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세대, 퀴어문화 일찍 접해 ‘인권차별 나빠’ 인식 당연”
“웹툰 세대, 퀴어문화 일찍 접해 ‘인권차별 나빠’ 인식 당연”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20.03.31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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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2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1회에서 이어집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위클리서울/ 김지학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위클리서울/ 김지학

- 아직도 군대, 국가, 가정을 파괴하는 “반사회적 집단”으로 매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 1997년 동성동본 혼인 금지가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면서 동성동본인 사람들도 결혼을 할 수 있게 됐는데 이때도 ‘동성동본이 혼인하게 되면 오누이가 결혼하게 된다’,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가 무너진다’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다른 인종과 결혼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있었다. 백인과 흑인의 결혼을 막으려고 한 법이었다. 이 법을 지키려고 했던 백인들은 ‘인종 간 결혼은 공산주의다’, ‘인종 간 결혼하면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파괴된다’, ‘질서가 무너진다’ 등의 주장을 했다. 동성결혼이 전국 모든 주에서 법제화 되기 전에도 동일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동성결혼은 죄악이다’, ‘가정이 파괴된다’는 주장이 동일했다. 그러나 인종 간 결혼도 동성결혼도 가정과 사회는 파괴시키지 않았다. 국가가 무너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랑과 가족 그리고 관계의 의미를 더 깊게 생각해 보게 됐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더 풍성한 사회가 됐다.

동성결혼은 아이를 갖지 못한다며 저출산 시대에 더 큰 문제를 만들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성결혼을 한 부부들도 아이를 원하는 커플도 있고 원하지 않는 커플이 있을 수 있듯이 레즈비언이나 게이 부부도 동일하다. 아이를 키우고 싶은 커플도 있을 수 있고 그렇지 않는 커플도 있을 수 있다. 해외에서는 아이를 키우고 싶은 커플이 있다면 입양하거나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갖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이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 결혼을 했으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 등이 사회 전반에 가득하다.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과 육아는 필수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는 가족의 정의와 의미가 변해야 할 때이다. 친족이나 혈연관계로 이어져 있어야만 가족이 아니라, 서로 의지할 수 있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행복하게 살면 가족이다.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 “정상”이고 그런 형태의 가족만을 “정상적인 가족”이라고 보면 정상가족이데올로기에 도전하고 허물어야 한다. 가족 중심으로 세팅되어 있는 복지와 모든 국가행정 시스템을 한 사람 한 사람을 중심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 국가가 개인과 관계를 맺을 때 그 개인이 속해 있는 가족을 통해 관계 맺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개인의 관계가 1:1이 되어야 한다.

 

- 새로운 ‘공동체 패밀리’ 시대가 오는 건가.

▲ 우리는 가족을 생각할 때 여전히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함께 사는지 그 공동체의 성향보다 혈연중심으로 생각한다. 혈연으로 이루어 진 가족이지만 가족 구성원에게 폭력, 학대 등을 당하며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도 있고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구성원들끼리 평등하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함께 지내고 싶은 사람들끼리 행복하게 사는 환경을 만드는 게 더 인권적이고, 우리 사회를 더 풍성하게 하는 방법이다.

 

- 여전히 혈연과 족보를 따지는 사회에서 기성세대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 아직도 ‘아들은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사회니까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은 남성중심의 혈연이나 족보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 사회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나아가야 한다.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 중에도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때 ‘그러면 나는 손주를 못 보는건가?’라는 생각 때문에 상심하기도 한다고 한다. 성소수자 당사자가 본인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성소수자의 부모님들도 자신의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부모님들은 ‘손주를 원하는 것은 내 욕심이었을 뿐,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내 자녀 행복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내 자녀가 있는 모습 그대로 행복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하겠다’고 마음먹는 분들이 계시다. 그래서 부모님들 중에는 자녀들을 인정하고 지지하고 존중하는 것을 넘어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열심을 내어 활동하시는 분들도 있다.

 

- 흥미롭다. 그럼 자녀의 입장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최대 고민은 무엇인가.

▲ 최근 40-50대 부모님들 중에서 진보적이고 인권적인 분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많이 바뀌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자녀로서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부모님께 인정받지 못하면 어떡하지?’인 것 같다. 부모님께 커밍아웃(자신이 성소수자라는 것을 알리는 것)을 했다가 부모님이 이해를 해주지 못하면 각종 폭력을 경험하며 살아야 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집에서 쫓겨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만약 집에서 쫓겨나기라도 한다면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나이 때문에 매우 어렵고 위험한 상황 속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있다. 부모님의 동의가 없으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고시원 방을 구하는 것도 혼자 할 수 없다. 돈을 버는 것과 집을 구하는 것을 혼자 할 수 없으니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커밍아웃을 하는 때를 잘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청소년기에는 부모님께 알리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알린다든지 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평생 부모에게만은 알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아웃팅(다른 사람에 의해서 정체성을 공개당하는 것)을 당한다든지 시기를 스스로 정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기도 한다.

한국의 청소년 자살률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런데 한국의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자살률이 비성소수자 청소년들의 자살률에 비해서 5-6배가 높다고 한다. 한국의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이렇게 심각한 ‘자살 고위험군’에 속해 있다. 내 주변에 나 이외에는 성소수자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성소수자가 비가시화되는 사회 속에서 가정, 학교, 교회, 미디어 등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에 너무나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내가 가족, 학교, 직장, 종교기관 등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중에 성소수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 특히 부모의 자세가 중요하다. 부모가 학교나 교회, 미디어 등 밖에서 듣는 혐오표현을 일일이 막아 줄 수는 없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너를 사랑해’, ‘네 행복이 엄마 아빠에게 최우선이야’, ‘네가 어떤 사람이라도 널 지지해’라고 말 해주면 큰 버팀목이 될 수 있다.

 

- 요즘 청소년들의 동성애에 대한 관념은.

▲ 동성애도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감정이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는 청소년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얼마 전 한 조사에 따르면 70~80%의 10대들은 ‘내 친구가 동성애자여도 이전처럼 똑같이 지낸다’고 답했다. 같은 문항에 20대들은 50~60%정도가 ‘그렇다’ 답한 것에 비하면 20대와도 다르다. 30~40대는 30~40%, 50~60대가 20%, 60대 이상은 10% 미만이었다. 세대별로 올라갈수록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의 수가 내려간다. 종교기관이나 가족들에게 배운 것들 때문에 여전히 어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지금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10대와 20대는 이미 엄청나게 바뀌었다. ‘동성애자도 사람 좋아하는 건데 다 똑같은 거 아니냐’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기성세대는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가짜뉴스, 편견이 가득한 왜곡된 정보들에 노출된 적은 있어도 성소수자에 대해서 학교나 미디어 등을 통해서 정확한 정보를 접하거나 배운 적이 없다. 30대인 나도 학교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해 가르쳐 준 적이 없었고 교회에서 혐오에 기반한 잘못된 정보만을 듣고 배웠던 것이 전부였다. 나는 20대 중반에 미국에 유학을 가서야 알게 됐다. 직접 만나서 친구가 돼 보니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교회에서 배웠던 것들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 어떤 매체를 통해 알게 되는가.

▲ 교육을 하며 만나는 10대, 20대들에게 물어보면 웹툰과 미드(미국 드라마)를 통해서 성소수자 이슈를 처음 접했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양한 종류의 웹툰을 많이 보는데 그중에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웹툰도 좋은 작품들이 많다고 했다. 넷플렉스나 왓챠 등 월정액권을 끊으면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모든 작품을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미디어 서비스가 있다. 미드를 통해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퀴어문화를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IT 기술이 발전하며 수없이 많은 종류의 미디어 채널들을 통해 나오는 정보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지만,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과 좋은 정보를 잘 골라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면 인종차별, 성차별, 성소수자차별, 장애차별 등의 인권차별을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미디어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대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주변에 자신에게 커밍아웃을 한 친구들이 있다는 비율이 상당히 높아졌다.

 

- 국내의 성소수자에 대한 통계 수치는 얼마나 되나.

▲ 학자들에 따라 통계 방법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어떤 사람은 2%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12%로 보기도 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응답한 비율이 7~8% 정도가 나온 조사도 있다. 전체 인구의 5%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다. 나이대별로 성소수자 인구 비율이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 자신이 성소수자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전혀 해 본 적이 없는 세대와 ‘나도 성소수자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세대와는 당연히 그 비율이 다를 수 있다. 또한 스스로 성소수자라고 인식하고 있어도 그것을 숨기거나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설문지에 응답을 다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인가, 후천성인가.

▲ 이성애가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 묻지 않는 것처럼, 동성애자도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 묻지 않는다. 유전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이 둘 다 있을 수 있고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혐오세력 쪽에서 ‘성소수자는 문란함의 상징이며 성적인 타락의 증거다’는 주장을 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성소수자 인권운동 진영 내에서 성소수자가 되는 것은 선천적 요인이 있다(즉 유전적이다)는 것을 찾아내려 했지만, 지금은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묻는 질문이 차별적이라는 생각이다.

 

- 간성에 대해서 얼마 전에 처음 알게 됐는데, 흥미로웠다.

▲ 우리는 여성과 남성, 단 두 가지의 성별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에 살고 있는데 이외에도 또 다른 성별이 있는데, 간성(間性, Intersex)이라고 한다. 간성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전형적인 이분법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로 간성 내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질과 음경을 모두 가진 사람들도 있고 모호하게 섞여 있는 사람들도 있다. 외부성기는 질이나 음경 중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 성염색체가 외부성기의 모양과 다른 사람들도 있다. 다시 말해, 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XY 성염색체를 가지고 있거나 음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XX 성염색체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성염색체가 XX나 XY가 아닌 XXY나 X인 사람들도 있다.

 

- 간성이 의외로 많다고 하더라.

▲ UN에 따르면 간성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약1.7%로 거의 2%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간성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간성이라는 존재가 없는 것처럼 여기며 사는 이유는 간성이 비가시화 돼 있기 때문이다. 학교 등 어디에서도 간성에 대해서 배우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고 당사자들은 자신이 간성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힘든 사회기 때문에 간성이 가시화되기 어렵다. 또한 두 개의 성기를 갖고 태어날 경우, 부모와 의사가 합의해 성기 하나를 제거하는 경우가 많다.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나는 몸을 “비정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노멀리제이션(Nomalization)이라고 부르는 “정상화” 수술을 해서 두 성별 중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간성은 태어날 때부터 간성으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2차 성징이 일어날 때 간성의 특징이 발현되는 사람들도 있고 성인이 된 후에 발현되는 사람들도 있다. 국내 모 일간지에서 25세에 간성이 발현 된 분의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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