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진은 마음을 움직인다
좋은 사진은 마음을 움직인다
  • 이호준
  • 승인 2020.05.0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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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호준의 ‘사진 이야기’-10회
ⓒ위클리서울/ 이호준
ⓒ위클리서울/ 이호준

[위클리서울=이호준] 좋은 사진을 일목요연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좋은 사진의 요건을 유형화할 수 있을까? 다분히 사회과학적인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다. 사진에 관심 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200여건의 응답을 얻어 통계분석을 시도하였다. 결과는 실패였다. 결론적으로 좋은 사진의 정의와 유형화는 가능하지 않았다! 사회과학적 방법을 통해 좋은 사진의 성격을 규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이었다. 그렇다고 전혀 무의미한 노력은 아니었다. 좋은 사진은 ‘일반화가 힘든 주관적인 감정의 문제’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충격, 고통, 즐거움, 흥미, 관심, 짜증, 희열, 교감, 따스함 같은 감정을 경험하고, 그러한 감정들은 토대로 사진을 평가한다.

주관적인 감정을 근거로 사진의 본질과 성격을 규명하고자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롤랑 바르트(1915~1980)이다. 그는 기존의 미학, 사회학 심지어 자신의 전공이나 다름없는 기호학으로도 사진의 본질을 규명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대신 ‘나’와 ‘감정’을 사진을 판단하는 최종준거로 삼았다. 롤랑 바르트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 사진이 불러일으키는 두 가지 감정을 언급했다. 하나는 일반적인 흥미의 감정을 의미하는 ‘스투디움’이고, 또 하나는 외상과 같은 충격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푼크툼’이다. 이러한 감정의 종류에 따라 사진도 스투디움 사진과 푼크툼 사진으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유형, 어떠한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사진을 생각할 수 있다. 롤랑 바르트가 진부하다고 말한 사진이다. 한 마디로 밋밋한 사진이다. 이렇게 감정 유발 여부와 감정의 속성에 따라 스투디움, 푼크툼, 밋밋함으로 사진을 분류해 보고자 한다.

그러면 어떤 사진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롤랑 바르트는 스투디움이나 푼크툼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에는 반드시 ‘이질적인’ 두 요소가 공존한다는 점을 밝혔다. 사진 속에는 여러 장면이 포함될 수 있는데, 내용이나 형식에서 서로 연계되지 않는 다른 성질의 요소가 함께 있는 사진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진 속에 포함된 이질적인 요소를 ‘이원성’이라고 불렀다. 반면 일원성의 사진, 즉 단일한 요소로 구성돼 있는 사진은 진부하고 밋밋한 이미지로 보는 이에게 어떠한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각각의 사진에 대해 좀더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스투디움’ 사진이다. 스투디움이란 ‘열렬하지만 특별히 날카롭지는 않은 일반적인 정신 집중’을 의미하는 용어다. 이는 지식이나 문화에 바탕을 두고 익숙하게 지각하는 정신 영역에 해당된다. 보는 사람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내용과 형식, 이미지 구성요소를 갖춘 사진을 바라볼 때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다. 전통적인 미학을 따르고 구도, 미장센, 시선처리, 색상 등 이미지 구성 문법에도 부합되는 사진이다. 감정 유발의 전제 조건인 이질적인 두 요소가 어우러져 있고, 보는 사람은 사진 속에서 자신과 연관된 부분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좋은 사진이라고 언급되는 사진의 대부분은 이 유형에 속한다.

두 번째 사진 유형은 푼크툼이다. 푼크툼은 작가가 의도하거나 보는 이가 찾아내는 요소로 구성된 사진이 아니다. 보는 이가 사진 속에서 감정의 요소를 찾아내는 스투디움과 달리, 푼크툼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갑자기(또는 은근히) 보는 이를 찌르는 듯한 충격(외상)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포함된 사진이다. 작가는 자신의 사진 속에 푼크툼적 요소를 넣을 수 없고, 보는 이 역시 사진 속에서 푼크툼적 요소를 노력해서 찾아낼 수 없다. 그것은 미학이나 사진 문법과도 관계가 없다. 개연성 없이 느닷없이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작가의 창의성과도 연결시킬 수 없다. 푼크툼 감정도 스투디움과 마찬가지로 단일한 사진에서는 발생될 수 없으며, 두 요소가 섞인 이질적인 요소의 사진에서 나타난다. 푼크툼은 보는 이의 마음속 상처, 그리움, 추억 등과 같은 과거 경험과 기억을 되살리는 어떤 요소가 사진 속에 우연히 포함되어 있을 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밋밋함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진은 두드러진 특징이 없는 평범한 사진이다. 보기에는 무난하나 바라보는 사람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진부한 사진이다. 마치 그림자가 없는(무영無影) 이미지처럼, 표면에 드러난 모습 말고는 이면에서 어떠한 의미나 느낌을 유추할 수 없는 사진을 말한다. 업소용 사진, 풍경 위주의 달력 사진 등이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공간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한 단순 장식품으로 활용되며, 대량복제되어 저가 액자사진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소위 유명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동일한 프레임의 사진들도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미학적으로 전혀 가치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예술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독창성이나 남다름 또는 낯섦 같은 요소를 발견하기 힘들다.

사진을 찍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동기는 ‘삶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인물이나 정물, 풍경 또는 장소 등 그 대상이 무엇이든 사람들이 찍고자 하는 장면은 기본적으로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것들이다. 그 기억의 대상은 이미지뿐만 아니라 사진에 스며든 이야기까지 포괄한다. 사람들은 사진 속 장면에서 자신의 모습과 삶의 기억을 더듬어낼 수 있는 사진에 감정적 동요를 일으킨다. 패션 사진작가 마리오 소렌티는 “내 사진이 삶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감성을 자극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좋은 사진이란 그런 사진이다. 눈에 보이는 외형만 그럴 듯해서는 좋은 사진이 될 수 없다.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 이면에 이야기를 품고 있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다.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보는 이의 마음속에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사진이 좋은 사진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그럼,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사진 중 사진가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좋은 사진은 어떤 것일까? 스투디움 사진일 수밖에 없다. 밋밋한 사진은 언급할 필요도 없고, 푼크툼 사진은 사진가가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사진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원적 요소에 사진가의 목소리와 시각이 담겨질 때, 그 사진은 이야기까지 품은 멋진 작품으로 태어난다.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사진은 감정을 울리는 사진이다. 사진에서 느낌만큼 중요한 건 없다.

 

이호준(facebook.com/ighwns)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서 2회 수상하고, 세 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 3회를 개최했다. 월간지 <SW중심사회>에 사진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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