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서영남 겨자씨의 집 대표(前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수사(修士))-3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서영남 겨자씨의 집 대표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서영남 겨자씨의 집 대표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 ‘마지막 순간’에서 변화를 받는다는 말인데.

▲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형수’가 되면, 평소에 쳐다보지도 않던 창문 넘어 바깥의 자연을 보며 꽃이 피고 지는 무상하게 계절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인생의 허망함과 덧없는 세상을 깨닫는다.

사형수라는 특수한 환경과 자연을 통해 감회를 받으며 변화하는 것 같다. 보통 사형수들은 깡패조직에 있었거나,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살아온 과정도 평범한 사람들과 상당히 달랐다. 특히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이 불우했다.

가난해서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던 10대 시절 교만이 극에 달해 있을 때, 나쁜 친구 만나면서 잘못되거나, 중범죄를 저질러 인생을 망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비록 어둡고 깊은 감옥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가운데서 점차 밝게 바뀌는 모습을 본다.

 

- 이외에 다른 사례가 있다면.

▲ 해마다 대구교도소에 있는 40대 초반의 한 사형수를 만나고 있는데, 초등학교도 못 나온 형제다. 그런 그가 지금은 독학으로 경영학과 가정학, 국어국문학 등 세 개의 학사 과정을 거뜬하게 마쳤다.

사형수지만 인쇄 일을 하면서 얼마나 밝게 사는지 상상도 못 할 정도다. 그 친구는 원불교 신자가 됐다. 서울구치소에 있는 또 다른 사형수도 매년 만나는데, 얼굴이 진짜 해맑다. 생각하는 것도 맑다.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그렇게 변화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옛날에 서울구치소 장기수모임에 갈 때, 가장 먹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보신탕을 먹고 싶다고 해서 수육도 마련해 주면서 정이 많이 들었던 일이 새롭다.

 

- 기억에 남는 특별한 사람이 있는지.

▲ 장기수 중에 광주교도소에 Y라는 분은 지금 나이가 50인데, 사람을 죽인 무기수다. 20년 전쯤에 내가 수도원을 나와 있을 때, 수중에 가진 것이 없는 신세였지만, 그때도 교도소에 면회를 다녔다.

이외에 여러 재소자와 모임을 하고 나면, 만원이라도 영치금을 넣어 줘야 하는데 그때는 가진 돈이 없었다. 당장에 돈을 못 주지만, 나중에 돈을 마련해서 보내주기로 약조를 하고 우편으로 돈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때 10여 명에게 돈을 보냈는데, 그중에 딱 한 사람이 고맙다는 편지를 보냈다. 바로 Y라는 형제다. 이분은 제주도가 고향인데 한때 고향에서 유명한 주먹잡이였다. 몇 년 전 제주도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Y라는 사람을 잘 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택시비도 받지 않았다. 그 정도로 제주 사람에게 유명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Y는 계모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렇게 싫었다고 한다. 천주교인이 된 그는 새사람으로 변화되어 미워했던 계모를 이제는 어머니로 모시고 있다.

 

- ‘종교’에 귀의해 회심하는 사람이 많은가.

▲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종교가 사람을 완전하게 바꾸지 못한다. 인격적인 만남이 중요하다. 사람은 내가 잘해 준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어렵다. 종교를 가졌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종교 때문에 더 나빠질 수도 있다. 보통 구치소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거의 다 열심히 기도하고 염불하고 찬양을 부르는데, 대부분 그들은 ‘염불보다 잿밥에 마음’을 두고 있다.

갑자기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종교를 믿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물에 빠졌던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고, 물에서 나오면, 지푸라기는 귀한 존재가 아니다. 결국은 버리고 만다.

 

- ‘지푸라기 잡는’ 종교가 위험하다는 지적인데.

▲ ‘지푸라기’는 결국에 끊어진다.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재소자 형제들을 만날 때마다 ‘종교를 가져라’, ‘믿어라’ 하지 않는다. ‘지푸라기는 잡지 말라, 밧줄을 잡으라’고 말한다. 지푸라기는 사람을 살릴 수 없다.

‘밧줄’은 사람을 살린다. 밧줄 같은 종교라면 상관은 없다. 종교는 본인이 가장 행복하고 기쁨에 차 있을 때 선택하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동화된다. 진정으로 행복하고 사랑에 충만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줄 수 있다.

사랑하면 자기가 가진 물질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 계산하지 않는다.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용돈 줄 때, 계산하는 사람은 없다. 남편이 사랑하는 부인에게 월급봉투 내놓을 때, 계산 안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정말 자신이 기쁘고 행복하고 평화스러울 때 인생을 걸 수 있다. 내가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선택한 종교가 아니라, 나를 어떻게 하면 내놓을 수 있나가 중요하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게 진정한 종교다.

 

- 오랜 기다림과 존중이 필요한 것 같다.

▲ 말했듯이 종교는 내가 기쁘고 행복이 충만할 때 선택해야 올바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위급할 때, 불행할 때 ‘아이고, 하느님 도와주세요!’ 같은 절박한 심정으로 종교를 갖는 것은 지푸라기를 잡는 것과 같다.

나는 노숙인 형제나 재소자 형제들이 변화하도록 조급해하지 않는다. 인내심을 가지고 늘 기다린다. 혼자 있도록 배려해주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해준다. 무시하거나 기를 꺾는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변해 있다.

그동안 자신 안에만 갇혀 살아왔던 이들이 나를 이해해주고 사랑하는 사람이 늘 옆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굳었던 마음이 눈 녹듯이 녹는다. 김남주 시인의 ‘사랑’이란 노래에서처럼 수도원같이 그 좋은 곳에서 살아도 안 변하는 사람이 있다. 오래 기다려줘야 한다.

 

- 코로나바이러스로 ‘손님’이 전보다 많이 늘지 않았나.

▲ 최근 세계적인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실업자가 늘고 갑자기 어려워진 사람들이 전보다 늘어난 것 같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도 그렇지만, 코로나 같은 전염병(Epidemic)이 창궐하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려움을 당하는 계층은 항상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다.

실업자가 늘고 있지만, 보통 노숙인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거리의 노숙인도 있지만, 여관이나 찜질방 등에서 보이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거리의 노숙인보다 조금은 여유가 있지만, 몸이 갑자기 아프거나 일거리가 없어지면 언제 길거리로 내몰릴지 모른다. 그런 사람도 거의 노숙자로 봐야 한다.

 

- 2006년 교정위원에 위촉됐다.

▲ 그동안 105차례 동안 전국의 재소자 1,700여 분과 만나면서 천주교 자매결연과 수용자 교정-교화에 노력을 해왔다. 1994년부터 전국에 있는 무연고 장기수들을 면회하고 편지를 나누고 영치금을 지원했다. 이들에게 좀 더 안정적인 수용 생활을 도모하고 속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교정위원을 맡게 됐다.

 

지난 9일 서울신문과 법무부, KBS 주관으로 열린 제38회 교정대상식에서 자애상을 수상한 서(1)
지난 9일 서울신문과 법무부, KBS 주관으로 열린 제38회 교정대상식에서 자애상을 수상한 서영남 대표

- 지난 7월 교정대상 부문에서 자애 상을 받았다. 어떤 상인가.

▲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서울신문과 법무부, KBS가 공동 주관한 제38회 교정대상 시상식에서 교정공무원과 교정 관련 인사들이 수상했다. 교정위원으로서 과거에 법무부 장관상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교정부문에서 자애(慈愛) 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교정대상은 종교별로 나누어 시상한다. 기독교는 박애 상, 불교는 자비 상, 천주교는 자애 상으로 구분해서 각각 2명씩 추천해서 상을 준다. 부상으로 500만 원을 받았지만, 22% 세금 110만 원을 내고 모두 다 쓰고 없다.

청송교도소 재소자 100명에게 1인당 3만 원씩 영치금으로 나눠 드렸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사실은 이게 가장 효과적으로 돈을 잘 쓰는 방법이다. 사회에서 3만 원은 껌값이지만, 재소자에게 3만 원은 1백만 원의 가치가 있다.

돈 없는 사람은 그 안에서 단돈 만 원도 쓰지 못한다. 화장지도 사고 가끔 간식도 먹어야 하지만, 없는 사람에겐 이마저도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최소한의 생필품은 법무부에서 지급되는데, 그 상한선을 넘는 물품은 개인 돈으로 사야 한다.

 

- 향후 계획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전해 달라.

▲ 별다른 앞으로의 계획은 없다. 단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 주는 게 평소의 철학이고 나의 일이다. 내가 만나는 재소자마다 마음을 바꾸겠다는 것보다 늘 옆에 함께 있어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외롭고 힘들게 살아온 이들에게 옆에 있어 주는 역할만이 내가 할 일이다. 아플 때나 힘들 때나 친구처럼 항상 곁에 있어 주고, 함께 하는 일 외에 특별한 일은 없다. 이분들에게 ‘고난이 클수록 더 큰 영광이 다가온다’는 키케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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