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환상에 과연 폭포가 부응해줄까?
그 환상에 과연 폭포가 부응해줄까?
  • 강진수 기자
  • 승인 2020.02.28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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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미여행기-서른세 번째 이야기 / 강진수

[위클리서울=강진수 기자]

ⓒ위클리서울/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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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하는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한참동안 흔들렸다. 꽤나 심하게 흔들린 탓에 승객들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비행기의 격한 진동은 착륙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몇 번의 위태로운 순간들 끝에 성공적으로 착륙하자 기내 안 모든 사람들은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치며 옆의 다른 승객들과 껴안고 인사를 나눴다. ‘좋은 공기’라는 뜻의 도시에서 시작하는 첫 걸음이 이색적이면서도 유의미했다. 일단 비행기는 전혀 ‘좋지 않은 공기’ 속에서 헤매다 도시에 닿았고, 우리는 삶의 위태로움 속에서 헤어 나와 다시 여행을 이어가게 되지 않았는가. 얼마 남지 않은 남미에서의 여정이지만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괜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푸에르토 이과수를 보러 가기 위한 경유지로 정했다. 엘 칼라파테에서 출발해서 이과수로 바로 가는 비행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수십 시간이 넘게 걸리는 버스를 다시 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고 그곳에서 10시간 가까이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했다. 아르헨티나의 남쪽 끝과 북쪽 끝을 가로지르는 동선이었기에 시간 조절이 매우 중요했다. 자칫 잘못하면 이동하는 데에만 얼마 남지 않은 여행 기간을 쏟아 붓는 낭패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도시를 둘러볼 겨를도 없이 바로 버스 터미널로 가서 이과수로 가는 표를 끊었다. 여러 버스 회사 부스들을 떠돌며 하나하나 가격을 비교하고 흥정해야했기에 마음은 더욱 급했으나, 그래도 서두른 탓에 2시간 안에 이과수 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위클리서울/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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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지겹다 못해 징그럽기까지 한 버스를 타고 잠에 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이과수 폭포를 보고 다시 돌아올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풍경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도시에게 잠깐 기다려 달라고 인사를 건넸다. 차창 밖에는 금세 고층 건물들이 사라지더니, 정글처럼 우거진 숲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몇 시간 자고 일어나도 버스는 커다란 나무들 사이를 지나치고 있었다. 점점 이과수에 닿아갈수록 밀림은 더 짙어졌다. 아마존의 문턱에 자리한 이과수 폭포를 상상하면서 자꾸 잠을 청했던 것 같다. 영화 ‘미션’에서나 보던 그 미지의 세계를 곧 마주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인지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마침내 푸에르토 이과수라는 이과수 폭포 바로 근처의 마을에 도착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 잠시 있을 때 겨우 와이파이를 사용해서 급하게 예약했던 숙소가 있어 그곳을 찾아갔다. 그런데 정작 가보니 예약이 전혀 잘못 되어 있었다. 날짜가 엉터리로 예약되어 있었던 것이다. 식은땀을 흘리며 당장 잘 곳이 없다 했으나 그 호스텔 주인은 아쉽게도 방이 만석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그 주인이 우리 예약을 취소해주고 전액을 환불해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호스텔에 연락을 해놓을 테니 그곳에서 일박을 하라고 권해주었다. 선택권이 없던 우리는 그 주인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당장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곳도 없어 새로 어딘가에 예약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위클리서울/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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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작아 주인이 그려준 지도만 보고도 호스텔을 찾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습하고 무더운 날씨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길을 헤맨다는 것이 어떻게 쉬운 일일까. 호스텔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우리 등이 시커멓게 땀으로 젖어있었다. 드는 생각이라곤 어떻게든 빨리 체크인을 해서 바로 샤워를 해야겠다는 것뿐이었다. 안내 받은 호스텔은 생각보다 많이 열악하고 오래된 곳이었다. 개인실을 쓰기로 해서 방을 구경 갔는데 약간 지저분한데다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딱 일박만 버티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다행히 푸에르토 이과수에서 사흘 밤을 머물 것이어서 하루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꿈에 그리던 샤워를 얼른 하고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버스 터미널로 돌아갔다. 다음날 이과수 폭포로 가는 버스를 예약해야했기 때문이다. 이과수 폭포는 국립공원으로 잘 가꿔져 있는데 그 입장료가 따로 있었다. 또한 입장해서 보트 투어를 한다거나 추가적으로 다른 액티비티를 할 수 있는데 그 비용을 따로 결제해야 했다. 이런 식이다보니 이과수 폭포는 약간 유원지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아침 일찍 가서 폐장 때까지 있는 것이 이과수를 보는 ‘예의’인 셈이다. 그래서 버스 예약을 사흘째 날로 하고 숙소에 돌아왔다.

밤이 되자 숙소의 낡은 벽면에서는 모기들이 날아들었다. 파타고니아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었던 모기들에게 고통 받아야 한다니. 단 하룻밤만, 이라며 이를 앙다물고 방 곳곳에 살충제를 뿌리고 잠에 들었다. 모기 소리에 다시 잠이 깨고 또 잠들기를 형과 나는 반복했다. 열대우림의 날씨와 끔찍한 모기 군단. 푸에르토 이과수의 첫인상이 이토록 악독했지만 그걸 견뎌내게 만드는 것은 폭포에 가진 우리의 환상이었다. 그 환상에 과연 폭포가 부응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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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를 끝내자마자 우리는 새로 예약한 숙소로 짐을 옮겼다. 지옥 같은 모기 굴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새로 가는 곳은 저렴한 가격에 개인 집을 빌리는 곳이었다. 이전 숙소에서 겨우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새 숙소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상으로 좋았다. 아파트 내부의 방 하나를 빌리는 것인 줄 알았는데, 2층짜리 아파트를 그냥 한꺼번에 쓰라고 주인이 키를 내어준 것이었다. 침실만 두 개, 화장실도 두 개, 널찍한 부엌과 소파가 딸린 거실까지. 하룻밤 고생한 보람이 이곳에서 생기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부엌에는 온갖 가재도구들이 갖춰져 있어 음식을 해먹을 수도 있었다. 매번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도 여행 예산에 있어 조금 빠듯했는데 다행스러웠다.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 고기도 구워먹으며 하루를 그 전 하루와는 전혀 달리 완벽하게 보냈다. 편안하게 휴가를 즐기는 것처럼. 남미 여행의 막바지에 와서야 이런 행운이 우리에게도 오는구나, 라며 우리는 그동안의 발자국들을 곱씹었다. 여태 서둘러야만 하는 일정과 넉넉하지 않은 예산에 쫓겨 우리가 어디서 뭘 보고 뭘 했는지 돌이켜볼 겨를이 전혀 없었다. 정작 시간이 주어지고 지나간 때를 회상하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순간들에 있어 서로에게 무심했고 어리석었으며 이기적이었는지를 느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끼리 떠나온 여행이었기에, 더 조급하고 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깝다는 이유로 눈이 가려져 서로를 헤아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여행의 끄트머리가 희미하게 보이고 나서야 그런 후회들과 아쉬움으로 가득 차는 우리의 마음은 무얼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밤늦게 숙소 바깥 길가로 나오자 하얗게 뜬 별들이 우리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말하지 못했던 그간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그 별무리가 대신하고 있는 것 같아, 그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형에게 같이 와줘서 참 고맙다고 말을 건넸다. 우리는 여기까지 온 서로에게 감사하며 마지막으로 가장 기대하는 여행지인 이과수와의 만남을 담담히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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