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스티븐 킹 소설 ‘잠자는 미녀들’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위클리서울/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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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모든 여성들이 잠을 자는 병에 걸려 남자들만 남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계적인 밀리언셀러 작가 스티븐 킹(Stephen King)은 자신의 신작 <Sleeping Beauty>에 정체불명의 ‘고치 병’에 걸린 여자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고치 병’이란 여자들이 누에고치와 같은 껍질 속에서 계속 잠을 자게 되는 전염병이다. 과연 세상에 남성이라는 한 가지 성만 존재하게 된다면 남성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작가는 ‘여자만 걸리는 전염병’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통해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만연한 여성들의 열악한 사회적 상황을 소름 끼치는 화법으로 담아냈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잠자는 병’

국내 제목은 <잠자는 미녀>로 소개된 스티븐 킹의 소설은 누구나 알고 있는 동화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우리에게는 미국 월트 디즈니사가 만든 <잠자는 숲 속의 미녀>로 더 유명한 이야기지만 사실 마녀의 저주를 받아 100년 동안 잠만 잔다는 공주의 이야기는 프랑스 동화작가 샤를 페로가 만든 <잠자는 숲 속의 미녀(원제 : Sleeping Beauty)> 이야기다.

샤를 페로의 소설에는 마녀의 저주를 받아 잠드는 오로라 공주가 등장한다. 오로라 공주는 잠만 자면서 저주가 풀리기를 무기력하게 기다린다. 저주를 풀 수 있는 이는 덤불 가시와 용이 지키는 위험한 상황을 뚫고 왕궁에 진입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왕자’다.

하지만 작가는 왕자가 공주를 구출하는 동화식 행복한 결말에는 반기를 든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공주도, 왕자도 없다. 모두 살기 척박한 현실 속의 인간들이 있을 뿐. 아니 사실 그 현실은 여성에게 더 가혹하다. 물리적으로 약한 여성들은 오랫동안 남성의 지배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성에게 선거권이 생긴 것이 불과 100년 전의 일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여성들에게도 그 어떤 남성들보다 더 큰 물리적인 힘과 인간 존재를 초월하는 능력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작가의 상상은 더욱 커져만 간다. 여성들만 누에고치와 같은 껍질 속에서 잠만 자는 사이 초능력인지 괴력인지 알 수 없는 초현실적인 존재인 여성 ‘이비’가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여성들에게 구원자처럼 나타난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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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황금가지

작가는 여자들만 잠을 자는 전염병과 초월적인 존재 ‘이비’라는 여성의 등장시키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먼저 전염병이다. 특이하게 여자들에게만 전염이 된다. 병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됐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아시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신병’ 내지는 ‘수면병’이라고 이름 붙은 전염병. 하도 잠만 자서 언론에서는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 나오는 오로라 공주의 이름을 따와 ‘오로라 병’이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다들 먹고살기 바쁜지라 이러한 뉴스가 대체적으로 흥미롭기는 했지만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일로 치부됐다.

어제 멀쩡했던 여자들의 머리카락 사이사이에는 막처럼 생긴 하얀 물질이 촘촘히 생겼다. 그들이 잠든 사이 눈과 코에서는 하얀색 거미줄 같은 줄이 분출됐다. 성긴 실로 감은 고치 같은 것들이 머리통을 완전히 감쌌다. 턱에는 마치 벌집과 같은 물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병은 노인과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연령에 상관없이 여성에게만 발생했다. 마구 자라나는 성긴 실을 건드리거나 잘랐을 때는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고치 속에서는 ‘잠자는 미녀’와 같이 온순했던 여자들이 누에고치를 건드려 여자들을 깨우자마자 마치 성난 악마와 같이 변모해 사람들을 해쳤기 때문이다.

세상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수면병’에서 ‘여성 수면 독감’으로 다시 ‘오로라 병’으로 부르게 된 이 병은 처음에만 해도 지구 변방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일로 여겨졌지만 미국 전역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모두 커다란 패닉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현실에는 ‘오로라 공주’가 없다

작가는 ‘이비 블랙’이라는 특수한 여성을 두 번째로 등장시킨다. 이 기괴한 전염병은 ‘이비 블랙’이라는 여자가 ‘트루먼 메이웨더’의 트레일러를 찾아가 트레일러를 방화한 날부터 시작된다. 이유는 없다.

하지만 트루먼 메이웨더의 트레일러에는 이미 마약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안에는 트루먼의 학대와 폭력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망치고 생명조차 지키기 어려운 평범했던 여성 ‘티파니’가 함께 있다. ‘이비’의 방화와 이은 살인을 통해 ‘티파니’는 법과 국가가 지켜주지 못했던 범죄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여성도 인간으로 가질 수 있는 폭력성을 묘사한다. 여성은 늘 여자이기에 앞서 ‘엄마’다. 모성애는 세상의 그 어떤 존재보다 가치가 있다. 아니 사실은 그렇게 그려진다. 아이를 던져 죽이는 우울증 걸린 엄마나 함께 아이와 동반자살 하는 엄마, 아이를 고아원이나 길거리에 버리는 엄마 등 세상에는 비정한 모정도 많다. 비극이지만 이 비극에는 ‘아빠’는 없다. 아빠보다도 엄마의 비정함이 더욱 강조된다. 부정보다는 모정이다.

사실 이 고귀하고 값진 감정과 가치는 사실 사회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불과하다. 엄마는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하지만 이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사회가 만들어낸 통념이다. 때문에 작가가 엄마가 아들을 공격하는 소설 속 장면에 큰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들이 엄마에게 자신이 마실 주스를 갈아놓지 않았다며 엄마를 향해 “바보 같다”는 농담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엄마가 이런 아들을 향해 믹서 컵을 머리통에 박살 내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도록 공격한다면? 뉴스에 나올 일이다.

아들은 엄마가 잠들면서 만들어낸 마시멜로와 같은 누에고치 덩어리를 가위로 제거했다. 잠에서 일어난 엄마는 아들을 공격했다. 플라스틱 믹서 컵은 아들 두개골에 부딪치면서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붉은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여성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엄마’이기를 유지했다. 사춘기 이전의 자녀에게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신고는 거의 접수되지 않았다. 잠든 여성은 어린 남자 아기나 어린이를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인계하거나 집 밖에 내놓은 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잠을 잤다.

고치 상태에서 강제로 벗어난 여자들은 괴력의 괴물이 됐다. 한 손으로 남자를 들어 벽에 내리꽂을 수 있었다. 남자들의 머리를 짓이겨 뇌를 스펀지처럼 흘러내리게 할 수도 있었다. 잠든 여성과 그 여성을 깨우려 했던 다른 성인 간에 발생한 폭력사태만 해도 수백만 건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이내 이 기이한 현상을 수긍했다. 모성애가 담긴 여자들의 행동에 무언가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믿고 강제로 여자를 깨우려는 것을 멈추기 시작했다.

작가는 시종일관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남성 중심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상을 고발하는 한편 어느 한쪽의 성이 또 다른 성을 억압하거나 차별하고 지배하려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경고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로 인해 전 세계 100만 명이 넘게 사망했다. 전염병이 발병하고 10개월 만이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계속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전염병은 누구에게도 안전하지도, 예외일 수도 없다.

과거와 같이 남성들이 지배하는 방식의 구조로는 인류의 생존이 담보 받을 수 없다.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이 또 어떻게 변종되어 인류를 덮칠지 모른다. 작가는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앞으로 남성과 여성이 함께 힘을 합쳐서 서로 공존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라고 경고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여성들은 고치 속으로 들어가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현실에 남겨진 남성들은 지옥을 맛볼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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