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할 친구 얻을 수 있었기에, 마침표가 아니라 시작점”
“함께할 친구 얻을 수 있었기에, 마침표가 아니라 시작점”
  • 구혜리 기자
  • 승인 2020.08.13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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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작은 인플루언서 엄기영, 제주대학교 오름 트래킹 계절 수업에서

[위클리서울=구혜리 기자] 모든 순간은 끝에서 시작으로 이야기가 되어 이어진다. 한 학기를 마치며 조 모임으로 만나 팀 프로젝트를 진행한 친구들과 방학 때 제주도를 가기로 했다. 모두 코로나 19가 몰고 온 스트레스가 잔뜩 쌓여 어딘가로 풀 곳이 필요했다. 제주 여행은 일종의 우리들 반 년의 마침표였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향한 김포 공항에서 나는 아주 우연히 1년 전 봉사활동으로 친해진 친구와 같은 비행기를 탔다. 낯선 우연에 새로운 시작을 느꼈다. 제주로 향하는 길 내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짜릿한 신선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인플루언서가 꿈이라는 엄기영(26/한국체육대학교), 그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제주대학교 오름 트래킹 수업을 들으러 제주로 향하는 길이었다.

 

ⓒ위클리서울/ 구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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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리: 와, 마스크를 쓴 기영을 공항에서 발견하는데 너무 반가워서 놀라는 거 있잖아. 내가 딱 그랬어. ‘쟤가 왜 여기 있지?’ 하고 그 공간과 공기가 낯설게 환기되는 것.

- 기영: 그러니까! 나도 한참을 못 알아보다가 자꾸 눈이 마주치는데 누나라는 거 알고 신기했어.

- 혜리: 그래서 제주대학교 오름 트래킹 수업은 어떻게 알고 찾아간 거야? 대체 그게 뭐야?

- 기영: 방학 때 열리는 대학교 계절학기 수업 중 하나야. 해외로 교환학생을 다녀오는 것처럼 국내 대학에서도 대학 간 교류학생 제도가 있는데 방학이 되기 전 학교에서 공지를 올려준 걸 보고 바로 신청했어.

- 혜리: 아아, 나도 본교 계절학기로 스킨스쿠버다이빙 수업을 다녀온 적이 있어. 우리는 자격증반 수업이었는데, 제주대 오름 트래킹도 수료증 같은 게 나오나?

- 기영: 별도의 수료증이나 인증서가 나오는 건 없고 대신 본교 정규학기랑 동일하게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어. 4년 전에 엄홍길 대장과 함께 국토대장정을 다녀온 적이 있었어. 2주 동안 강원도 고성에서 경기도 파주까지 걸어서 완주했는데, 그때 자연과 함께하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단 걸 알게 된 거야. 걷다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그저 나는 걷고, 아름다운 자연은 옆에 있을 뿐이지. 몸은 힘들었지만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충만했던,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 중에 하나야. 사실 요즘 모두가 스트레스 과다잖아. 코로나는 끝나지 않지, 사이버 강의는 답답하지. 그래서 제주에서 트래킹 수업을 들으면 국토대장정을 했던 추억처럼 잊지 못할 경험이 되겠구나, 안정을 되찾기 위해 결심하게 됐지. 그래서 이번에 제주도에 온 목적, 이 여행의 테마는 ‘신선놀음’이다,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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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리: 너무 좋은 생각이네. 그래, 제주도를 타보니 어때?

- 기영: 종강 전 5월 즈음 관악산을 다녀온 적이 있어. 근데 관악산을 가려면 보통 차를 타더라고? 지하철에, 버스에. 이게 도시인지 자연인지 잘 모르겠더라. 하지만 제주도 오름을 오를 때는 서울에서 산을 탈 때랑 굉장히 다른 느낌을 받았어. 처음부터 자연으로 시작해서 자연으로 끝나는 거 내가 기대했던 산행은 그런 거였거든.

- 혜리: 신선에 가까워진 모습 같은데! 일정은 어떻게 됐어?

- 기영: 수요일에 제주에 도착했고,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4일 동안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매일 다른 오름 트래킹 일정이 있어. 첫째 날은 한라산 사라오름이 예정되어 있었어. 한라산의 산정호수로서 백록담을 제외하고는 제주의 오름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곳인데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 입장이 취소되었어. 차선으로 삼의악오름(새미오름)을 올랐는데 첫 날부터 너무 힘들고 경사가 가팔라서 포기하고 수업을 철회하는 인원도 생겼지. 나도 탈주할까 고민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올랐더니 어느새 제주 시내가 전부 보이는 거야. 탁 트인 전망에 가슴이 뻥 뚫리고 이게 이 수업의 매력이구나 느꼈어.

- 혜리: 몸을 혹사시키고 난 뒤에 맑아지는 정신, 땀에서부터 오는 가치를 느꼈구나.

- 기영: 맞아. 첫 오름을 오르고 팀원들과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어. 기대했던 것보다 멋진 친구들이 많았지. 경북, 부산, 전주, 전국 각지에서 여기로 다 모였더라고. 제주대 학생은 오히려 한 명도 없었고, 오히려 그게 좋았어. 여행으로 어디가 좋았냐, 밥이 어디가 맛있었냐, 별 거 아닌 사소한 일상들을 나누면서 친해졌지. 그 날 밤, 너무 추워서 생전부지 남자애랑 시내로 가서 쇼핑을 했어. 시장에서 바람막이를 1만9000원에 파는데 너무 예쁜 옷들이 많은 거야. 제주도 물가가 싼가? 하며 여러 옷을 구매했지.

두 번째 날 간 곳은 절물오름이었어. 트래킹 전 새벽에 ‘제대김밥’이라는 제주대 김밥이 있는데 김밥 한 줄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평생 먹은 김밥 중에 3위 정도? 절물 오름은 이때까지 오른 산과 오름 경치 중 가장 아름다웠어. SNS에도 사진을 올렸는데, 정말 살면서 본 풍경 중 제일 아름답더라. 맑고 날씨가 좋을 때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좋을 정도로 예뻤어. 성산일출봉까지 보이게 펼쳐진 풍경 그 끝에 바다, 그 위로 솟은 산봉우리들. 내가 본 것들을 절대 잊지 못 할 거야. 제주도에 가면서 등산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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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리: 얘기만 들어도 아름다움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전해진다. 동료들과 함께 해서 더 즐거웠을 것 같아.

- 기영: 사실 절물오름을 간 뒤에 팀원들과 처음 술자리를 가졌어. 서울대를 다니는 ‘은희’가 막걸리를 먹자더라. 술을 좋아하는 나는 또 따라갔지. 1차로 막걸리 집을 갔고, 2차로 자리를 옮기면서 1차에서 옆 테이블에 있던 다른 팀원들을 또 만났어. 이 때부터 어디서 왔냐, 뭐 하고 살았냐, 또 잔뜩 얘기하며 친해졌지. 이 중에 ‘민서’는 그 유명한 암흑의 ‘코로나 20학번’이라 학교를 한 번도 못 가봤을 뿐더러 우리랑 막걸리를 먹은 게 첫 술자리이자 대학생활의 시작이었대. 엄청 신이 나서 얼마나 술을 잘 마시던지, 역시 스무 살은 다르다 싶었지. 내가 스무 살 때는 이런 수업조차 몰랐을 텐데, 자기반성이랄까?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를 되돌아보기도 했어.

- 혜리: 지금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기영을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을 거 같아. 모두 멋지다고 말해주고 싶네.

- 기영: 하하, 고마워. 셋째날인 토요일에는 붉은오름에 올랐어. 사려니숲길 근처에 있는 원뿔 모양의 산인데 진짜 땅이 붉은 색이더라. 여기는 산책하는 정도여서 힘들지는 않았고, 전날 술을 마신 팀원들이 전부 취해있어서 기억이 많지 않아. 스무 살 친구가 제일 많이 마셨는데 걔 성이 또 홍 씨야. 숙취를 풀며 붉은오름을 걷는 홍 씨가 더 붉어보였어. 그런 기억이 있네.

- 혜리: 로맨스인가요?

- 기영: 아쉽게도 아니지.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는 첫 날 포기했던 한라산 사라오름이 예정되었으나 또 비가 와서 가지 못하고, 서귀포 제주올레길 7코스를 다녀왔어. 교수님 지시에 팀 과제를 받았는데, 주차장에서부터 시작해 목적지 ‘외돌개’를 찾아 시간 안에 도착하라는 내용이었어. 5분 늦으면 감점에, 식사 시간까지 예정 시간인 2시 전에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빡빡하더라고. 또 비는 얼마나 많이 오던지 이번에 부산에 물난리가 났던 만큼, 태풍만큼 쏟아지더라. 근데 그래서 잊지 못 할 것이 팀원들이 다 같이 홀딱 젖고 신발도 젖은 채로 물놀이를 하면서 갔지. 옆에서 누구는 “오늘 술이 맛있겠다” 소리를 지르고, 누구는 기합을 넣어 격려하고. 겨우겨우 10분 전에 도착지에 와서 다행히 감점을 면했지. 제일 좋았던 건 바다를 보며 해안가를 걸었던 거야. 산에는 산신령이 있다면 바다에는 해신들이 있으려나? 옛날 사람들이 왜 산신령과 해신을 믿었는지 알겠더라고. 그 웅장한 힘과 기운에 무서운 기분이 들면서도 홀릴 듯 아름다운 경치를 선물해주는 그런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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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 오름 트래킹 수업을 마치고, 그 다음날 따로 한라산을 갔어.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땀도 뺐는데 한라산도 못 갈 것 없다고 생각했지. 이번이 아니면 또 언제 가겠어. 심지어 첫 술자리 때 친해진 팀원들도 함께 가겠다고 나섰어. 한라산에는 두 코스가 있는데 우리는 당연하단 듯이 더 힘든 코스를 택했다. 오름 트래킹 수업을 완주했으니 당연히 체력도 키워졌을 거라 생각했지. 근데 생각보다 힘들데? 역시 산은 얕보는 게 아니야. 너무 힘들었어. 백록담에 오니 비바람이 엄청 몰아쳤고 날씨가 좋은 편은 아니었어. 이러니 산신령의 존재를 안 믿을 수 있었겠어? 산이 이렇게 매서운 곳인데. 동행해준 친구가 없었다면 어쩌면 포기했을 수도 있었을 거야. 힘든 순간을 함께 이겨내는 사람들의 소중함, 그 가치를 다시 한 번 느꼈지. 트래킹 수업을 듣고 나서야 한라산 트래킹을 도전할 마음이 생겼고, 함께할 친구를 얻을 수 있었기에, 그 수업은 마침표가 아니라 시작점이지 않을까? 처음 목표했던 바처럼 이 일주일 걷는 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마음 비울 수 있었어. 다시 서울에 올라가서도 이 기억으로 앞으로의 스트레스를 흘려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에서는 항상 경쟁 속에서 무언가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느낌인데, 제주도에서는 고민이 없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어. 고민 없이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내가 무엇을 위해 서울에서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았는지 되돌아보면서 반성하는 시간이 됐지. 그게 내가 원했던 신선놀음의 의미였더라. ‘행복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편한 마음과 삶의 태도. 그게 이번에 제주도에서 배운 것이고 이를 잊지 말아야겠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윤곽을 잡아 가는 것 같아. 나는 항상 행복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예쁜 옷, 맛있는 음식,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 그런 것들은 그 순간순간만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행복을 찾아 계속해서 무언가를 갈구했지. 하지만 근심, 걱정, 고민을 지우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그게 지속적인 행복의 길이 되는 것 같아. 제주도에서 느낀 이 마음을 잊지 말고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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