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이호준의 ‘사진 이야기’-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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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 이승운

 

[위클리서울=이호준] 좋은 사진가의 요건 또는 사진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좋은 카메라를 갖거나 능숙한 사진 기법을 습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창의적 시각과 철학적 배경 그리고 열정의 지속이 그것이다. 이것들에 비해 장비나 기술은 부차적인 요소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각의 중요성에 눈감고, 철학의 필요성을 외면하고 열정을 등한시 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대중적이고 접근하기가 쉬운 매체이기 때문이다. 모든 게 자동화되어 셔터만 누르면 멋진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의 진실은,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게 아니라 눈과 마음으로 찍는다’는 데 있다. 문제는 사진에 대한 시각, 철학, 열정이 마음먹는 대로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시각은 타고 나야 하고, 철학은 자기성찰의 결과이고, 열정은 흥미와 즐거움을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많은 게 그러하듯 노력하여 도달할 방법은 있기 마련이다. 이미 내 자신 속에 내재돼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발견하고 개발하면 된다.

시각(視角)이란 사전적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거나 파악하는 각도 또는 입장”으로, 사진가가 피사체를 바라보는 방식을 말한다. 같은 위치에서 다른 것을 보거나, 같은 대상인데 남들한테는 안 보이고 나한테만 보이는 것, 그런 게 시각이다. 시각은 타고나는 것으로, 개개인의 마음과 사고에 내재돼 있다. 시각은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다. 사진의 거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지만, 시각만은 그렇지 않다. 훌륭한 사진가의 탁월한 시각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품고 있는 본능적 감각 같은 것이다. 따라서 훌륭한 사진가의 시각을 배운다는 것은 결국 따라하거나 모방하는 것에 불과하다. 배웠다고 생각하는 순간 예술의 정수인 창의성은 증발해버린다. 따라서 시각은 배우려 하기보다 스스로 찾아내고 개발해야 한다. 이미 잘 알려진 시각을 새롭게 재창조할 수 있는가 혹은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창조할 수 있는가, 이것이 사진가에게 주어진 숙명적 과제다. 자신만의 시각을 갖지 못한 채 예술가로 활동하거나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것은 고역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각이 선천적인 것에 반해, 철학(哲學)은 후천적으로 형성할 수 있다. 철학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처해진 환경이나 직접 접한 경험 등을 통해 얻어진 세계관 또는 인생관”이다. 사진가가 무언가를 관찰하고 촬영할 때 취하게 되는 태도 혹은 위치를 말한다. 사진가의 철학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 하더라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위 현장을 찍을 때 사진가가 노동자의 위치에 서느냐 아니면 자본가의 입장에서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진의 의미는 전혀 다르게 전달될 수 있다. 사진은 세상의 특정한 부분을 보여주는데,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는 사진가가 지니고 있는 철학에 따라 달라진다. 철학 없는 사진은 없다. 인지하지 못해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사진가는 미처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사진과 작업에는 작가의 철학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철학은 시각과 달리 배울 수 있다. 철학의 본성은 자신을 뒤돌아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가치와 세계관을 정해 추구하는 것이다. 철학은 마치 내 자신을 위해서 꼭 지켜야 할 규칙을 세우는 것과 같다. 그것은 노력과 학습으로 가능한 일이다.

열정(熱情)은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을 일컫는다. 대개 열정은 한순간 미친 듯이 좋아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열정은 한순간의 감정이나 설렘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열정과 설렘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고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열정은 동인(drive)이다. 어떠한 것을 열심히 하도록 부추기는 원동력이다. 열정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힘들 때가 오기 마련이다. 그것을 이겨내도록 하는 것이 열정이다. 좋아하던 것이 갑자기 하기 싫어질 수 있는데, 그것은 열정이 식어서라기보다 흥미를 잃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열정은 흥미를 잃더라도 유지될 수 있는 마음이다. 따라서 열정은 강도가 아니라 지속성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감정적 흥분을 뛰어넘어 지적 흥분을 경험하는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국 열정의 유지는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처음에는 쉬운데 하면 할수록 어렵다’라는 말이 있다. 사진도 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카메라 성능은 갈수록 좋아지고, 조작법도 사용자 위주로 개선되고 있는데, 그에 따라 사진이 쉬워졌다는 얘기는 듣기 힘들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진은 카메라가 아니라 사진가의 눈과 마음으로 찍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 무엇을 보고 왜 찍고, 어떻게 담을 지를 결정하는 과정은 결코 간단치 않다. 그것도 짧은 순간에 말이다. 그런 복합적 결정의 배후에 시각과 철학이 존재한다. 그러면 사진의 시각과 철학을 어떻게 형성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지만 노력을 통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시각은 자기만의 독특한 시선이고 정체성이다. 유명한 작가들의 시각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도대체 저런 걸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그러니까 작가고 예술가인 것이다! 그들의 시각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참고하고 나의 시각을 찾아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예술의 모습은 독창성과 남다름 그리고 낯섦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나만의 것’을 의미한다. 나만의 보는 방식을 찾아내 구체화하는 수밖에 없다.

철학은 관점이다. 누구에게나 철학은 있지만,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자신의 관점, 즉 세계관을 밖으로 표출시킬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인생관을 되돌아보고, 위대한 사진가들의 작품 감상과 독서 등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낼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낸 세계관에 맞게 사진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그 방향을 지속시켜 자신의 철학을 완성해야 한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자신의 관점과 가치를 규칙으로 만들어 지켜나가는 것과 같다.

제 아무리 창의적 시각과 확고한 철학을 가졌다 하더라도 열정이 없으면 소용 없다. 예술의 원동력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열정이다. 열정이 식으면 재능은 힘을 잃고 성취는 멀어진다. “사진에서는 천재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누군가 말했다. 노력과 열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열정은 시각을 번득이게 하고 철학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준다. 열정의 진정한 힘은 지속성에 있다. 시각과 철학 그리고 열정을 시간이란 그릇에 담아낼 때, 사진가는 좋은 작가로 성장하고 위대한 사진이 탄생하는 것이다. 꼭 작가가 아니더라도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윤택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사진은 세상에 대한 통찰이고 능동적인 자기표현이기 때문이다. 아마추어라고 못할 이유는 없다.

 

이호준(facebook.com/ighwns)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서 2회 수상하고, 세 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 3회를 개최했다. 월간지 <SW중심사회>에 사진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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