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되고 희생된 계층에 대한 분배정의와 복지철학 필요”
“소외되고 희생된 계층에 대한 분배정의와 복지철학 필요”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20.06.1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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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김진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3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 위기의 시대에 신뢰 높은 사회적 복지와 정부-기업-민간 협업도 중요한데.

▲ 우리나라가 유럽의 선진 복지제도를 모방하고 이식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뿌리가 잘 내리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 정책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정부가 어떤 사업을 추진하면, 지원금 따먹기 개념으로 끝난다.

유럽은 사회적 자본, 사회적 신뢰를 기반으로 한 협력체계가 잘 돼 있다. 북유럽의 최근 사례들을 보면, 민간 또는 기업부문에서 아이디어를 내면 정부와 함께 기한을 정해서 실험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문제점을 걸러내고 보완해가면서 확대해 나간다. 우리는 이게 상당히 어렵다. 최근 그런 모델들을 본 따 실험하고 있지만, ‘정부와 민간-민간과 정부’ 간에 신뢰도가 매우 낮아 제도 정착이 상당히 어렵다.

한마디로 아직 체질적으로 내 몸에 맞지 않는 거다. 억지로 제도를 뒤집어씌워 놓을 수 있을 뿐, 지속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문제점들을 걸러내고 좀 더 신뢰를 형성하며 민간과 잘 소통해가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 주입식 교육과 경쟁만 가르쳐온 교육도 문제다. 대학은 많아도 교육의 질이 갈수록 저하되고 일각에서는 자본화된 교육을 지목하기도 한다. 어떻게 평가하나.

▲ 대학들의 교육체계와 운영을 보면, 학생을 독립된 사회 구성원으로 보는 게 아니라 수익원으로 본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건전한 신뢰 관계를 쌓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한때 촛불 정부가 숙의 방식으로 입시개혁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하다 보니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 된 채, 결론을 내지 못했다.

교육도 산업시스템과 서로 깊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왜곡된 구조들은 건전한 경쟁 관계와 사회적 신뢰도를 높여 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 이제는 잘못된 의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당장에 내 문제가 아닐지라도, 내 후대들이 지옥 같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어떤 결과를 맞게 될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 교육이 인간관계 황폐화를 불러온 것 아닌가.

▲ 유럽의 교육시스템과 우리의 교육시스템을 비교하면 너무 차이가 난다. 유럽의 교육환경은 경쟁에 초점을 둔 우리와 다르다. 유럽 아이들은 ‘너와 나는 경쟁자가 아니라, 친구’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는다고 한다.

이게 정상 아닌가. 어려서 노동교육을 받은 유럽의 실업자들은 고용도 실업도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며 누군가가 실업 상태일 때, 국가가 지원해주는 건 당연하다고 인식한다. 우리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

오히려 ‘네가 실력이 없어서 실업자가 된 거지’라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우리의 왜곡된 교육이 그런 인식을 만든 것이다. 어려서부터 워낙 점수 따기 경쟁이 체질화된 데다 왜곡된 교육시스템 때문에 우리의 인식은 그대로 머물러 있다.

 

- 한국의 교육에는 ‘노동교육’이 빠져 있다.

▲ 본래 인간은 태어나면서 노동자로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노동에 대해 전혀 모른다.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노동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웨덴,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어릴 때부터 노동교육이 정규과목으로 되어 있고, 기업에 나가 현장체험 실습까지 한다.

직장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가 회사에 어떤 요구를 할 수 있고, 어떤 권리와 의무를 갖는지를 배운다.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갔을 때 노동조합 설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타협과 설득을 이해하고 발휘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교육이나 의식 자체가 없다. 오히려 노동교육을 배우면, ‘불순해진 거 아냐’라는 태도로 색안경부터 끼고 본다. 웃지 못할 현실이다.

 

- 노동자도 정작 노동을 모르는 현실인데.

▲ 학교에서 노동에 대한 교육만 잘해도 많은 분야에서 괄목할 정도의 사회변화가 올 수 있다. 그동안 노사 간 대화가 막히고 투쟁만 일삼는다는 노사관계에 대한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불행히도 여전히 우리의 현실은 노조설립이나 임금협상, 타협, 권리, 의무 등 노동교육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로 진출해도 노동조합이 뭔지 잘 모른다. ‘노동’을 말하면, ‘불순한 사람’ 또는 ‘좌파’로 보는 인식도 여전히 남아있다.

 

- 무한경쟁 체제에 양극화도 심각하다.

▲ 우리나라의 양극화도 심각하지만, 양극화는 이미 세계적인 문제다. 자본주의가 있는 한 양극화는 피하기 어렵다. 자본의 속성상 부가 계속해서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세계적인 부자들도 자신의 돈을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반복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대해 무엇이 문제인지 들여다 봐야 한다.

과거에는 어느 정도 부의 재분배 시스템이 작동했지만, 신자유주의가 도래하면서 완전한 무한경쟁체제로 전환됐다. 규제들도 함께 마구 풀렸기 때문이다. 규제 완화도 문제지만 경쟁의 속도를 완화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심화 된 만큼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도 그만큼 심각해지고 있다.

 

- 견고해진 노동의 양극화 대안은 없나.

▲ 우리 사회 노동 현장에서의 양극화의 고리는 매우 세부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축돼 있다. 상위 1%의 지배를 받는 노동자들 간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다시 구별된다. 또 남성과 여성, 학력 간의 소득 격차도 달라지고 그 차이는 더 크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중견기업을, 중견기업이 영세기업을 불공정 하도급 형태로 줄줄이 착취해 내려간다.

이런 체계는 골목 상권의 영세 자영업자까지 이어진다. 최상위부터 아래까지 공고하게 체계화된 양극화 체인에서는 어떤 정책으로도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모든 가치가 철저하게 돈으로 환산되는 사회 현실에서 교육이나 철학을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현실이다.

 

- ‘노동시장 경쟁도 갈수록 심화 되는 양상인데.

▲ 지금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이 바로 ‘경쟁’(Competition)이다. 여기서 최고의 가치는 당연히 ‘돈’이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공정 경쟁을 하려면 먼저 ‘기회의 평등’이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경쟁의 무대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면 문제다.

정부가 아무리 훌륭한 정책을 통해 공정 경쟁을 유도해도 이미 기울어진 ‘그라운드’가 공정 경쟁을 방해할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불공정한 경쟁 행태가 만들어진 근원은 보면, ‘노동과 자본 간 분배율’의 불균형에서부터 시작된다.

2016년 우리나라 상위 1% 부자들의 배당소득은 약 75%다. 이자소득은 45%에 이른다. 상위 10%까지 포함하면 배당소득은 약 94%, 이자소득만 92%로 배당소득과 이자소득을 독점한다. 현재 통계가 나온다면 더 심각해졌을 것이다.

 

- 소득 불균형, 더 심화 된 것 아닌가.

▲ 근로소득을 보면 상위 1%가 약 9%, 상위 10%까지는 37%에 이른다. 상위 1% 부자들은 노동을 거의 하지 않고, 다른 노동자들의 노동력으로 살고 있다.

즉 자신이 소유한 ‘부’를 손대지도 않은 채, 배당소득과 이자소득뿐만 아니라 영세 자영업자들의 임대소득까지 노동의 결과물을 챙긴다. 결국, 상위 1%~10%는 가만히 앉아서 나머지 99%~90%의 노동력을 부리고 있다는 의미다. 과거 신분제 사회와 뭐가 다른가.

 

- 마지막으로 노동의 가치와 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대안이 있다면.

▲ 인간은 누구나 노동하며 삶을 살아갈 기본적 권리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다. 그런데 이 사회 시스템은 자의든 타의든 그런 권리를 박탈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미래 투자 행사에서 사회자와 열띤 토론을 벌였던 연사 ‘소피아’가 사우디 정부로부터 세계 최초로 시민권을 부여받았다. 그녀는 인공지능 인간이다. 여성 인권 수준이 낮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인간도 아닌 기계에 시민권을 부여한 사실은 다소 충격이었다.

‘현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철저히 무시된 채 미래로 건너뛰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미래의 기술혁명이 가져올 예측 불가능한 단면이 인류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인간 사회는 ‘뉴 패러다임’이 광범위하게 형성된 이후에야 뒤늦게 문제점을 규제하고 법령을 정비하기에 바빴다.

그 과정에서 소외되고 희생된 사람들을 이해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서 ‘중심과 본질’을 놓치면 안 된다. 부의 분배와 행복 나눔 방식의 중요성을 되새겨야 한다. 분배와 행복은 누가 누구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누려야 할 당연하고도 고유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철학이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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