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린 할아버지
사카린 할아버지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0.08.06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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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요 며칠 전부터 옥수수가 너무 먹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아침에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옥수수 트럭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더니 백발의 할아버지가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옥수수 껍질을 뜯고 계셨다. 압력밥솥에 김이 쉭쉭 오르고 있었으나 삶은 옥수수는 보이지 않았다.

“20분쯤 기다려야 돼.”

옥수수를 사러왔다는 내 말에 할아버지가 말했다.

“아 네….”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려다 말고 나는 물었다.

“생옥수수 사다가 삶아먹어도 돼요?”

할아버지는 옥수수껍질을 벗기다 말고 나를 올려다보셨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건 니 맘이지. 이런 표정이었다.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눈치 챈 나는 다시 물었다.

“생옥수수는 얼마에요?”
“이건 쪄서 팔라고 갖고 나온 거야.”
“많이 말고 세 개만 사려고요.”
“찐 게 3개에 3000원인데….”
“그럼. 6개에 5000원 맞죠.”
“6000원. 한개 천 원씩이야.”
“쫌 깎아주던데 다른 데는.”

할아버지는 조금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다시 옥수수 껍질을 뜯기 시작하셨다. 

“그럼 맛있는 걸로 3개만 주실래요?^^”

할아버지는 실한 놈으로 옥수수 3개를 골라 깜장비닐에 담으며 물어보셨다.

“맛있게 삶을 준 알아?”
“할아버지! 하하… 하하 제가 옥수수를….”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모른다. 맛있게 삶는 법을.

“냄비는 큰 거에다 물을 많이 넣어. 그리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40분 더 삶아.”
“물이 끓기 시작하면 옥수수를 넣으라고요?”
“아~~니! 옥수수는 처음부터 넣어야지!”
“아 글쿠나. 근데 소금만 넣으면 되나요?”
“사카린이 들어가야 맛있어. 꼭 넣어야 돼.”
“저 사카린 없어요.”
“사카린 있어야 돼.”
“없는데….”
“좀 줘?”
“네! 하부지~~!!”

거기까진 좋았다. 할아버지는 허리를 쭉 펴고 일어나시더니 사카린을 종이컵에 담으며 사카린은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넣어야 하는 지, 소금과 사카린의 양이 삶은 옥수수의 질을 좌우한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셨다. 
그 사이 내가 타려던 버스가 두 대나 지나갔고 압력밥솥은 터질 듯이 김을 쒹쒹 뿜어대고 할아버지는 내 손바닥에 사카린을 쏟아 부으며 딱 이만큼만 넣어야 한다고 신신당부을 하고 있었다. 그놈의 사카린 얘기를 하도 듣다보니 머릿속에 이런 생각까지 떠올랐다.

사할린 동포 여러분 잘 살고 계시나요.

할아버지는 종이컵에 사카린을 듬뿍 담고 쏟지 않으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며 꼬깃꼬깃 접어서 내 손에 쥐어주셨다. 그런 다음 압력솥을 열더니 다 삶아진 뽀얀 옥수수를 꺼내기 시작하셨다. 나는 거기 서서 20분 동안 사카린에 대한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그동안 할아버지의 옥수수는 맛있게 삶아져버린 거다. 나 도대체 뭐 한 거지?

그냥 삶은 옥수수로 바꿔달랄까.
그럼 사카린은 어떡할 건데?
그래!!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헛되게 하지 말자.
사카린은 소중한 것이여~~
 
나는 할아버지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무단횡단을 하며(삐뚤어질 테다!) 버스를 타러 갔다. 집을 나와 평소에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1시간이 훠-얼씬 지나 도착했고 지금 내 앞엔 생 옥수수 세 개와 사카린이 놓여있다. 인생은 이렇듯 참 다이내믹 하다. 
.
.
.
사할린 동포 여러분 잘살고 계시지요~~~~
 

 

 

옥수수를 파는 여자 / 이준관

 

저 여자가 파는 옥수수를 사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저 여자의 발가락 같은 밭고랑에 씨를 뿌려
그녀의 마른 젖꼭지를 물려 키운 옥수수.
그 옥수수에 박힌 굵은 소나기와
그녀의 넓은 어깨의 싱싱한 노동을.

저 여자의 생의 열기처럼
뜨거운 김이 훅 얼굴에 끼얹어오는
그녀의 밥솥에서 쪄낸 옥수수.
그 옥수수를
아직 아무 것도 깨물지 않은 젖니 같은 첫 이빨로
와락 깨물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저 여자의 옥수수밭처럼
넓게 펼쳐 놓은 치마폭에 놓인 옥수수 좌판.
그녀는 목에 두른 목수건으로
건강한 땀방울을 닦아내고,
나도 그녀의 목수건으로 연신 땀방울을 닦아내며
그녀가 파는 옥수수를 먹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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