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치랴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치랴
  • 류지연 기자
  • 승인 2020.08.03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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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류지연의 중국적응기 '소주만리'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근 20여 년간 ‘오락실’이라는 곳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고등학생이나 대학 신입생 시절 학교 앞 오락실에서 버블보블 등의 스틱 게임이나 DDR(Dance Dance Revolution, 1998년 일본 코나미사가 개발한 최초의 발로 누르는 댄스 게임), 펌프(정식 명칭은 Pump it up, 1999년 국내 안다미로 사에서 개발한 댄스 게임)같은 리듬 게임 등을 한창 즐기던 때도 있었지만 그 시절을 지나면서부터는 왠지 모르게 ‘오락실=어둡고 화장실이 더러우며 담배 냄새가 나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겨 발걸음 해 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7살 딸아이의 손에 이끌려 오락실을 다시 찾게 될 줄 어찌 알았으랴.

시작은 올봄, 한국에 있을 때였다. 친정 근처에는 제법 큰 먹자골목이 있고 이런저런 유흥거리들이 모여 있다. 그 골목 중간에 커다란 게임 센터가 있는데 스펀지밥 캐릭터를 활용한 두더지 게임이 밖에 놓여 있었다. 스펀지밥 만화에 익숙한 딸아이는 가서 게임을 해보자고 졸랐다. 게임 센터는 아이들이 갈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번 둘러나 보자 싶어 발을 들여놓았다. 다소 어둑한 실내에는 대형 게임기, 뽑기 기계들이 줄지어 있었고 생각보다는 깨끗했지만 유아에겐 금단의 구역이 확실했다.

그런데 중국에 오니 놀랍게도 아동 전용 오락실 체인이 있다! 얼마 전 대형 쇼핑몰을 갔다가 유아층을 돌아다니던 참이다. 알록달록 동물 캐릭터로 외관이 꾸며진 상점이 있어 실내놀이터인가 하고 들여다보니 게임 기구들이 들어선 오락실이다. 딸아이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널찍한 실내에 뽑기 기계부터 유아용 놀이기구(탈 것), 스틱 게임, 리듬 게임, 미니 스포츠(농구, 볼링, 테이블하키 등), 슬롯머신 같은 사행성 게임까지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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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4) 오락실 풍경. 한국의 오락실과는 사뭇 다르게 밝고 오색찬란하다. 탈 것도 제법 다양하게 갖춰져 있는데 금액은 15~20위안(한화 약 2600원~3400원)이다. 총 대신 물을 쏘는 게임과 물고기를 직접 잡는 게임은 새롭게 느껴졌다.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게임기에 현금을 넣지 않고 먼저 회원가입 후 계산대에서 일정 금액을 내고 카드에 점수를 충전해야 한다. 1점=1위안(한화 약 170원)인데 최소 충전금액은 100위안(한화 약 1만7000원)이고 (놀이기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게임기는 한 판에 2점이나 3점이다. 충전한 카드를 게임기에 부착된 카드리더기에 꽂고 버튼을 누르면 점수가 차감되면서 게임이 활성화된다.

게임 한 판당 금액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바꿔서 생각하면 중국 현지 물가를 고려할 때 싼 편은 아니다. 그리고 무서운 점은 일일이 현금을 낼 필요가 없다 보니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거다. 한국이었으면 1000원 짜리 몇 장이나 5000원 짜리 지폐를 한 번 동전으로 바꿔서 놀게 해 준 후에 현금이 없다는 핑계로 금세 나올 수 있는데 여기는 아이 혼자 카드를 쥐고서 이 기계 저 기계 잘 꼽으며 돌아다닌다. 더군다나 이미 돈에 대한 개념이 빠삭해져서 다 쓰면 더 충전해달라고 한다.

중국의 규모의 경제는 오락실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2층에 걸쳐 자리 잡은 오락실은 회전목마, 기차, 풍선비행, 스윙 같은 다양한 놀이기구부터 한쪽엔 커다란 실내놀이터까지 그야말로 대형 공원이다. 나중에 궁금해서 해당 브랜드인 卡通尼乐园(kătōngní lèyuán, ‘cartoony’를 음역한 글자에 놀이공원을 뜻하는 ‘낙원’을 붙인 이름)의 누리집을 찾아보니 1200~4000㎡(363평~1210평)의 면적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2002년에 설립됐으며 12세까지의 아동을 위한 가족 중심 오락공간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소주에는 총 6개의 지점이 있고, 최초 설립지인 상해에는 20개의 지점이 있었다.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卡通尼乐园의 점포 전경. 80개 이상의 주제로 운영된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실내놀이터/실내체험관에 카페형 식당과 오락실이 결합된 버전이다. (사진 출처: 공식 누리집 www.cartoonyworld.com)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생각해보면 근 20년 전에 아동 전용 오락실을 만들었다는 부분이 참으로 놀랍다. 우리나라에서도 근 몇 년간 뽑기방 등이 성행하면서 비교적 어린 연령까지 오락실 이용자가 확대되긴 했으나 초등학생 이하가 가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오락실은 매우 드물지 않을까 싶다. 중국이 1980년부터 2015년까지 35년간 추진한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인해 한 아이에 여섯 명의 양육자(부모 두 명+양가 조부모 네 명)가 붙어 아이를 ‘소황제’처럼 받든다는 이야기가 한국에도 많이 알려졌는데 그래서 유아 관련 시장이 우리보다 더 빨리, 더 다양하게 성장한 게 아닌가 싶다.

특이한 게 중국은 대형 쇼핑몰을 가면 유아 층에는 반드시 기차라든가, 회전목마 같은 탈 것이 있다. 그리고 팝업스토어 같은 형식으로 쇼핑몰의 중심부에 임시 실내놀이터가 개설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한 번 타거나 노는 금액으로는 상당히 비싸지만 졸라대는 아이들을 안 태워주기도 난감한지라 부모 지갑 여는 법을 잘 아는 술책이라고 해야겠다.

오락실에서 한 시간이 좀 넘게 머물렀더니 150위안(한화 약 2만6000원)이 금세 사라졌다. 아이는 다음 주에 또 오자고 한다. 재방문을 부르는 교묘한 상술은 게임이 끝나면 나오는 엄지손톱만한 작은 표딱지다. 게임의 종류와 결과에 따라서 그야말로 무작위로 표딱지가 쏟아져 나오는데 이걸 차곡차곡 모으면 계산대에서 다양한 상품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런데 한 시간 넘게 돈을 썼어도 나오는 표딱지는 330장뿐이다. 330장이면 무지 많은 건가 싶은데 카운터에 가보니 그걸로 바꿀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작은 수첩, 풀, 스티커 1장 정도다. 앞에 선 가족을 보니 얼마나 오락실에 자주 왔는지 모은 표딱지가 무려 9000여 장이다.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표딱지로 바꿀 수 있는 물건들. 좀 괜찮아보인다 싶으면 몇 천 장을 내야 한다.
표딱지로 바꿀 수 있는 물건들. 좀 괜찮아보인다 싶으면 몇 천 장을 내야 한다.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새로운 놀이공간을 발견한 것에 기뻐해야 할까, 아니면 도박으로 가는 지름길에 발을 잘못 들인 걸까. 부모 노릇은 정답이 없어 참 어렵다. 

<류지연 님은 현재 중국 소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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