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2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1회에서 이어집니다.>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 사회 갈등지수도 갈수록 심각한 상황인데.

▲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일단 사회적 지지 또는 사회적 신뢰다. 내 주위에 ‘나를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나?’ 이게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이것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연구단체가 북유럽의 국민을 대상으로 신뢰도 조사를 했는데, 시민 4명 중 3명이 ‘전혀 모르는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로 나왔다.

75%가 전혀 모르는 타인을 믿는 사회다. 한국은 4명 중 1명으로 25%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에서 ‘처음 보는 사람을 믿을 수 있냐’고 물으면 아마 ‘처음 봤는데 어떻게 믿어’라 답할 것이고, 그런 반응은 한국인의 저변에 깔린 기본 정서다. 반면에 북유럽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서로를 신뢰하는 사회가 형성되어 있다.

 

- 유럽 사회가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은.

▲ 무엇보다 북유럽 국가는 우리와 달리 사회적 갈등 비용이 매우 적다. 오랜 역사를 통해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정착되어 있고, 무엇보다 정책에 기반하는 정치제도가 극단을 배제하고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만들도록 하고 있다.

비근한 예로, 우리나라는 2012년 협동 조합법이 만들어졌는데, 5명이 모이면 협동조합 사업체를 만들 수 있다. 지금 협동조합 법인만 2만 개가 넘는다. 법 시행 8년 만에 2만 개가 만들어진 것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지만, 사회적 경제나 협동조합이 잘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기본적으로 사람들 간의 신뢰성이 낮기 때문이다. 사업을 통해 이윤이 발생시키기도 힘든 구조이기도 하지만 대화와 타협, 공정한 분배와 문화적 인프라가 너무 부족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 측면에서 질적 성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

유럽에서는 협동조합 법 자체가 없는 나라도 있지만, 기본 신뢰가 잘 구축된 사회이기 때문에 협동경제가 잘 작동한다. 사업 이익이 생기면 상식선에서 공평하게 나눈다. 우리는 그런 상식과 기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고 한 것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 염원이었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상식이 통하고, 누구나 미래가 예측 가능해야 좋은 사회라고 볼 수 있다.

 

- 우리 사회가 정치, 경제, 노동, 환경 등 각 분야에 소통과 통합이 사라지고 남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 팽배하다. 특히 폭발 직전의 갈등문제를 정치권이 풀어가야 하지만 여전히 그런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총선에서 180석으로 압승한 여당이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 결국은 정치가 문제다. 사람마다 각자의 욕구가 있고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것을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풀어내야 한다. 누적되면 사회적 문제가 된다. 우리 사회는 작은 문제부터 큰 문제까지 어디 가서 얘기하려 해도 들어 줄 곳이 별로 없다.

이번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국민청원을 만들었는데, 엄청난 요구들이 이쪽으로 몰리고 있다. 할 말은 많은데, 들어줄 곳이 없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언제까지 주권자인 국민이 청원만 해야 할까. 청원을 제도화하는 것이 ‘국민발안권’ 이다.

스위스나 핀란드 같은 곳들은 헌법과 법률에 대한 국민발안권을 인정하고 있는데, 우리도 도입해야 한다. 시민들은 잘 모르지만, 지난 3월에 국회의원 절반 이상이 참여해서 헌법에 국민발안권을 넣은 헌법개정안을 발의했고, 대통령도 국무회의를 거쳐 공고했고, 3월 말로 공고 기간도 끝났다.

남은 것은 국회의원 2/3가 참여해 통과를 시키고,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하는 일만 남았다. 시민사회에서는 이번 총선과 함께 국민투표를 기대했지만, 나머지 절반의 국회의원들이 무시했다. 남은 20대 국회 기간이나 21대 국회에서 헌법 개정을 추진할 것을 기대한다.

 

- 이런 상태에서 통일 이후에도 갈등 해결 없이 사회통합이 가능할까.

▲ 그 문제가 가장 큰 숙제다. 분단 이후 남북한 이념대결이 70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독일의 통일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왔다. 독일도 내부적으로 사회갈등 문제가 많았지만, 그런데도 독일이 통일과정을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 교육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차별하지 않았고, 배제하지도 않았다. 차별과 배제를 하는 세력들이 나올 때마다 사회적으로 응징을 했다. 이것은 법과 제도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차별과 배제가 없는 사회적으로 성숙한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지금 한국으로서는 쉽지 않은 문제다.

지금도 가진 자와 없는 자 간에 차별과 배제가 매우 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한 통일이 왔다고 가정할 때, 큰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부터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않으면 통일의 기회가 주어져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수도 있다.

 

- 때만 되면 일각에서 나오는 ‘5.18-세월호’ 망언도 갈등을 키우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 우리 사회가 그런 사회적 악에 대해 철저한 응징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민주시민 교육을 하지 못했다. 독일의 경우, 철저한 민주주의 시민교육을 통해서 사회갈등을 풀 수 있었다.

세계 2차 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은 1952년에 국립 ‘연방정치교육원’을 만들었는데, 연방 차원에서 민주시민 교육을 담당하는 전문교육원이다. 1년 예산도 750억 원에 달한다. 연방을 비롯해 총 16개 주중 15곳에 교육원을 두었다. 한국은 시민단체에서 민주시민 교육법제정 운동을 20년 동안 하고 있지만, 보수우파의 반발로 입법을 하지 못했다.

보수우파는 시민들에게 민주시민 교육을 하겠다고 하면, 이상한 색안경을 쓰고 바라본다. 민주주의 교육은 시민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책임과 권리를 가르친다. 그런데 이것을 가르치지 않고, 엉뚱하게도 ‘인성 교육법’을 만들어서 운용하는 실정이다.

 

- 인성교육으로 교묘하게 포장해 민주시민 사회를 방해하는 느낌이 드는데.

▲ 인성 교육법은 일종의 도덕교육이다. 민주교육은 없고 도덕만 강조한다. 민주시민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와 의무, 책임, 권한을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을 ‘인성’(人性) 문제로 돌려 개인적 사안으로 넘겨버렸다.

물론 좋은 인성을 갖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몇 년 전에 우리 사회에서 ‘미투’ 등 여러 가지 성폭력 문제 등에 이어, 최근의 ‘N번 방’ 같은 성 착취 사건들을 개인의 인성 문제로 몰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일들을 계속 반복해 왔다.

우리는 ‘N번 방’ 범인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어떤 사회적 문제 때문일까 등 이런 점을 깊게 고민해야 한다. 그동안 진보진영에서 인성교육이 아니라, 민주시민 교육이 필요하다고 줄곧 주장했지만, 국회가 인성 교육법만 슬쩍 통과시켰다.

 

- 유럽의 민주시민 교육은 어떤가.

▲ 독일만 해도 2차 대전 당시에 히틀러와 나치들이 6백만 유대인을 학살했는데, 그 당시에 유럽의 지식인들은 학살 ’패닉‘, 즉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중세기 인류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사건이 흑사병이라면, 근·현대의 대표적인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홀로코스트(집단학살)라 볼 수 있다. 흑사병이 자연의 대학살이라면, 홀로코스트는 인간의 대학살이다. 인간은 더욱 잔인했고 참혹했다.

유럽의 지성인들은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그렇게 잔혹하게 죽일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봉착했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민주시민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치가 유대인을 죽일 때, 골수분자들만 나서서 죽인 게 아니다.

유대인 학살 범죄가 히틀러와 나치주의자 책임이 가장 크지만, 학살 범죄에 별 뜻도 없이 동조했던 독일의 소시민들도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통의 소시민이었던 아이히만도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인물이었다.

아이히만과 같은 평범했던 소시민에게서 악의 ‘일상성’과 ‘평범성’에 주목했던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대로 보통시민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점들을 반성하게 되면서, ‘민주시민 교육이 곧 정치교육’이라는 차원에서 1952년 연방정치교육원이 만들어졌다.

 

- 독일은 유럽에서 뒤늦게 민주화를 이룬 나라인데.

▲ 2차 대전 전후에 독일은 ‘나치즘’ 옹호라든지 ‘나치’ 구호를 외치면 사회적으로 가차 없이 처단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독일에서 나치는 우리나라의 광주와 비슷한 역사성을 갖고 있다.

우리도 5.18 광주 망언에 대해서는 나치를 대하는 만큼의 사회적 단죄가 있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 때문에 망언들이 반복된다. 독일은 근대 초부터 때부터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지 못해서 세 번 망했던 나라다.

첫 번째 패망 시기는 1700년대부터 영국과 프랑스가 민주주의 꽃을 피워 나갈 때,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의 해체라는 국가체제의 멸망을 경험했다. 두 번째는 1차 대전 패망이고, 세 번째가 2차 세계대전의 패망이다.

2차 대전 패망 이후, 독일 지식인들은 민주주의 제도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고, 민주시민을 제대로 양성하지 못했기에 패망했다고 분석하고 연방정치교육원 등을 통해 민주주의 강화에 집중적인 노력을 했다.

 

- 어떤 과정을 통해서 유럽 최고의 민주국가가 되었나.

▲ 영국, 프랑스를 비롯해 다른 나라들도 민주시민 교육을 한다. 하지만, 유럽에서 후발 국가였고 망국의 길을 갔던 독일은 민주시민 교육을 더욱 철저하게 했다. 지금은 유럽에서 가장 안정적인 나라가 됐다.

한일관계처럼, 프랑스와 독일은 역사적으로 원수지간인데 요즘은 지난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은 2차 대전 당시에 피해를 주었던 일들을 역대 독일의 수상들이 프랑스에서 무릎을 꿇고 진정성 있게 사죄를 했다.

유럽 국가들도 이것을 인정해줬다. 독일이 통일됐을 때도 유럽 국가들이 독일에 대한 반감과 2차대전의 트라우마가 컸지만, 독일은 유럽의 지지를 통해 통일국가가 될 수 있었다.

일본도 독일처럼 한국을 비롯해 태평양전쟁 당시 아시아국가에 피해를 준 것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하지만, 아직도 과거사 반성이 없다. 일본이 반성과 성찰을 하지 않은 한, 아시아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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