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정부, 국민이 몰아준 혁신 기회 놓치면 ‘위기’ 찾아올 것”
“촛불정부, 국민이 몰아준 혁신 기회 놓치면 ‘위기’ 찾아올 것”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20.05.11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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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3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 독일처럼 한국도 민주시민 교육이 절실한데.

▲ 시민들과 함께 민주주의 교육을 하루빨리 해야 한다. 민주시민 교육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깨닫고 지금부터라도 교육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보수, 진보 시민사회와 같이 가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해묵은 갈등을 풀기 어렵다.

지난 2000년 후반부터 시민사회가 진정한 민주교육을 위해 ‘민주시민 교육법’ 제정 운동을 했지만, 보수우파에 의해 막혀 법이 통과되지 못했다.

다행히 2~3년 전부터 서울시와 경기도 등 일부 지역에서 조례를 만들어서 민주시민 교육을 하고 있다. 비록 예산이 많지 않아서 파급력은 그리 높지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학교와 생활 속 현장에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 민주주의 국가라 해서 모두 복지국가는 아니다.

▲ 그렇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운용할 것 인가에 달렸다. 자유민주주의로 갈 것인지 아니면 사회민주주의로 갈 것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민주주의 종류만 50여 가지나 된다. 영국과 미국이 지양하는 체제는 자유민주주의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에게 모든 문제를 넘기는 체제다.

잘 살고 못사는 것을 개인 탓으로 돌린다. 이것은 형식적인 민주주의다. 사회민주주의는 경쟁 자체를 부정하지 않지만, 적어도 경쟁에서의 출발점을 공평하게 하자는 체제다.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무상교육을 하는 철학도 이에 기반한다.

돈이 없는 대학생에게 생활보조금까지 주는 것도 그런 공정과 평등의 원리에서 나왔다. 금수저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흙수저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은 본인의 노력과는 무관한 일이 아닌가? 이런 태어날 때부터의 차별은 없애주자는 것이 복지국가의 원리다. 자유민주주의가 형식적인 민주주의라면, 사회민주주의는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 ‘복지와 민주주의’ 상관관계를 말한다면.

▲ 북유럽의 복지국가 핀란드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5개 나라의 행복지수가 언제나 세계 10위 안에 있다. 문제의 핵심은 국가 행복보다 시민 행복이 중요하다. 이것을 하려면 삶의 안전문제에 있어서 국가가 1차로 책임을 져야 한다.

여기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이상한 관료주의나 이상한 사회로 변질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복지국가와 민주주의가 수레의 양 바퀴처럼 함께 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볼 때, 현재의 북유럽의 복지국가는 현존하는 사회에서 가장 좋은 국가모델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19말에서 20세기 초중반에 사회주의 독재를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치열했다. 소련 공산당은 독재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독재국가로 갔다. 독재 때문에 결국은 사회주의가 망했다.

북유럽도 같은 비슷한 사회주의를 했지만, 시민들이 독재를 거부했다. 그래서 북유럽은 사회민주당이 주류가 됐고, 러시아는 공산당이 주류가 됐다. 여러 차이가 있었지만, 독재에 대한 인정 여부가 사회의 작동방식을 바꾼 것이다.

북유럽은 국가와 사회가 많은 것들을 책임지면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복지국가가 가능했다. 매년 행복조사를 하면, 북유럽 5개국이 언제나 10위 안에 모두 들어간다.

 

- 한국은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30년 만에 이뤘지만,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이념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비민주적인 세력이 존재하고 있고, 극심한 양극화와 사회적 계층 이동이 단절됐다.

▲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시민들이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고, 더 많은 평등을 요구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은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새의 두 날개다. 평등이 강해지면, 자유가 많아지고, 자유가 많아지면 평등해진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요구하지 않는데 누가 공짜로 주겠는가. 다행히 우리 국민의 시민의식은 빠른 속도로 깨어나고 있고,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럽도 민주주의를 얻는데 300년의 기나긴 시간이 걸렸고, 값비싼 피의 대가를 치렀다.

우리는 이제 1945년 해방 이후로 70여 년밖에 안 됐다. 자유를 얻기 위해 유럽이 흘린 피의 역사에 비하면, 우리가 흘린 피와 역사는 짧다. 민주사회가 가야 할 방향은 한쪽으로는 복지국가를 만들고, 한쪽에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축을 만드는 일이다.

물이 흐르면서 웅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아래로 흘러가지 않듯이 역사도 과정이라는 게 있다. 우리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제3의 세계에서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성취한 나라가 없었다는 프라이드를 가져도 좋다.

 

- IMF 등 국제경제 연구기관들이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가 마이너스 경제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세계적인 경제공황에 이어 실업 문제 등이 심각해질 수 있다. 재난복지 정책에 따른 국가 재정이 고갈될 우려도 있는데.

▲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비상한 시국에서 어느 때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지금은 준 전시상황과 같다. 과거 미국이 2차 대전 전시상황에서 세금을 무려 80%까지 무겁게 거뒀다. 수익이 100만 원이면 80만 원을 세금으로 가져갔다.

물론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어서 그럴 수 있었지만, 지금도 경제가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질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기 때문에 비상한 상황인식과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상황을 준전시 기간으로 생각한다면, 국가의 역할을 상당히 강화할 필요가 있다.

비상한 상황이기 때문에 실업과 산업문제까지 국가가 개입해서 선순환적 방향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시장 만능 사회체제였기에 국가와 정부개입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기에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시민들의 지혜를 모아서 담대하게 가야 한다. 재정문제를 우려하는데,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도 재정 건전성을 가지고 있다. 국가와 기업은 재정이 많은 데 비해, 국민은 가난한 만큼,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복지정책을 통해 사회를 안정시켜야 한다.

 

- 관여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 우리나라는 조세율이 낮은 데다, 복지국가에 대한 경험과 정책 의지가 높지 않다. 미국적 방식에 익숙해 있고, 정부의 관료들이 미국식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복지국가에 대한 인식과 철학이 약하다. 북유럽은 다르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세금을 높게 부담시키고 높은 수준의 복지를 한다. 우리나라의 공공사회복지 지출은 OECD 평균의 절반밖에 되지 않고, 북유럽 선진국과 비교해 1/3밖에 되지 않는다. 그 결과가 20년째 계속되는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다.

이런 상태로 사회가 유지되기 어렵다. 행복순위에서도 보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크게 사회구조가 바뀌지는 않았다. 지금 같은 위중한 상황이 계속되면 양극화 문제가 더욱 심화 될 수 있다. 정부가 조세 강화를 통해 사회 양극화를 막아야 한다.

부동산은 불로소득의 원천인 만큼, 보유세 강화 등을 통해 세금을 늘리고, 세금을 통해 적극적인 재정투자를 해야 한다. 2차 세계 당시 전시상황에서도 미국경제가 파탄 나지 않고 유지되었던 것은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 때문이었다.

지금 미국은 세금이 적다. 이유는 국가가 개인의 삶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도 전시상황에서는 80%의 세금을 거뒀다. 북유럽도 높은 세금을 통해 안정적인 복지국가를 실현했다.

 

- 그렇다면 지금 시기가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을 위해서 만든 게 국가 공동체다. 따라서 공동체의 역할과 기능들을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쪼개지지 않는다. 가장 어려운 상황이 되면,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계층이 노동자, 저소득층 등이다.

이들을 국가 공동체에서 보호해주지 않으면 대안이 없다. 옛날처럼 시골에 농촌 마을공동체가 있어서 누가 굶게 되면 도와주기라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공동체가 모두 사라졌다. 그러면 국가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정부도 그런 경험은 없었다.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을 받아 자유시장 경제 체제에서 살아왔다. 미국의 기본 철학은 ‘너희 일은 너희가 알아서 해라’ 주의였고, 자위권도 ‘스스로 알아서 지키라’ 주의다.

우리는 여러 분야에서 그런 철학을 수입했다. 그래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사회개입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막상 이것을 하겠다고 나서면, ‘좌파’이니 빨갱이’니 ‘사회주의자’라는 식으로 우파세력들이 매도해 왔다.

 

- 정치권 이념 논쟁보다 국민 안전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 사회민주주의를 하는 북유럽을 보면, 정부가 개입한다고 해서 사회주의자로 보지 않는다. 단지 민주화된 사회복지 국가만 있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가야 90%의 시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정부가 세금을 거두지 않고 지금 상태로 계속 간다면, 10%의 기득권층만 편안해질 것이다. 10%가 좀 더 양보하고 90%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잡아야 한다. 90%의 시민이 요구하면 국가가 따라가야 한다. 민주주의 힘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선거와 투표가 중요하다. 경제학자 ‘칼 폴라니’의 말을 빌리면, 시장이 사회를 삼켜버리는 ‘악마의 맷돌’ 비유가 나온다. 시장이 시민들의 안전과 행복 그리고 많은 소중한 것들을 삼켜버렸다. 새로운 근본적인 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다.

 

-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을 말하면 무조건 사회주의자로 낙인이 찍혔지만,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 유럽 최초로 기본소득 실험을 한 핀란드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한 곳은 우파 정부였다. 핀란드는 기본소득 실험을 위해 2천 명을 대상으로 2년간 돈을 주었을 때, 어떤 효과가 나오는지 우파의 철학을 가지고 우파의 방식으로 했다.

고용이 얼마나 나오는지 등 결과는 기간이 너무 짧고, ‘샘플링’이 많지가 않았기 때문에 고용률 증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왔지만, 그 대신에 삶의 질은 상당히 좋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도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이 심해지겠지만, 장단점이 있다. 세금을 가지고 전체 국민에게 n분의 1로 나누기 때문에 매우 간단하고 명확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정부가 자칫하면 영국과 미국처럼 ‘돈을 줬으니 할 일 다 했다’라는 식의 자유 방임주의로 흘러갈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우파들도 기본소득을 찬성한다. 그러나 국가 복지시스템이 무너질 수도 있으므로, 많은 사회적 토론과 조심스럽게 접근을 해야 한다.

 

- 재난 기본소득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기본소득은 좌파에서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고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 우파에서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있다. 사회적 토론을 많이 해야 할 의제다. 우리나라는 워낙 복지체계가 취약해서 복지를 강화하는 데 우선 주력해야 한다.

지난번 ‘재난 기본소득’이라는 용어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는데, 사실 기본소득 원칙에 맞지 않는다. 기본소득은 5가지 원칙이 있다. 모든 개인에게 주는 ‘개인성 원칙’이 있고, 한번 주는 게 아니라 계속 준다는 ‘항상성 원칙’, 기본적으로 살 수 있는 충분한 돈을 지급하는 ‘충분성의 원칙’, 현금으로 주는 ‘현금성의 원칙’ 등이 있다.

기본소득론자들이 기본소득에 대한 정의를 내린 것이기 때문에, 이에 부합한 내용이어야 기본소득 용어를 쓰는 것이 적합하다. 현금성, 개별성의 원칙에는 맞지만, 충분성과 항상성의 원칙에는 맞지 않는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정부도 ‘긴급재난지원금’ 정도로 용어정리에 한 것으로 보인다. 지급 방식도 매우 긴급한 시기이므로 시민들에게 일괄적으로 주고, 고소득자에 대해서는 세금을 통해 환수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 ‘코로나 정국’ 속에서 21대 4.15 총선을 치렀다. 여야를 막론하고 기본소득 등 복지공약이 나왔지만, 그런 정책이 지켜질지도 의문이다. 비상한 시국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복지와 민주시민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정부와 시민사회에 전할 말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남겨 달라.

▲ 2017년 촛불 시민혁명이 중앙정부의 정치 권력이 바뀌었다. 그리고 지난 지방선거에 지방정부의 권력이 바뀌었고, 이번 총선에서는 의회 권력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언론, 사법, 문화, 교육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이 그 자리를 독식했다.

촛불 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시민들은 사회경제 분야에서 별다른 성과나 변화를 체감하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국회 과반을 점하지 못했기 때문에 법제화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지만, 이제는 진정성과 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번의 4.15 총선은 지난 기간에 대한 중간시험이었고, 결과는 비교적 우호적으로 나왔다. 이것은 정부 여당이 잘했다기보다는 야당의 헛발질이 많았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 여당이 사회개혁과 혁신을 게을리한다면 민심은 급변할 것이다.

금은 코로나 위기 상황이다. 사회안전망도 취약한데, 이 상태로 가게 된다면, 앞으로 상당 기간 어려워질 수 있다. 선거가 끝났지만, 정부 여당의 서민들의 힘든 삶에 진정성을 가지고 혁신적으로 접근해야 하고, 시민들도 끊임없이 개혁과 혁신을 요구해야 한다.

기회는 항상 위기를 동반한다. 시민들이 몰아준 ‘4.15 동력’으로 다시 한번 혁신할 좋은 기회가 주어졌지만, 이번에 온 기회를 놓친다면 ‘위기’는 금방 찾아올 것이다. 지난 참여정부와 같은 실수를 두 번 되풀이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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