조직 결성 항의 시위

대구 시위에 참가한  파키스탄인과 카슈미르 동포들
대구 시위에 참가한 파키스탄인과 카슈미르 동포들 ⓒ위클리서울/ 섬문화연구소 박상건 소장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한국에 거주하는 파키스탄인과 카슈미르 디아스포라(국외 이주동포)는 서울, 인천, 대구에서 지난 5일 카슈미르데이를 기해 연대하여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아들 연대조직의 시위자들은 “지난 30년 동안 인도 점령군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카슈미르 사람들에게 저질러진 잔혹성과 잔인성을 널리 알리고자 길거리로 나섰다”고 말했다.

“Koreans, Pakistanis and Kashmiris Protest in Seoul against Indian brutalities in Kashmir.”

이들은 인도헌법 제370조와 제35A의 폐지, 약 6개월 동안 카슈미르 계곡의 폐쇄, 학교에 있는 아동들과 청소년들, 그리고 지도자들을 포함한 수천 명의 카슈미르인 체포 사실을 알리는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인도 점령군에 의한 살인, 강간, 실종 그리고 카슈미르 인구통계를 변경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장재현 한국-파키스탄 우호협회 화장(왼쪽 두번째이 “파키스탄과 카시미르는 친구”라는 ~
장재현 한국-파키스탄 우호협회 화장(왼쪽 두번째) ⓒ위클리서울/ 섬문화연구소 박상건 소장

이날 시위 참가자들은 ‘카슈미르의 자유’, ‘카슈미르의 통금시간 해제’, ‘카슈미르는 카슈미르의 일부가 될 것’ 등의 구호를 외쳤다. 장재현 한국-파키스탄 우호협회 회장도 ‘파키스탄과 카슈미르는 친구’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에 동참했다.

장재현 회장은 “한국인들은 어떠한 폭력도 단호히 거부한다”면서 “카슈미르의 평화와 파키스탄과의 우호협력을 적극 지지한다”라고 말했다.

카슈미르는 인도와 중국, 파키스탄 경계에 있는 산악지대이다. 1846년부터 힌두교 정권이 이곳을 지배했지만, 다수의 주민들은 이슬람교도였다. 1947년 영국이 인도에서 철수할 때 인도반도는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로 분리 독립했다.

 

카슈미르 데이를 맞아 시위에 나선 파키스탄인과 카슈미르 동포들
카슈미르 데이를 맞아 시위에 나선 파키스탄인과 카슈미르 동포들 ⓒ위클리서울/ 섬문화연구소 박상건 소장

이때 카슈미르는 대부분 주민이 이슬람교도라서 파키스탄에 편입을 바랐지만 카슈미르의 지도자 하리 싱은 자신이 힌두교도였던 이유로 주민 여론과는 반대로 인도로 편입을 결정했다. 이에 카슈미르 이슬람교도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하리 싱이 인도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벌어졌고 1965년, 1971년까지 총 세 차례 양국 간 전쟁이 벌어졌다.

1949년 유엔은 휴전을 선언했고, 카슈미르는 북부는 아자드카슈미르로 파키스탄령, 남부는 잠무카슈미르로 인도령으로 분할됐다. 이런 상황에서 1962년 중국이 카슈미르 동쪽을 침공해 아크사이친 지역을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 현재 카슈미르는 파키스탄령, 인도령, 중국령 3곳으로 갈라져 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