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드라마, 한국 사람에게도 먹힌다!
중국드라마, 한국 사람에게도 먹힌다!
  • 류지연 기자
  • 승인 2020.08.28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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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류지연의 중국적응기 '소주만리'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장장 31시간의 대여정, 중국 드라마 ‘다음역은 행복(下一站是幸福)’의 정주행을 드디어 끝냈다.

2020년 1월에 중국에서 첫 방영된 따끈따끈한 신판인 드라마는 우리나라에서도 넷플릭스를 통해 ‘누나의 첫사랑’이라는 B급풍의 제목을 달고 출시됐다고 한다.

얼마 전 상해 호텔로 휴가를 보내러 갔다가 TV에서 우연히 이 드라마를 보게 됐다. 분위기가 괜찮아서 집으로 돌아와 TV를 뒤져보니 기쁘게도 한국TV에 한국어 자막이 달린 버전이 있어 중국어 공부도 할 겸 1편부터 시청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쁘다고 생각했던 여주인공이 알고 봤더니 그룹 에프엑스 출신의 빅토리아였다. 뒤늦게 찾아보니 빅토리아는 원래 중국인이었던 것. 에프엑스 시절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중국 드라마에서 보게 되니 괜히 반갑다. 1987년생으로 올해 34세라는데 20대의 현역 아이돌로 보일 만큼 어여쁜 자태가 그저 부러울 뿐이다.

 

사진 1) ‘다음역은 행복(下一站是幸福)’의 포스터. 드라마를 저절로 클릭하게 만드는 남녀 주인공의 미모는 가히 역대급이다.(출처: 바이두백과)
‘다음역은 행복(下一站是幸福)’의 포스터. 드라마를 저절로 클릭하게 만드는 남녀 주인공의 미모는 가히 역대급이다. ⓒ위클리서울/ (출처: 바이두백과)

빅토리아 외에도 훈남, 훈녀들이 포진해서 눈이 즐거운 이 드라마를 한 줄 요약하자면 ‘32세의 모태솔로 여주인공을 사이에 둔 연상남과 연하남의 삼각관계’이다.

35세까지 둘 다 솔로이면 결혼하자는, 대학시절 ‘사랑과 우정 사이’ 남사친의 말을 철썩 믿으며, 조건에 맞춘 적당한 연애는 하지 않고 진짜 사랑만을 기다려온 여주인공 허판싱(贺繁星). 대학 졸업 후 입사해서 10년을 일한 작은 인테리어 회사에서 행정팀장(主管, zhǔguǎn)이 될 만큼 열심히 살았고 나름 성공했지만, 10년 만에 조우한 남사친은 그때의 약속을 잊고 약혼자와 함께이다. 10년의 기다림이 허무해진 순간, 허판싱은 22세의 회사 인턴 디자이너인 위안쑹(元宋)과 술을 마시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위안쑹은 이때 허판싱과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위안쑹은 허판싱의 이란성 쌍둥이 남동생이자 미술대학 부교수인 허찬양(贺灿阳)의 애제자이고, 남동생의 부탁으로 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했다는 점.

한편, 허판싱은 회사의 광고를 맡긴 협력회사에 찾아갔다가 그 회사의 사장인 37세 예루밍(叶鹿鸣)과 이런저런 악연으로 얽히기 시작한다. 허판싱처럼 진실된 사랑을 기다려오던 예루밍은 모든 악연이 자신의 오해였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허판싱을 운명이라 여기며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허판싱과 위안쑹은 3개월의 비밀연애를 시작하고, 닭 쫓던 개가 된 예루밍은 허판싱이 연애 경험이 없으니 좋은 상담자가 되어주겠다며 허판싱의 곁을 지키기 시작한다.

3개월이 다가오면서 점차 현실의 장벽을 생각하게 되는 허판싱. 언제 철들어 결혼해서 부모님을 편안하게 해드릴 거냐며 선 자리를 물고 오는 오지랖 넓은 아랫집 아주머니는 허판싱의 속을 뒤집어 놓고, 서로를 생각해 말하지 않은 것들이 상처와 기만이 되며 위안쑹에 대한 허판싱의 마음은 굳어간다. 3개월을 앞둔 어느 날, 위안쑹은 사람들 앞에서 연애를 공개하고자 하지만 허판싱은 뒤로 물러서고 큰 싸움 끝에 헤어진다.

한편 이 때만을 기다린 예루밍은, 조건이 잘 맞는(合适, héshì) 자기와 한번 사귀어보라며, 사귀다 보면 마음도 생기지 않겠냐고 허판싱을 설득하고, 허판싱은 결국 떠밀리듯 예루밍과 연애를 시작한다. 주변인들은 결혼하기에 예루밍이 딱이라며 자꾸 허판싱을 몰아댄다.

그 사이 허찬양은 예루밍의 조카이자, 자신의 제자이며, 한때 위안쑹을 쫓아다녔던, 철부지 20세 대학생과 비밀 연애를 시작하며 족보가 꼬이기 시작한다.

 

사진 2-1~2-3)(편집 각주: 세 명이 나란히 한 줄에 오도록 편집해주세요.^^) 드라마의 세 주인공인 위안쑹, 허판싱, 예루밍(출처: 바이두백과)
드라마의 세 주인공인 위안쑹, 허판싱, 예루밍 ⓒ위클리서울/ (출처: 바이두백과), 그래픽=이주리 기자 

세 명의 삼각관계 이외에도 허판싱의 친한친구인 쑹쉐(10년째 사귀는 남자친구와 아이를 안 갖기로 합의하고 결혼은 없이 연애만 하는 사이. 어쩌다 아이를 임신하면서 남자친구에게 짐을 지게하기 싫어서 헤어지자고 통보), 샤오위(일찌감치 결혼해서 둘째를 임신하고 회사도 그만뒀는데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고 결국에는 이혼하며 홀로서기를 결심) 등의 고민과 주변인들의 얽히고설킨 사랑 모습이 다채롭게 그려진다.

그저 뻔한 연애드라마라고 치부할 수도 있으나 타인들이 설정한 ‘결혼적령기’를 넘긴 30대 여성의 사랑과 조건(드라마에서는 계속 ‘적합한, 적당한’이라는 뜻의 ‘合适’라는 단어로 나온다)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곱씹기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인 나에게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남자가 12살 어린 여자를 사귀는 건 괜찮지만 여자가 10살 어린 남자를 사귀는 건 안 된다.’ 누구보다도 주인공의 편일 것 같았던 쌍둥이 남동생의 입을 빌려 나오는 반전 대사다. 사회의 기울어진 잣대가 중국이나 한국이나 동일하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 그런가 하면 본인들이 생각하기엔 부적합하지만, 허판싱이 법을 어기지 않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받아들이고 응원하겠다는 허판싱의 부모님 대사는 가히 감동적이었다.

드라마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바로 패션과 촬영지였다. 보통 중국 드라마와는 다르게 드라마 속 전체적인 의상과 분위기가 상당히 세련되어 2020년의 한국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특히 여주인공인 허판싱의 옷은 패션쇼를 방불케 할 만큼 탐나는 의상들이 많다. 평소 TV에서 틈틈이 보던 중국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엄청 차려입었지만 2000년대 우리나라 TV를 보는 것처럼 촌스럽고 과하다는 느낌이 많았다. 가령, 아버지가 쓰러져서 병원에서 며칠째 식음을 전폐하고 간호중인 설정인데 얼굴은 반짝거리는 펄 메이크업에 귀걸이, 목걸이, 머리띠 등 장신구가 그득하다. 그런가 하면 사랑하는 이가 다른 이랑 결혼하는 걸 막고자 바닷가에 가서 자살소동을 벌이는 설정인데 옷은 연회에 가는 듯 짧은 드레스에 장신구 역시 화려하다. 이건 뭐 금목걸이로 성공을 과시하는 힙합 래퍼들도 아니고 장신구 누가누가 많이 했나 대회라도 열린 느낌이었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런 세부적인 것까지 깔끔하다.

 

ⓒ위클리서울/ (출처: 바이두백과)
사진 3, 4)여주인공 허판싱의 옷차림.(출처: 바이두백과)
여주인공 허판싱의 옷차림. ⓒ위클리서울/ (출처: 바이두백과)

그리고 더 반가웠던 점은 촬영지가 소주와 상해라는 점이었다. 첫 화를 볼 때 어딘지 눈에 익은 배경이 흐릿하게 처리된 걸 자세히 들여다보니, 매일 내 집같이 드나들던 소주중심(苏州中心, sūzhōuzhōngxīn)이 아닌가! 집에서 항상 내려다보이는 호숫가 산책길부터 시작해서 아파트의 전경, 멀지 않은 쇼핑몰 등 근처의 장소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드라마에 나온 고급스러운 온천여관에 가봐야지 하는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재밌는 점은 대부분의 촬영지는 소주인데, 도심 배경을 광폭으로 잡을 때는 상해를 비춘다는 점이다. 상해의 동방명주가 물론 소주의 동방지문보다 더 유명하긴 하겠지만, 마치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 느낌이랄까?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나니 조금이지만 아는 단어와 표현들이 늘었다. 중국어 자막으로 한 번 더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이야기지만 중국은 지역 방언이 많아서 그런지 웬만한 TV프로그램에는 밑에 자국어 자막이 나온다. 뉴스든, 드라마든, 예능이든, 심지어는 광고까지도 자막이 나온다. 자막이 없는 프로그램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유아용 만화 정도였던 것 같다. 자막은 간체(중국에서 상용하는, 간단하게 줄인 한자체)로 나올 때도 있고, 번체(우리가 아는 한국식 한자체)로 나올 때도 있다. 초보자인 나에게는 재빨리 지나가는 자막을 다 읽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지만 아는 단어나마 자막과 소리를 비교해가면서 보면 나름 재미가 있다.

다음 드라마는 ‘안가(安家)’로 정주행해볼까 한다. 2020년 신작인데, 부동산 회사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배경이 상해인 만큼 아는 곳이 나오면 반가울 듯 하고, 이런저런 집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당분간 낮 시간은 코로나를 피해 소파와 한 몸이 될 예정이다.  <류지연 님은 현재 중국 소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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