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 경보음 여전

[위클리서울=왕명주 기자] 코로나19의 여파가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전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3%를 기록하며 8개월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한 데 이어 두 달 연속 ‘초저물가’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의 영향력도 확인됐다. 이로 인해 수요가 늘어난 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는 되레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우리 경제 전반을 뒤덮고 있는 코로나의 악몽을 살펴봤다.

 

ⓒ위클리서울/ 왕성국 기자
ⓒ위클리서울/ 왕성국 기자

‘초저물가’ 상황에서 ‘밥상 물가’만 꿈틀거렸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4.76(2015년=100)으로 지난해 같은 달과 소숫점 첫째 자리까지 같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0.01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달에 이어 초저물가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국제 통계 기준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표시하는 기준이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기 때문에 0.0%로 보는 게 정확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개월 연속 1%를 밑돌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3월 1%대로 올라섰지만, 4월 다시 0%대로 떨어졌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5월엔 마이너스(-0.3%)로 떨어졌다.

코로나19와 함께 국제유가 급락으로 인해 석유류 가격이 대폭 하락한 데다 고교 무상교육 실시로 공공서비스 물가가 떨어진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가구 물가도 상승

품목별로 보면 코로나지원금 지급 효과로 농·축·수산물 가격은 4.6% 상승했다. 농산물(0.5%) 축산물(10.5%) 수산물(6.9%) 가격 등이 모두 크게 오른 가운데 돼지고기·소고기를 중심으로 한 축산물 가격 오름세가 눈에 띄었다.

통계청은 "축산물 중 돼지고기(16.4%), 국산쇠고기(10.5%)가 많이 올랐고 내구재 중에는 쇼파(12.1%), 식탁(10.8%) 등 가구 물가가 올랐는데 코로나지원금 효과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근원물가)는 0.6% 올랐다. 근원물가는 계절 요인이나 일시적인 충격에 따른 물가변동분을 제외하고 장기적인 추세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하는 지표로 '경기 온도계'로 불린다.

하지만 이번달 상승에는 코로나지원금 지급으로 축산물과 가공식품 가격이 오른 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경기 회복의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통계청은 7월 물가도 지난달과 엇비슷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계자는 “6월까지 오른 국제유가가 7월 물가에 반영되면서 석유류 가격이 상승할 것 같다”며 “소매판매가 조금 살아나고 서비스업 생산이 늘어나 수요 증가가 일부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물가상승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하락 요인은 교육부문 공공서비스 가격 하락, 사회적 거리두기 지속으로 인한 수요 감소"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마스크 가격은 안정세를 이어간 것으로 분석됐다. KF94 마스크의 오프라인 가격은 1600원대, 온라인은 한달 전(2700원)보다 600원 내린 2100원대로 각각 집계됐다.

통계청 관계자는 "비말 차단용 마스크는 6월 3째주부터 온라인 가격을 조사한 결과 500∼1000원 내외에서 판매되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 판매하는 곳이 많지 않아 정확한 가격을 제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긴급재난지원금과 축산물 가격 상승 등으로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보합을 기록하며 한달 만에 하락을 멈춘 것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근원물가가 여전히 0%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안형준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지난달 돼지고기와 소고기 가격이 많이 올랐다"며 "내구재 중 가구 가격이 오르는 등 재난지원금 효과가 제한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석유류는 국제유가 상승 전환에도 여전히 물가를 끌어내렸다. 휘발유(-13.8%), 경유(-19.3%), 자동차용LPG(-12.1%), 등유(-16.2%)가 모두 하락폭이 컸다.

고등학교 납입금도 전년동기 대비 68% 하락했다. 재난지원금 효과에도 외식 가격이 0.6% 상승에 그치는 등 거리두기 영향도 있었다. 지출목적별 지수 중 교통물가는 5.6% 하락했으며 오락 및 문화는 0.9% 하락했다.

겉으로만 보면 소비자 물가지수는 일년 전과 비슷한 상황이다. 한편에서 디플레이션을 염려하는 이유다. 전반적인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의 지갑이 닫힐 가능성이 적지 않다.

통계청은 그간 물가 하락을 이끌던 석유류 가격 감소폭이 다소 둔화된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은 “국제유가가 지난 4월 저점을 찍고 5월부터 오르기 시작했다"며 "그 영향이 4주 정도의 시차를 두고 지난달 국내 유가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전국민에게 최대 100만원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도 물가를 끌어올리는데 일부 기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로나’의 그림자

재난지원금 사용이 많았던 돼지고기와 한우 가격은 각각 16.4%와 10.5% 오르는 등 축산물 물가가 가장 큰 10.5% 상승했다. 소파(12.1%)와 식탁(10.8%), 장롱(3.3%) 등 가구 가격도 올랐다.

통계청 관계자는 “외식 물가 상승률이 0.6%에 그친 점 등을 감안할 때 재난지원금 소비가 물가 상승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재난지원금 영향으로 음식·숙박업 생산이 14.4% 증가했는데 이번에 외식 물가 상승률은 0.6%에 그쳤다"며 "물가는 산업활동동향보다 후행지표라 재난지원금 효과가 조금 더 늦게 반영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공공서비스 물가는 석유류 다음으로 하락폭(-2.0%)이 컸다. 고등학교 무상교육 확대 영향으로 고등학교납입금이 68.0% 감소했다. 개인서비스로 분류되는 학교급식비는 63.0% 하락했다.

서비스 물가 중 전세와 월세는 각각 0.2%와 0.1% 올랐다. 전·월세 가격은 마이너스 상승률을 나타내다가 지난 5월부터 상승으로 전환해 오르는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간 비교가 가능한 '식료품 및 에너지제외지수'는 0.2% 상승했다.

체감물가를 파악하기 위해 전체 460개 품목 중 자주 구매하고 지출 비중이 큰 141개 품목을 토대로 작성한 '생활물가지수'는 0.3% 하락했다. 소비자물가에 소유주택을 사용하면서 드는 서비스 비용을 추가한 자가주거비포함지수는 보합이었다.

통계청은 7월을 비롯 올 여름 전망도 내놨다. 통계청은 “6월까지 오른 국제유가가 7월 물가에 반영되면서 석유류 가격이 상승할 것 같다”며 “서비스업 생산이 늘어나며 수요 증가가 일부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물가 상승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하락 요인은 교육부문 공공서비스 가격 하락, 사회적 거리두기 지속으로 인한 수요 감소"라고 설명했다.

한편에선 소비자 물가 성장률은 0%대인데, 체감물가는 높다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소비자물가는 전체 가구가 소비하는 상품과 서비스 460개를 대상으로 측정하는데 반해 개별 가구는 이 품목 중 일부만 소비하는 경우가 많은게 한 이유로 지적된다. 기름값 하락의 경우 저물가에 영향을 미치지만, 자동차가 없는 가구는 체감하지 못한다.

대체로 소비자물가는 구입 빈도를 고려하지 않고 산출하는데 반해 체감물가는 소비자들이 자주 사는 품목의 가격 변동에 영향을 받는다.

코로나19로 인한 도미노 물가 인상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우유 값이 오를 경우 아이스크림, 빵, 과자 등의 인상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낙농가와 유업계는 5차례 원유 가격 인상 여부를 논의했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14조원이 넘는 재난지원금이 투입되는 등 코로나19는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무엇보다 아직 현재진행형이어서 미래는 불투명하다. 한국 경제에 드리워진 코로나19의 그림자가 사라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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