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소주로…
다시 소주로…
  • 류지연 기자
  • 승인 2020.07.1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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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류지연의 중국적응기 '소주만리'- 다시 소주 1부
짐가방에 열심히 소독약을 뿌리는 공항 직원들. 중국에 도착한 순간 잠재적인 바이러스 보균자 취급을 받아야 한다.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2020년 6월 22일. 소주를 떠난 지 만 5개월 쯤, 하루가 열흘처럼 길었던 날들을 뒤로 하고 드디어 국경을 넘었다.

국경을 넘기까지는 순탄치 않았다. 5월 중순, 남편의 회사에서 한국에 발이 묶인 가족들을 위한 초청장 발급을 신청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3월 28일 중국의 전면 국경봉쇄 이후 한-중 양국 정부가 기업인 등을 위한 패스트트랙 제도에 합의했다고 들었지만, 실제로 패스트트랙을 통해 입국했다는 소식은 드물었다. 국가 차원에서 정책의 발표가 있더라도 실제 시행은 지방정부별로, 담당자별로 제각각이기 때문에 어떤 도시들에서는 아예 패스트트랙 제도 자체를 모른다며 일체 문의를 받지 않는 곳들도 있다고 했다. 다행히 소주시의 남편 회사가 속한 소주공업원구에서는 초청장 가능성은 열어두되, 가족 초청장 발급은 최초 시도(구 내에서)이기 때문에 핵산검사 결과를 먼저 제출하면 승인해주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5월 15일.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 부랴부랴 핵산검사를 위해 서울의 모 병원을 찾았다. 온라인에도 핵산검사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아 어느 정도의 난이도일지 감이 오지 않았다. 기초문진 후 기나긴 대기 끝에 야외의 검사장소로 안내되었다. 코와 입에 각각 면봉처럼 생긴 기다란 채취 기구를 넣어 검체를 채취하는데 난이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코는 독감 검사를 떠올리며 애써 자위했지만 독감 검사보다 어림잡아 2배 정도의 깊이로 거의 목까지 손잡이를 밀어 넣는 느낌이었다. 목은 입을 벌리고 ‘아’를 계속 말하라고 하며 목구멍을 긁어내는데, 얼마나 깊이 넣는지 구역질 두세 번은 기본이다. 어른인 나도 눈에 눈물이 찔끔 맺히고 구역질을 하다 입가에 침이 흐르는데 아이들은 그 고통이 어떠하랴. 7살인 딸아이는 용감하게도 나보다 먼저 받길 자원했지만 눈물과 비명 속에 힘겹게 검사를 마쳤다.

검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비행기를 타기 72시간 내에 핵산검사를 한 번 더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한번 겪어봐서 그 고통이 더 생생할 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딸아이에게 얘기할 생각을 하니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래도 3개월이 넘는 난민 생활을 이제는 청산할 가능성이 생겼다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이 됐다.

그 후 5월은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초청장 발급을 대비해 비자 발급에 필요한 서류들을 이것저것 준비해서 남편 회사로 보내고, 주 1회뿐인 인천발 상해행 비행기표가 구해졌는지 수시로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비행기표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는 소식을 진작 들었기에 개인적으로 예약을 하는 건 거의 포기하고 남편 회사를 통한 예약 소식에 기대야 했다. 5월 31일이라던 예정 일자는 6월 5일, 6월 12일로 점점 넘어갔다. 초청장은 5월 28일에 발급됐지만 일반항공편을 통한 입국은 요원해 보여 남편 회사에서는 주재원들이 전세기를 강력하게 요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전세기 역시 준비 과정과 함께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빨라야 6월 중순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5월 1일부터 친정에서 독립해 공유숙박을 이용하고 있었다. 숙소를 언제까지 연장해야 할지, 6월로 넘어가면서 이미 다음 예약 때문에 연장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새로운 숙소를 구해 언제까지 묵어야 할지 점점 피로감이 커졌다.

6월 8일. 새로운 숙소로 옮겨 며칠이 지났을 무렵 비자 발급 소식을 들었다. 이제 마지막 관문인 항공편만 구해지면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너무 오래 희망에 목말랐기에 희망이 꺾일 때를 대비해 더 이상 희망을 품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세기가 만에 하나 다른 변수들에 의해 어그러지고 7월까지도 못 돌아가면 이젠 정말 회사 근처로 돌아가 집을 얻고 복직해야겠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전세기 날짜에 대한 희망도 두 번 정도 꺾인 이후 6월 18일, 기적처럼 전세기 확정 소식을 들었다. 6월 22일 인천발 우시행으로 오전 10시50분에 출발하는 항공편이었다. 비행편이 확정됐으니 이제 다시 공포의 핵산검사를 할 차례다.

6월 20일. 다시 서울의 모 병원을 찾았다. 전세기를 타는 백여 명 넘는 인원들(가족들, 출장자 및 협력업체 직원들)이 모두 검사를 받기에 야외 검사장소는 소란스러웠다. 장소가 야외라 다른 이들이 검사받는 걸 바로 뒤에서 볼 수밖에 없는데 딸아이와 동갑인 한 여자아이가 도살장에 끌려온 소 마냥 발버둥치고 울부짖으며 검사를 거부하는 걸 보니 코끝이 찡했다. 딸아이도 검사를 받기 전부터 울긴 했지만 다행히 이번 검사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건지 저번보다 찌르는 시간이 짧았다. 그래서 그런지 고통도 조금은 덜했다.

6월 22일. 드디어 중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공항에서 8시 집합이기에 새벽 5시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숙소를 나섰다. 공항에 도착해 다른 가족들을 보니 한국에서의 긴 세월을 엿볼 수 있게 저마다 짐가방이 카트 두어 개에 빼곡하다. 내 경우는 한국에 올 때 이민가방 한 개와 큰 여행가방 한 개를 가져왔는데, 돌아갈 때 호텔격리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짐가방 개수를 늘리면 이동이 어렵다는 계산 하에 봄 옷, 여름 옷도 딱 두 세 벌씩만 사며 지냈다. 그래도 늘어난 생활짐들은 어쩔 수가 없어 미리 중국으로 두 상자 정도 택배를 보냈었다.

오랜만에 온 공항은 한산하지만 예상처럼 멈춰있지는 않았다. 손님이 있을까 싶은데도 면세점들은 대부분 열려있었다. 가장 눈에 띈 이들은 체크인 카운터 앞에서 노숙자처럼 짐가방을 풀어두고 담요를 꺼내 덮고 앉은 네 명의 중국 아가씨들이었다. 유럽 등지에서 중국행 비행편을 못 구한 이들이 한국으로 들어와서 공항에서 대기하다가 당일 취소표가 발생하면 그걸 잡아 중국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마 그런 이들인 것 같았다. 좌석 한 구역에 풀어헤쳐 쌓아둔 용품들을 보면서 그들의 기다림이 결코 짧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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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부터 한 번도 닦지 않고 쓴 듯한 느낌의 격리자용 버스. 사진 속에 더러움을 다 담을 수 없어서 아쉽다.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짧은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중국 공항에 착륙했다. 창밖으로 짐가방을 내리는 요원들이 보인다. 온 몸을 덮는 방호복을 입고 비행기에서 나오는 짐가방마다 대량의 소독약을 살포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지 않아 입국절차는 금방 끝나고, 핵산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틀간은 호텔에서 격리한단다. 우리를 호텔로 실어 나를 버스에 올라탔다. 일반 시내버스 차내 중간에 격벽을 설치해서 운전자와 탑승자를 분리시켰는데, 코로나 임시용으로 어디서 폐차된 차를 끌어왔나 싶을 만큼 차내의 더러움은 절정 그 자체였다. 바닥부터 천장, 의자, 손잡이 등 가릴 것 없이 검은 때가 꼬질꼬질 끼어있고, 창문을 닫아둔 차내에는 심한 악취가 배어있었다. 공기순환을 염려해서인지 에어컨 구멍도 막아놨는데 창문까지 열리지 않아 타자마자 땀이 줄줄 흘렀다. 호흡기를 쉴 새 없이 공격하는 차 속에서 30분쯤 지났을까. 호텔 치고는 아담한 규모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출발한 탓인지 그래도 늦은 점심식사 시간쯤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2부에서 계속>

<류지연 님은 현재 중국 소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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