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싹 마른 가을날, 암에 걸린 배추의 장례식이 다가온다
바싹 마른 가을날, 암에 걸린 배추의 장례식이 다가온다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0.11.12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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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바싹 마른 가을의 빗방울 두 개
바싹 마른 가을의 빗방울 두 개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누가 나를 깨운다. 누구냐.

나는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니다. 내가 잠자리에서 빠져 나오는 시간은 내 몸이 알아서 잘 조절해 준다. 잠자는 시간을 일정하게 맞춰준다는 것이 아니라, 잠자는 시간이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몇 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잠자리에 들면 내 몸이 내 생각을 알아서 그 시간 즈음에 깨워준다는 거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그렇게 해 왔는지 통계를 낼 수는 없다 해도, 어쨌든 지금까지 쭉 그래 왔었다. 그래서 나는 알람 같은 것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게 뭐냐. 누가 나를 이 시간에 깨운단 말이냐. ‘이 시간’이 몇 시인지 나는 물론 알지 못한다. 시는 모른다 해도 내가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가 아니라는 것만은 안다. 느닷없이 개가 요란하게 짖어댄다든가, 천둥 벼락 소리에 놀라서 깨어날 때도 있긴 하지만, 그런 때의 느낌은 느낌이랄 것조차도 없이 그냥 어수선하게 익숙한 것이어서 나는 금방 도로 잠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나를 깨운 소리는 어수선하지 않고 부드럽게 지속적이어서 나는 점차, 점차, 생기발랄하게 깨어나고 있었다. 깨어나면서 시나브로 알아갔다.

아, 그렇구나. 음악이구나. 누가 이 밤에 나를 위해서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것인가. 어둠 속에서 눈을 말똥말똥 깜빡거리며 조금씩 알아갔다. 비다. 비가 온다. 빗소리가 나를 깨운 것이다. 새벽 잠자리에서 듣는 가을 빗소리가 상큼하구나. 가을 빗소리가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하긴 오랜 기다림이 없었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여겨지진 않았을 것이다.

진짜로 오랜만이다. 한 삼천 년 전에나 들어보고 이제 다시 듣는 것처럼,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면서 반갑고 아름다워서 나는 벌떡 일어났다. 옷을 입을까? 아니다. 그냥 나가자. 맨 몸으로 비를 맞이하며 정답게 즐겁게 콧노래를 흥얼거리자.

문을 여는 순간 알았다. 비는 비라고 말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인색하고 왜소하고 금방 죽어버릴 것처럼 힘아리가 없다. 초저녁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보다도 훨씬 적은 개수의 빗방울이 실로폰처럼 양동이를 때리고, 나뭇잎을 건들고, 아랫집 비닐하우스에 떨어지면서 제법 많은 비가 내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물이 없어 타들어가는 배추
물이 없어 타들어가는 배추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하늘을 보니 구름도 뭐 별 것 없다. 그래도 혹시, 혹시 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동안 날은 밝았고, 잠자리 날개처럼 엷은 구름이 속속 벗겨지면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몇 방울의 비가 다녀갔다는 흔적만 엷게 남아 있는 마당을 둘러보자니 기가 막혀 헛, 헛, 소리가 절로 나온다. 무엇보다 빨간 열매에 매어달린 두세 개의 작은 물방울이 그렇게도 정겹게 애처로울 수가 없다. 이럴 수가 있는가. 이래도 되는 것이냔 말이다.

돌아보면 그야말로 간난신고의 나날들이었다. 10월 한 달 내내 단 하루도 물조리를 손에 들고 다니지 않은 날이 없었다. 가을바람은 어찌 그리도 바삭바삭하던지, 가을 하늘은 어찌 또 그리 높기만 하던지, 시들어가는 화초나 채소에 물을 주고 돌아서면 높은 하늘과 바람이 다 빼앗아 가 버렸다. 그리하여 내가 애써 심은 채소와 화초는 알 수 없는 무슨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아침이고 저녁이고 시간 개념조차 없이 시들거렸다.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비가 내려서 우리 집 마당의 국화를 죄다 녹여버린 게 겨우 둘 달여 전 일이었다. 땅에 직접 심으면 장마철 비에 녹아버릴 수도 있다는 경험에 의지해서 화분에 심었는데도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빗줄기에 잎이 부서지고 줄기가 흘러내리고 마침내는 뿌리마저도 흙이 되고 말았다.

폐허에서도 꽃은 핀다는 말처럼, 죽음의 행렬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들이 더러 있기는 했다. 간신히, 겨우, 살아남은 것들을 가을 가뭄이 화약처럼 덮쳐 와서 태워버린다. 이게 뭐냐. 물이 많아서도 죽고 물이 없어서도 죽는 것, 육지 생명의 이런 비극적인 운명을 모르는 사람 누구 있을까마는, 그래도 슬프다. 슬퍼한다. 슬퍼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만 같아서, 슬퍼하는 감정으로나마 위로를 받고자 한다. 물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하고, 물을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는 이 기막힌 존재형태 앞에서 슬픔이라도 깨물지 않는다면 내 몸이 통째로 바싹 마른 미라가 돼버릴 것만 같다.

밖으로 멀리 나가서 보면 상황은 더욱 처절하다. 우리 집 마당에서 일어나는 슬픔은 소꿉놀이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배추다. 배추가 암에 걸렸다. 암에 걸린 배추가 여기서도 죽고, 저기서도 죽고, 도처에서 죽어간다. 죽어가는 배추를 뽑아들고 보면 뿌리가 기괴하다. 원뿔형으로 땅을 뚫고 수직으로 뻗어 내려가야 할 배추 뿌리에 물혹 같은 것이 주렁주렁 열렸으니 이게 무엇이냐.

“암이네 암이여. 배추가 암에 걸렸네. 오매 시상에나.”

 

배추가 죽어간 뒤의 배추밭
배추가 죽어간 뒤의 배추밭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무슨 근거가 있어서 암이라고 단정한 것은 아니었다. 하도 기괴하고, 기괴해서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생명을 빼앗아간다는 것만은 너무나 분명해서 일단 암이라고 규정한 것일 뿐이다. 실로 그것은 보기에도 징그러웠다. 보기에도 징그럽게 생긴 것이 멀쩡하던 배추를 죽여 놓고 있으니 암인 것이었다.

생전 처음 당하는 일이라고 사람들은 채머리를 흔들어대고 있었지만, 기억을 차근차근 되살려 보자면 예고편이랄까 경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흘 밤낮을 내리 퍼부어댄 빗줄기만 해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한 달여 동안 태양을 본 횟수가 서너 차례밖에 안 된 것도 생전 처음인 일이었다. 태양을 못 본 농작물들은 키만 껑충하게 자랐고, 열매는커녕 꽃도 피어보지 못한 채 픽픽 쓰러져 갔다.

고창의 명물 중에서도 명물로 꼽히는 수박, 고창수박이 제일 먼저 ‘폭망’으로 기록되었다. 날씨가 서늘해서 수박을 찾는 사람도 아마 별로 없었을 테지만, 그보다도 먼저 수박 자신이 마치 땅바닥에 머리를 쿵쿵 찧어서 자살이라도 하듯이 쩍쩍 벌어지고, 벌어진 뒤에는 흐물흐물 녹아서 흘러내렸다.

수박 다음으로 폭망이 예정된 것은 고추였다. 고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수박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너나없이 불안에 떨었다. 고추는 여름에 소나기만 한 번 지나가도 약을 뿌려줘야 하는 작물이다. 탄저병 약은 기본이고, 몇 년 전부터는 칼라병이라는 것까지 생겨서 그 약도 뿌려줘야 한다. 빗속에서 약을 뿌리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비가 그친 뒤에, 태양이 나올 즈음에 뿌려줘야 한다. 그런데 비가 안 그친다. 손도 못 대보고 고추농사를 망치게 생겼구나 했는데, 그런데 희한한 일이 생겼다.

고추는 빗속에서도 불긋불긋 물이 들어갔다. 익어가는 고추를 바라보는 농부들의 심사는 이중으로 찢어졌다. 차라리 익을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죽어버릴 일이지, 뭐 한다고 익을 채비까지 차린단 말이냐. 익어가는 도중에 죽어갈 것이 뻔한 고추를 안 보겠다고, 꼴도 보기 싫다고 아예 고추밭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기가 막히게도 죽어야 할 고추는 죽지 않고 계속 익어갔다.

빗속에서 고추를 따는 진풍경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빗속에서 고추를 따는 풍경이야 뭐 예년에도 가끔 볼 수 있었지만, 금년에는 모든 고추밭에서 일제히 고추를 따는 특별한 진풍경이 며칠씩이나 계속 되었다. 한 달도 넘게 이어지는 흐린 날씨 속에서 고추가 죽지도 않고 익어간다는 사실 자체가 사실은 진풍경한 일이었다. 어쨌든 농부들은 죽다가 살아난 기분으로 부지런히 고추를 땄다.

 

배추에 생긴 암덩어리
배추에 생긴 암덩어리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아,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튀어나왔다. 이 많은 고추를 어떻게 말릴 것인가. 빗속에서 딴 고추는 당연히 물고추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날씨도, 공기도, 심지어는 바람까지도 물속을 헤엄친다. 물이 줄줄 흐르는 고추는 하루가 지나면 물렁거리고, 이틀이 지나면 흐물거리고, 사흘이 지나면 고추의 형태마저 사라져 버렸다.

해마다 고추를 따다가 말리는 비가림 하우스가 집집마다 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선풍기를 있는 대로 꺼내다가 바람을 불어줘 보지만 조족지혈이었다. 이를 간파한 고추 건조기 회사 직원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농부들은 이제 새롭게 고추건조기를 사 들이느라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고추 건조기를 사용할 일은 없어져 갔다. 서릿발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듯이, 모든 고추밭의 고추가 거의 동시에 죽어가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간신히 세물고추까지 따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두물이나 한물에서 파장을 보고 말았다. 고추는 여름부터 가을 무서리가 내릴 때까지 일고여덟물 정도는 거뜬히 따내는 작물인데 한두물 혹은 세물에서 끝났으니 폭망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게다가 쓰지도 못할 고추 건조기까지 빚으로 샀다. 이게 뭐냐.

수박 농사에 비하면 고추 농사는 그나마도 괜찮은 편이었다. 농작물 중에서 수박은 아마 사람 손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인건비 압박을 가장 심하게 받는 농사이다. 많은 돈을 들여서 수박 모종을 하고, 줄기치기를 하고, 불필요한 열매를 따내는 등 그야말로 정성을 다한 결과 이제 막 익어가려 하는 참인데 다 죽어버렸다. 녹아버렸다.

사람들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바깥나들이도 삼갔다. 뭔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데 뭐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어 의기소침했고, 무슨 일을 새로 벌인다는 게 무서워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무정한 시간은 자꾸 흘렀다.

 

암에 걸린 배추
암에 걸린 배추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어느 하루 홀연 비가 그치는가 싶더니 해가 나오고, 바람도 제법 선선하게 불었다. 사람들은 계절이 바뀐다는 것을 알았고, 하나 둘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한 이제 다시 무엇이든 새로 시작해야만 했다. 수박이 망했다고, 고추 농사가 망했다고 일 년을 고스란히 그냥 보내버릴 수는 없었다. 가을의 초입에 들어선 시기에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김장거리 한 가지밖에 없었다. 양파와 마늘처럼 월동이 필요한 품종은 아직 때가 아니었다.

비가 그친 뒤의 땅은 신속하게 물이 빠져나갔고, 농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농기계를 들고 밭으로 나갔다. 땅을 갈아엎고, 퇴비를 뿌리고, 비닐멀칭을 하는 한편 무씨를 구매하고 배추모종을 주문했다.

씨앗과 모종을 구입하는 비용도 사실은 만만치 않았다. 과거의 농사는 농부 자신이 매년 씨앗을 받아 두었다가 이듬해 파종을 했지만, 오늘날의 농사는 몬산토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거의 모든 종자 시장을 장악하고, 장악한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씨앗이 아예 안 생기게 유전자 조작을 해버린 까닭으로 매년 새판잽이로 종자를 구입해야만 한다. 때문에 한철 농사가 잘못 되면 농부 자신의 인건비만 손해를 보는 게 아니라 빚쟁이로 전락할 수도 있다. 2020년이 바로 그런 해였다.

무씨를 사다가 뿌리고, 배추 모종을 사다가 심을 때만 해도 별 조짐은 없었다. 무싹은 잘 나와 주었고, 배추모종은 점점 높아지는 하늘 아래 싱싱함을 한껏 뽐내며 쑥쑥 잘 자라는 것 같았다. 배추가 겉절이를 해먹기 딱 좋은 때부터 아마 그 일은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시들어가는 배추가 한두 포기 보일 때만 해도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가볍게 넘겼다. 그런데 날마다 개수가 늘어간다. 이게 왜 이러나 하고 뽑아보니 뿌리가 엉망진창으로 뭉쳐 있다.

 

이제 곧 잡초밭이 될 배추밭
이제 곧 잡초밭이 될 배추밭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아래쪽으로 쑥쑥 내려가야 할 뿌리가 왜 이렇게 물혹처럼 뭉쳐서 밖으로 도로 기어 나올 것만 같은 것인가. 농부들의 시름은 당연히 깊어지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하니 김장거리마저 망쳐버리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겠지, 아니겠지 했지만 아닌 것이 아니었다. 죽어가는 배추는 날마다 늘어만 가는데 하늘마저 바싹바싹 말라간다.

지하수를 뽑아서 물을 주기 시작했지만, 비 없는 가을이 한 달을 넘어서부터는 지하수 물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자연현상이란 역시 무서운 것이었다. 아침에 제아무리 많은 물을 뽑아서 뿌렸다 해도 살랑거리는 바람의 힘을 이기지는 못하고 싹 다 사라져 버린다.

농부들은 이제 실실 웃기나 해야 했다. 망해도 이렇게 완벽하게 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안 믿을 수도 없고, 그러니 웃기라도 해야 했다. 웃다 보니 새로운 것이 보인다.

“하기사 이 많은 김장거리가 다 살았더라면, 아이고 끔찍도 해라.”

그게 또 그렇다. 그 많은 무와 배추가 싱싱하게 다 자랐다면 어떻게 됐을까. 가격은 당연히 폭락할 것이고, 인건비 건지기도 어려운 작업은 포기하고 굴삭기를 동원해서 죄다 파묻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다. 한 시라도 빨리 처리하고 그 자리에 양파나 마늘 같은 월동작물을 심어야 한다는 다른 복안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확을 포기한 작물을 밭에 그대로 둔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는 게 농부의 심사이기 때문에, 그래서 굳이 돈을 들여가며 굴삭기를 동원한다. 이를테면 장례라도 치러줘야 한다는 상징적인 마음 같은 거, 그런 게 농부에게는 있는 것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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