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김소연 비정규 노동자의 집 (사)꿀잠 운영위원장-1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노동은 가장 좋은 것이기도 하고 가장 나쁜 것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노동이라면 최선의 것이고, 노예적인 노동이라면 최악의 것이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신학자인 알랭(Alain)의 말이다. 자유노동 아니면 노예노동 즉, 최선과 최악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글로벌 신자유주의화 영향으로 노동자의 삶은 더 열악해졌다. 특히 우리의 노동은 아직도 최선보다 최악에 가깝다. 1960년대 산업화가 급격히 이뤄지면서 노동자들은 최악의 노동에 시달렸다.

 

김소연 비정규 노동자의 집 (사)꿀잠 운영위원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특히 동대문 평화시장 봉제공장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이라는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근로기준법은 있어도 사법부도 기업 편이었다. 법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11월 13일은 동대문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 열사가 서거한 지 50주년 되는 날이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내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고 외치며 법전을 품에 안고 분신했지만, 여전히 제2 제3의 전태일이 나오는 현실이다.

노동의 질도 나아진 건 별로 없다. 1997년 IMF 금융위기 전에는 비정규직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정규직들이 직장에서 해고당하면서 빈자리는 비정규직이 메꿨다. 금융권뿐 아니라 제조업도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그때부터 비정규직이 생겨났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노조가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를 당해도 악 소리도 못 내고 잘려나간다. 코로나와 AI(인공지능) 4차 산업이 도래하면서 해고가 일상화됐다. 그에 따른 노동운동도 첨예화되었고 지방에서 상경해 투쟁하는 노동자들도 급증했다. 창원이나 울산 등 현대-기아차와 아시아나 케이오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장기간 노동투쟁을 하다 보면 쉴 곳도 마땅치 않다.

비싼 호텔이나 모텔에서 장기 숙식하는 것도 부담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쉼터가 있다. '꿀잠'이다. 2017년 8월 19일 오픈했다. 붉은 벽돌의 다세대 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 해 세워진 이곳은 노동자들에겐 천국과 같은 휴식공간이다. 숙식은 물론 회의와 식사 등을 할 수 있다.

김소연(50) 꿀잠 운영위원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청으로 꿀잠을 세우기로 정하면서 십시일반 후원금을 거뒀다. 초기에 7억 원을 모았고, 주택 매입과 실내외 공사, 세금 등을 합해 총 14억 원이 들어갔다. 4층인 꿀잠 건물은 지하 1층에 치과 진료실과 회의실이 구비 돼 있고, 옥상정원, 샤워실, 세탁실, 공용식당에 이어 노동법과 심리상담, 공연과 전시 등을 할 수 있는 문화교육공간도 조성돼 있다. 3주년이 지난 꿀잠은 그동안 고용불안과 각종 차별에 고통받는 노동자들에게 달콤한 단잠을 잘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을 했다.”고 말한다.

여공들의 노동환경 개선과 처우를 위해 노동운동을 해온 그는 “설립 초에 꿀잠을 찾은 노동자는 연 3,935명으로 하루 11명이 찾았다. 이들 중 40%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고, 때로는 대학생과 여성활동가, 문화활동가 등도 찾는다.”고 밝히는 김 위원장을 신길동에서 만났다.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을 지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 집행위원을 역임하고, 2012년 제18대 대통령 여성 후보로 출마한 경력을 가진 김 위원장으로부터 꿀잠 건립 배경과 비정규직 문제,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점, 전태일 열사 서거 50주년을 맞은 노동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택배 노동자 죽음, 코로나 해고 대란, 정치권의 노동법 개악 문제 등을 짚어 본다.

 

- 해고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사회운동가 쉼터인 국내 최초로 설립한 ‘꿀잠’이 개관한 지 3년이 넘었다. 다른 나라보다 노동운동이 많은 우리나라에 노동자 쉼터를 만든 배경이 궁금하다. 꿀잠은 어떤 곳인지 초대 위원장으로 소회와 함께 알려 달라.

▲ 지난 3년은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좀 더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게 많다. 올해도 거리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행사에 나가기로 했는데, 코로나 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해 지난 8월 19일 설립 3주년 기념행사마저 취소해 아쉽다.

그동안 많은 노동자들이 의기투합하고 위안을 얻기도 했다. ‘꿀잠’은 단순히 쉼터 역할뿐 아니라, 여기서 다양한 분야의 노동자들이 이야기를 나눴고 새로운 꿈과 에너지를 충전하는 곳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연초에 서울지역이 코로나가 심각하기 전까지는 노동자들 방문이 빈번했었는데, 점점 심각해지면서 지방의 노동자들이 서울로 올라올 수 있는 여건이 어려워졌고 집회나 숙박할 조건이나 횟수가 줄었다.

지금은 1단계로 완화된 데다, 지난번 21대 첫 국회 국정감사에서 노동문제를 듣기 위해 지방에서 일부 상경한 분들이 이용하고 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방문하는 분도 적다. 지금은 소규모 회의 위주로 진행해 오고 있다.

 

- 입구에 ‘비짜루를 타고 있는 사람’의 조형물이 마치 피터 팬을 연상시키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가.

▲ 우리가 지금 비정규직에 대해 너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비정규직은 기득권층이 만든 강제적이고 불평등한 노동시스템이다. 그런데도 이것을 모두 내가 잘못해서 비정규직이 됐다고 착각하고 있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은 우리가 만든 게 아니다. 가진 자들이 만든 노동제도다. 우리 사회 비정규직 중에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여성들이 많은데, 특히 청소 업무 여성 노동자가 그렇다. 비짜루(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는 바로 청소 노동을 하는 여성을 상징한다.

여성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안전하고 행복한 일터에서 일하게 하자는 뜻이 있다. 비정규직 없는 일터를 만들자는 의미로 조형물을 세웠다.

'꿀잠'은 비정규직의 서러움을 겪는 분들에게 언제든 쉴 수 있고 고민을 말하고 아픔을 나누는 연대와 미래에의 희망과 꿈을 이루는 인큐베이터다. 꿀잠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쉼터이자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바꾸려는 꿈이 있는 분에게 꿀잠은 항상 개방하고 있다.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 3년 전 신길동에 다주택 빌라를 매입했는데, 후원은 어떻게 이뤄졌나.

▲ 노동자 쉼터를 만들자고 처음에 제안한 분들은 그동안 5년 10년 동안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싸웠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정리해고를 당해서 싸웠던 노동자들이다. 서울에 비정규직을 위한 또는 자신의 노동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자고 제의했다.

이 제안을 조현철 신부님(서강대 교수, 녹색연합 상임대표)을 비롯해 사회 각계의 유력한 분들이 대거 참여해 주셨다. 여기에는 백기완 선생과 문정인 신부님, 문화예술인 등이 흔쾌히 공동설립 제안자가 되었고, 이에 호응한 일반 민중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모았다.

 

- 쉼터로서 내부공사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비용은 얼마나 들었는지.

▲ 2017년 당시 처음에 10억 원을 목표로 잡았고, 약 7억 원을 모을 수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는 4층짜리 빌라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모두 11억 원이 들어갔다. 여기에 여러 세금 등을 포함하면 14억 원 정도 소요됐다.

빌라 내부와 외부 리모델링 공사는 건축일을 하시는 분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서 도와주셨다. 그랬기 때문에 그 정도 비용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 빚이 없는 건 아니다. 꿀잠을 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전혀 일면식도 없던 분들이었다.

당시에는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으로 워낙 심각했고, 수도권과 지방의 노동자들이 서울에 쉼터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꿀잠’을 짓자는 마음이 열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꿀잠 2호점을 낼 계획은.

▲ 낼 곳은 많지만, 아직은 재정 여건이 여의치가 않다. 노동자 쉼터가 더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지만 그럴 여력이 아직은 없다. 현재의 주어진 공간을 좀 더 충실히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 사업들을 확대해 가는 게 우선이라 본다.

향후 기금이 더 생긴다면 여러 지역에 노동자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편히 쉴 수 있는 안정된 쉼터이자 휴양공간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 운영해오면서 느꼈던 필요한 시설이 더 있다면.

▲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회의할 수 있는 좀 더 넓은 공간이 더 필요하다. 사실 이곳 꿀잠은 많은 인원을 수용할 공간이 좀 부족하다. 지금은 모든 조건을 갖춘 상태에서 최대 30명이 가용상한선이어서 회의실과 숙박 시설 보완과 확충이 요구된다.

현재 노동자가 머무는 방도 개인 침대방이 아니라, 다수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온돌방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1층은 장애인 쉼터인데 침대는 한 개뿐이다. 향후 여건이 좋아진다면 더 많은 인원이 더 편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개선할 것이다. 또 다주택 빌라 건물이어서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불만도 있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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