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호 사)소비자와함께 상임대표
정길호 사)소비자와함께 상임대표

[위클리서울=정길호]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세계인들의 모든 이목이 확진자 숫자와 치료에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소비자들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을 방불케 한 혼란으로 평상시와 다른 환경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21일, 대구에서 대규모 감염사태 발생 이후 소비자들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방역용품의 가격이 오르고 유통점들의 매점매석으로 인한 품귀현상으로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정부의 개입으로 유통질서가 어느 정도 잡힌 상황이지만 소비자들의 권리는 실종된 것이다.

마스크, 세정제 등 방역용품의 브랜드별 품질 비교는 엄두가 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구입하기만 해도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역사적으로 전쟁, 기근, 재난 상황에서는 항상 힘없고 가진 것 없는 하층민들의 고통이 최고조에 이르고 그들은 수탈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현대사회에서는 소비자들의 고통과 불이익이 이를 대신하는 것 같다.

  이렇듯 한국 시장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업자와 소비자 간의 분쟁은 증가하고 있으며 해결의 실마리는 찾을 수 없는 상태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지난 4월 29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서울시와 함께 운영한 “코로나19로 인한 위약금 분쟁 해결을 위한 상생 중재 상담센터”를 통해 3월 말부터 한 달간 접수된 174건의 상담내용을 분석한 결과, 소비자들은 계약해제·해지(40.9%), 환급(23.6%), 계약금액 조정(13.2%) 순으로 분쟁 해결을 원했지만, 접수 사례 중 99건(56.9%)은 정보 제공 수준에서 상담이 마무리됐다.

피해 처리에 들어간 75건(43.1%)도 상담원들이 소비자와 업체 간 중재를 시도하였으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마무리된 건이 53.3%(40건)로 가장 많았다. 환급 처리는 11건(14.7%), 계약해제·해지는 1건(1.3%)에 불과했다.

유형별로는 결혼식 특성상 취소보다 일정 연기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용해 식대 단가를 인상하는 등 예식 관련 상담이 54%로 가장 많았다. 돌잔치에서 계약금보다 높은 위약금을 요구하는 등 외식 관련 상담이 24.7%, 환불 거부 등으로 인한 여행 관련 상담이 21.3%를 차지했다.

  이상과 같은 사업자와 소비자 간의 분쟁은 평상시 같았으면 소비자단체의 중재로 합의된 건들이 많았겠지만 특수 상황으로 여기고 소비자들에게 불이익을 감수하게 하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결코 희생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불이익만을 감내만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기업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대의 경제 대국답게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경쟁력을 갖췄다는 말은 바꿔 말해 세계 각국의 소비자들에게 환영받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20여 년 전에 TV 제품들은 소니, 도시바 등 일본 제품이 최고로 평가받고 있었지만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전후하여 전자제품의 기존 판도가 바뀌기 시작하여 2019년 말 기준, 세계 시장에서 프리미엄 TV의 50% 이상이 LG전자, 삼성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기업이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연구개발과 생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도 있었지만 소비자들의 요구 수준에 부응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와 제안, 건의뿐만 아니라 해결하기 힘든 클레임까지를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문제해결을 했다는 것이다.

까다롭고 정교한 요구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최고의 품질, 소비자 기호에 맞는 제품이 탄생하였던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예를 들어 한국의 냉장고는 세계 최고의 절전기술, 최저 소음을 자랑하고 있다.

전기요금이 과다한 제품, 큰 소음에 대해서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한국인들의 특징을 반영한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미국 GE사의 양문형 냉장고의 소음은 가히 한국 사람들에게는 참기 힘든 정도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미국 사회의 주거환경과 국민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렇듯 그 나라의 공산품과 서비스 수준은 소비자들이 결정하는 것이므로 소비자들과 동떨어지는 기업 정책은 결국 시장에서 외면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과 같은 비상상황에서는 국가 경제의 붕괴를 막기 위한 기업의 생존이 우선이고 자칫 소비자 권리가 뒷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언젠가는 코로나19 사태는 끝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3월 15일은 ‘세계소비자권리의 날이었다. 코로나19 사태에 묻힌 기념일이었다.

소비자의 4대 권리(안전할 권리, 알 권리, 선택할 권리, 의사를 반영할 권리)를 처음 천명한 ‘세계소비자권리의 날’이다. 이를 기념해 국제소비자기구(Consumers International, CI)는 매년 새로운 주제를 선정해 발표하고 각 나라에서는 발표한 주제를 중심으로 상황에 맞게 국제연대활동을 개최했다.

CI(국제소비자기구)의 올해 주제는 지구를 보호하고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한 공정한 사회적 조건을 제공하기 위해, 우리가 생산하고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지속 가능한 소비’를 주제로 선정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회장 주경순)는 CI의 올해 주제인 ‘지속가능한 소비’와 관련해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하는 활동을 진행, 한국이 처한 코로나19 사태가 엄중함을 느끼며 소비자 행동지침 ‘배려! 약속! 촉구!’로 온라인 캠페인을 진행하여 소비자들과 함께 공유 및 확산을 통해 코로나19 사태를 합리적이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였다.


  그동안 분명, 한국 소비자들의 권리 주장과 활동이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향후에도 지속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 의문이 생기는 시점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한국 소비자들의 권리행사를 자제하게 했으며 이를 대변하는 소비자단체에서도 산업계 활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 권익, 권리 주장도 기업의 생존을 전제로 한다는 점과 기업의 경쟁력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결과물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경제 주체로서 ‘상호 이해관계가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 코로나19 사태가 우리에게 준 교훈일 것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가장 빨리 극복하여 한국경제가 정상화되고 더불어 소비자들의 권리 침해가 일어나지 않고 소비자권리 행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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