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탐욕으로 지배된 세상
인간의 탐욕으로 지배된 세상
  • 김은영 기자
  • 승인 2020.08.04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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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주제 사라마구의 장편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 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스틸컷 ⓒ위클리서울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스틸컷 ⓒ위클리서울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무엇일까

어느 도시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번잡한 어느 출근길 아침, 파란 불 신호등이 켜졌지만 선두에 선 차는 멈춰있었다. 심지어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도로로 뛰어들었다. 그가 한 말은 “눈이 안 보여”라는 외마디 비명이었다.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장편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눈이 하얗게 멀어버리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더욱이 이 병은 바이러스와 같이 전염이 된다. 어떻게 전염이 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처음 백색실명(白色失明)이 된 남자가 발견된 후 남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병은 빠르게 퍼진다. 하지만 이 남자가 최초의 바이러스 유포자인 지는 확인할 수 없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속과 같이 ‘하얀 실명 바이러스’가 유행하게 된다면 어떨까. 소설 속 상황은 신종 코로나감염증바이러스-19(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팬데믹(Pandemic) 현상을 겪고 있는 지금 현실과 많이 닮았다.

 

모두가 눈이 보이지 않는 세계,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느 날 갑자기 모두가 눈이 멀어버린 도시. 여기 오직 한 명의 여성만이 이 비극에서 빗겨 나 있다. 운전을 하다 눈이 먼 남자를 진료한 의사의 부인이다. 그는 보이는 눈을 선의를 위해 사용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세상을 지배하고자 한다.

상상해보자. 모두가 눈이 보이지 않는 세계가 됐다. 일부는 아직 눈이 멀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언제 바이러스가 퍼져 눈이 멀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정부가 시도한 것은 전염병을 막기 위해 병자들을 격리 수용하는 방법이었다. 이것은 효과가 있다. 전염병은 예로부터 비말이나 배설물, 체액 등 환자의 몸에서 나온 것에서 퍼졌다.

의사와 의사 부인은 외곽의 정신병원에 격리 수용된다. 남편을 돕기 위해 부인은 자신이 실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긴다. 이들이 도착한 격리시설은 참담한 곳이었다. 애초에 이곳은 사람이 지낼만한 곳이 아니었다. 더욱이 눈이 보이지 않는 이들이 장소를 가려 대소변을 볼 수도 없는 사정이다 보니 위생 상태는 갈수록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어쩌면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중에는 침대인지 화장실인지 구별이 가지도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장편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위클리서울/ 해냄
주제 사라마구의 장편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위클리서울/ 해냄

하지만 이것은 작은 불행에 불과했다. 격리된 환자들은 더욱 끔찍한 일을 겪어야 했다. 군인들은 정신병원 바깥을 총으로 지키며 환자들이 이탈하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그들이 주는 음식을 배급해줬다.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불편은 잠시, 인간의 더 큰 보이지 않는 탐욕이 이들의 세계를 사로잡았다.

힘을 내세워 음식을 강탈하는 이들이 생겼다. 하지만 이들을 응징할 공권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정부는 환자들을 치료할 의지도, 여력도 없었다. 환자들을 지키던 군인들은 자신도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무서워 총을 난사했다. 총에 맞아 죽어나가도 어디에 하소연할 수 없었다. 한 마디로 ‘무정부’ 상태였다.

가상에 의한 허구에 불과하지만 아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번진다면 우리는 언제나 ‘무정부 상태’가 될 수 있다.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보자면 국가라는 존재가, 국가 원수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보이지 않는 자들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은 보이는 자에게 있다. 사람들에게 배급되던 음식을 빼앗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약탈자들에게는 주먹이 법이다.

음식에 이어 여성들에게 성상납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의사 부인은 통쾌한 응징을 보여준다. 약탈자들의 우두머리를 살해한 것은 정당방위의 행위였다.

가까스로 정신병원을 탈출한 의사와 부인 일행은 두 번째 시련에 봉착한다. 바깥은 이미 정신병원과 다르지 않은 아비규환의 지옥이었다. 사람들은 은행과 상점 등을 닥치는 대로 털었고 음식을 뺏기 위해 사람들을 죽였다.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외형을 신경 쓰는 이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쓰고 활보하는 사람들은 오직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지금의 현대인은 어떠한가. 우리는 남에게 보이는 외형을 치장하기 위해 옷을 사고 화장을 하고 신발을 사고 보석과 가방을 산다.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 되면 아무도 그런 물건에 탐욕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생존이 최고의 미덕이며 삶의 목적이다.

하지만 더 끔찍한 것은 외형을 신경 쓰는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외형은 물론 아무도 내면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멈춘 도시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이었다. 인간의 내면은 파괴됐다. 인간의 존엄성은 상실됐다. 누구나 자신만을 위해 죽이고 뺏고 먹었다.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도시, 그래도 인간애는 살아 있다

거리는 더러운 오물과 죽어가는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악취로 가득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말고도 또 다른 전염병이 돌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이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이렇게 참담하고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의사 부인은 슬기롭게 행동한다. 그는 자신의 집으로 일행을 인도해 먹을 것을 나누고 깨끗하게 빨래를 하고 쉴 수 있도록 해준다. 적은 양의 음식을 똑같이 나누면서 같이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비가 폭우처럼 쏟아지던 날 베란다에서 옷을 전부 벗고 여자들이 함께 거품 빨래를 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시원한 영상미가 눈앞에 펼쳐진다.

눈이 보이지 않는 자들 사이에서 인간애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눈이 보이기 때문에 더욱더 곤혹스러운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남편 외에 병동에서 데리고 온 오갈 데 없는 눈먼 자들을 돌보며 끝까지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가장 큰 미덕은 자기 자신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인은 끝까지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작가는 부인을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작가는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것을 내버려 두지 말라”는 소설 속 대화를 통해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한다.

끝도 없이 지속될 것 같은 전염병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 치료제나 백신이 나오거나 전부 병에 걸릴 만큼 걸려 파급력이 약해지기도 한다. 소설에서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가장 먼저 눈이 먼 남자가 시력을 되찾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차례로 사람들의 시력이 돌아왔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코로나 19도 이 바이러스가 처음 생긴 것처럼 어느 날 사라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빠른 시간 안에 백신이 나와 더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질 않길 바라고 있다. 다행히 코로나 19 백신이 빠르면 올해 안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백신이 안정적으로 상용화 되려면 내년 봄이나 되어야겠지만 이러한 소식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종종 마스크가 일상화가 된 지금의 상황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는 언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믿고 싶다. 소설에서처럼 어느 날 갑자기 바이러스는 소멸될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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