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 쓰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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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혜리 기자
  • 승인 2020.10.05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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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위클리 마음돌봄: 열 번째 돌봄, 글

[위클리서울=구혜리 기자]  아프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죽음 이전에 질병과 사고를 완전하게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잘 이겨낼 수는 있다. 도리어 이를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어떤 이의 삶은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몸이 아프면 온 신경은 아픈 부위에 집중된다. 하물며 감기나 생채기 하나에도 처방을 받거나 적절한 요법을 취하는데 마음에 난 상처에는 유독 무관심하다. 하지만 마음에도 돌봄이 필요하다. 위클리 마음돌봄은 삶에 관한 단편 에세이 모음이다. 과열 경쟁과 불안 사회를 살아가는 당사자로서 스스로와 사회를 돌아보는 글이다. 글쓴이의 마음의 조각을 엿보는 독자에게도 작은 위로를 전할 수 있길 바란다.

 

ⓒ위클리서울/pixabay.com

나는 원래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글을 쓴다는 건 삶의 의무.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업은 글쓰기의 과정이었고, 이따금씩 받는 상장과 칭찬이 글을 계속 쓰게 하는 동력이었다. 그래도 좀 더 그 시초를 잡자면 중학생 때 국어 선생님은 내 글을 좋아했고, 팬 1호가 되어 글을 다듬고 대회도 내보내고 한 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 즈음부터 ‘반에서 글을 가장 잘 쓰는 아이’가 되고 싶었다.

대학에 와서도 글을 쓰는 일은 삶의 과업이었고, 과업으로 마주하는 글쓰기는 늘 어렵게만 느껴졌다. 아무 것도 담기지 않은 깨끗한 화면 속에 내 생각을 풀어낸다, 또 이것이 남과 견주어 평가되고, 때로 석 자의 이름 찍힌 글을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대학생활을 통해 남긴 이력들은 모두 글을 쓰는 일이었기에 누군가 “글을 잘 쓰나보다” 내지 “글 쓰는 걸 좋아하나봐?”라고 물을 때면 “아니요. 그냥 써야 해서 쓰는 거죠”라고 답해온 것이다.

대학 2학년을 막 마치고 봉사활동으로 베트남에 다녀갔을 무렵, 봉사활동을 함께 다녀온 또래와 나눈 대화의 주 소재는 ‘어떻게 살까’였다. 그 때 한 친구는 “무슨 직업을 가질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평생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했다. 이 짧은 문장이 내게 적잖이 충격이었다. 글쓰기를 평생의 과업쯤으로 생각하고 페이지 속에 글을 짜내는 것은 스트레스를 주는 일에 가까웠기에. 공교롭게도 나는 그 친구를 많이 좋아했고, 좋아하는 사람을 빠르게 닮아가는 편이었다. 글을 쓰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그 말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자기 일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니까.

내 이름을 새긴 글을 세상에 내보인다는 건 알몸으로 거리에 나서는 것과 같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지금도 본인의 이름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알몸으로 거리에 나설 필요성은 없다.) 이미 세상 사람들의 사상과 사고는 충분히 다양한데, 내 생각을 아무리 정갈하게 정돈하고 내보인다 해도 내 손을 떠난 내 글의 의미는 읽는 이의 해석에 맡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건 그만큼 혹독하게 자신을 마주해야 하고, 그렇게 만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과 사랑하는 모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일이 된다.

20대 중반까지 대부분의 관계는 나를 포장하는 일에 가까웠다. 못난 모습을 깊은 장에 꼭꼭 숨기고 사람들과 만나는 나는 항상 밝고 긍정적인, 사회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모습으로. 그래서 종종 솟구치는 우울감을 누구에게 풀어내지 못 하고 어딘가로 표출하고 싶을 때 글을 쓰곤 했다. 그렇다보니 글을 쓸 때의 나는 항상 문제와 닿아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여전히 부끄럽다며 덮어버리려고만 했다. 글을 쓰는 것을 피했다.

어쩌면 글을 쓰는 일이 즐거워진 것은 COVID-19 시국이 준 유일한 선물일 지도 모르겠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면서 내가 무엇으로 오롯이 혼자 즐거울 수 있나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깊은 장 속에 숨겨둔 나의 모든 모습을 하나씩 꺼냈다. 에너지가 넘치는 나는 운동을 하며 땀 흘리기도 좋아하고, 조용한 노래를 틀고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 책을 읽다 표현과 글귀가 감탄스러워지면 자연스레 나도 글을 쓰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를 마주하고 나니 글을 쓰기 위한 때의 감정은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됐다. 기쁠 때의 내 모습도, 우울할 때의 내 모습도 모두 사랑하는 내 모습이었다. 글을 쓰는 것으로 내 시간과 감정의 주인이 되고, 더불어 좋은 삶의 가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기분이 든다. 시간을 거슬러 떠올려보니 어린 시절의 나 역시 글을 쓰는 내 모습을 사랑했다. 그것은 일종의 나 자신과의 화해였다. 밀어내고 도망치던 자신과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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