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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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내가 알고 있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앉아있다.

그는 유명한 소설가이다. 어린 시절, 그의 소설을 읽으며 오묘한 감정을 느꼈다. 슬픈데 재밌고 칙칙하고 어두운 그의 글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 끝에 환한 빛이 보였다. 이런 글을 쓰는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윤기 없는 머리털을 어깻죽지까지 기르고 피부는 기름기를 쪽 뺀 스펀지처럼 퍽퍽해 보였다. 가끔 텔레비전에 나와 나무젓가락을 던져 뭔가를 꿰뚫는 신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 한 동안 젓가락을 방문에 꽂아보겠다고 열심히 던져댄 적도 있다. 도인 같기도 노숙자 같기도 한 그가 써낸 글은 이상하게 나를 매번 빠져들게 만들었다. 새로운 소설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듯 그의 책을 읽어 내렸다. 다른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뭔가가 그의 글에 있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나도 소설이나 한번 써볼까.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이런 방만한 생각을 품고 산 지 몇 십 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소설 한 편도 제대로 써보지 못했다. 글을 쓴다는 것이, 그 글로 사람을 홀리고 웃기고 울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기는 했다. 그렇다고 전혀 이룬 게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나는 그 분의 제자가 되어 있었다. 글에 대한 열정 때문에 나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라고 말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그건 아니고 그냥 대문이 열려 있었다. 누구나 들어와도 된다고 그는 말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름난 작가가 자기 집 대문을 활짝 열어놓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거기다 한술 더 떠 돈 한 푼 받지 않고 글쓰기 까지 가르쳐 준다고 했다. 그렇게 전국 팔도에서 온 사람들이 ‘모월당’이라는 곳에 모여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일단 한번 지켜보기로 했다.

지구에는 200개가 넘는 나라가 있고 그 중 하나인 대한민국에는 162개나 되는 도시가 있다. 거기서 뻗어나간 수많은 크고 작은 마을에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타인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을 때까지 점성 없는 모래처럼 서로 상관없이 살아간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작은 동네조차도 최소한의 이웃만으로 엮여 있다. 그렇게 살아오던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SNS에 글을 올렸다. 지구라는 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교신을 해 온 것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글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환영합니다.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강원도 산꼭대기에서 신선처럼 살고 있는 한 사람을 상상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한번 가보기나 할까. 나에 대한 간단한 소개 글을 써서 그의 교신에 응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초대장이 왔다. 그게 뭐랄까. 그러니까 처음부터 뭔가 계획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 이렇게 시작된 거였다. 유명한 작가가 글을 가르쳐 주겠다니까 가서 슬쩍 구경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싶었고 얼마나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모였는지 살짝 엿보고 오자는 식이였다.

그렇게 나는 강원도 화천으로 갔다. 길은 멀고 멀었다. 그리고 설레었다. 소설을 쓰고 싶다고 어린 시절부터 막연하게 생각만 품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밀어닥친 파도에 휩쓸려 어딘가로 등이 떠밀린 느낌이었다. 어쨌거나 제일 궁금한 건 ‘그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소설가. 뭔가 미스터리한 그 남자. 어찌 보면 그를 보기 위해 그곳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살고 있었던 이름난 작가 중에, 아니 이름 없는 작가까지 포함해서 그 누구도 이렇게 파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오픈한 사람이 있을까. 글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상관없으며 수업료도 전혀 받지 않고 1박 2일 동안 잠자리까지 제공하면서 글을 가르쳐 주겠다니 이게 도대체 뭐하자는 것일까. 궁금해서 내 눈으로 일단 확인해보고 싶었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첫 수업에 그는 흰색 양복을 쫘악 빼입고 연예인처럼 등장했다. 나는 제일 앞자리에 앉아 그를 바라봤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 그의 얼굴의 모공까지 다 들여다보였다. 예전의 그 긴 머리는 짧게 잘려 나가 단정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손에는 젓가락도 들려 있지 않았다. 너무 평범한 그 모습에 살짝 김이 빠졌다. 하지만 그는 어쨌거나 이외수였다.

그렇게 시작된 그와의 인연이 벌써 3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바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 10년 째 키우고 있는 고양이가 봄날의 창밖을 내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차 모르는 내가 70평생을 넘게 살아온 한 사람의 기나긴 인생에 대해 어찌 이렇다 저렇다 말 할 수 있을까. 다만 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단편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흑과 백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위선자’라고 부르고 싶다. 세상만사 다 겪어보고 태어나는 사람 없고 실수나 잘못 없이 깨달음이나 자아반성에 이르는 사람도 없다. 중요한 건 지금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냐는 거다. 남들이 보는 눈, 남들이 하는 말, 그런 건 잘 모르겠다. 다만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사람을 마치 오랜 세월 곁에서 보아온 것처럼 말해대는 인간들을 볼 때면 어금니를 깨물고 또박 또박 힘주어 말 해주고 싶다.

‘너나 잘 하세요, 제발.’

우리는 그 분을 ‘선생님’ 혹은 ‘스승님’이라고 부른다. 달리 부를 말이 없어서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라 그는 우리에게 진짜 스승이자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분이 많이 아프다. 강원도 산골의 혹독한 추위를 다 견뎌내시고 이제 겨우 따듯한 봄이 왔는데 아직 누워만 계신다. 이 무렵이면 산에 핀 들꽃 사진들을 SNS에 무더기로 올려주시곤 했는데 지금은 잠만 자고 계신다. 너무 마음이 아파 가끔 숨을 멈추게 된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글을 배우겠다고 찾아왔지만 선생님은 우리에게 글만 가르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먹히는 글을 쓸 수 있는 지, 플롯이 무엇이고 카타르시스가 무엇인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집 나간 자식 대신 손주를 맡아 키우는 할아버지처럼 우리에게 그냥 사랑을 주었다. 응석을 받아 주고 막걸리를 같이 나눠 마시며 인간에 대한 걸쭉한 연민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팔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형제처럼 자매처럼 끈끈해져 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같이 날 밤을 새며 이야기를 나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과 별들도 보여주었다. 눈썹과 입 꼬리가 맞닿을 만큼 축 처져 계셨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 아이처럼 신나게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냥 이게 내가 본 그 분의 모습이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보다, 나 같이 잘나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선생님에게 맡겨진 몫은 어쩌면 그런 사람들인지 모른다.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은 사람, 창자가 비틀어지도록 굶어본 사람, 술 사먹을 돈도 없는 알콜중독자,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 해본 사람, 너무 외로워 자기 팔로 자기를 껴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쉽게 위로하지 않는다. 그냥 곁에 오래 두신다. 내 곁에 있어라. 그러다보면 좀 나아지기도 한다. 나를 보고 배워라. 이게 인생이다. 존나 힘들기 때문에 존나 버틸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존버’… 이외수의 존버 정신이다.

힘을 내세요 선생님. 더 많은 날들이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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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선생님의 캘리그라피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br>
이외수 선생님의 캘리그라피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팔이 안으로만 굽는다 하여

어찌 등 뒤에 있는 그대를 껴안을 수 없으랴.

내 한 몸 돌아서면 충분한 것을.

이외수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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